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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6:45 수정 : 2007.09.05 16:54

역사의 도시 피렌체에서는 이탈리아 음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식당들이 많다. 한겨레

[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15

그 성실하고 정확한 기술, 이탈리아 요리학교 시절에도 경험

한국에 유명 요리사들의 식당이 들어온다고 얘기했잖아요. 일본에는 한 5년 전부터 그런 식당들이 생겨났어요. 얼마 전 일본에 가서 몇 군데 들렀는데 조엘 로부숑(Joel Robuchon)과 폴 보커스(Paul Bocuse)의 식당이 아주 좋았어요. 로부숑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미슐랭 스리스타 주방장이었는데 캐주얼한 식당을 새로 내고는 미슐랭(프랑스의 세계적인 미식 평론가 그룹)에 평가하러 오지 말라고 했어요. 테이블 장식도 하지 않고 접시도 싼 거 쓰고 대중적인 식당을 낸 거예요.

그런데도 미슐랭에서는 별 두 개를 줬어요. 로부숑은 일본 요리를 아주 좋아했어요. 롯폰기에 있는 식당에서는 스시바를 이용해 새로운 오픈 키친을 만들기도 했어요. 일본 요리사도 좋아했어요. 라스베이거스에 새로운 식당을 열 때 일본에서 함께 일하던 주방장과 부주방장을 데리고 갔어요. 일본 요리사들을 좋아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예요. 일단 기술이 좋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생선을 잘 알아요. 생선을 다루는 기술은 프랑스 사람이 따라갈 수 없어요. 또 하나는 성실함이에요. 일을 시키면 정확하게 성실하게 해내는 장점이 있어요.

산에 있는 식당, 버스도 없고 …


나는 뉴욕의 식당에서 일하다가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외국인 이탈리아 요리 전문학교)에 들어갔어요. 나는 뉴욕 요리사들과 같은 반이었는데 일본 요리사들 반과 늘 비교당했어요. 선생님이 들어와서 장난처럼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일본 요리사 반은 내 칼도 갈아놓는다. 수업 전에 생선도 미리 잡아놓는다. 어떻게 이 반은 수업 시작했는데 생선 잡아놓은 사람이 하나도 없냐.” 차이가 있어요. 일본이 훨씬 경쟁률이 세요. 정말 하고 싶은 사람만 들어온 거니까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이탈리아 곳곳의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내가 간 곳은 브레시아(Brescia)였어요. 미슐랭에서 별 하나 받은 식당이었는데 식당이 산에 있어요. 버스도 없어요. 개인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올라갈 방법이 없어요. 예전에 별장으로 지어놓은 성이었는데 그걸 식당으로 바꾼 거예요. 들어가면 커다란 샹들리에가 보는 사람을 압도해요. 미슐랭에서 별을 받았으니 음식값도 비싸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주방장이 프랑스 사람이었어요. 브레시아의 위치가 이탈리아 북부이다 보니 프랑스 음식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 식당의 요리는 대부분 내가 알던 것이었어요. 당연히 배울 게 없어요. ICIF의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어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 요리하는 곳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이런 곳으로 나를 보내면 어떡하란 말이냐?”며 항의를 했어요. 매니저는 “그 식당은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곳이고, 이탈리아 와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서 특별히 보내줬다”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결국 3주 만에 나왔어요.

3주 동안 뭘 했냐면 이탈리아 와인만 실컷 마셨어요. 이탈리아 와인은 정말 많았어요. 소믈리에와 친해졌는데 날마다 소믈리에가 와인을 가져다줬어요. 손님들이 마시고 남은 와인을 주는 거예요. 아침부터 와인을 마셨어요. 식당을 나와서 한 달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했어요. 로마, 피렌체, 시실리 들을 다니며 음식을 먹었어요. 그게 오히려 더 많은 공부가 된 것 같아요. 나는 피렌체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피렌체에 가면 곧바로 역사가 느껴져요. 미술관도 좋지만 도시 자체가 아름다워요. 시장도 아주 재미있어요. 화려한 식당도 많지만 곳곳에 있는 소박한 식당이 더 좋아요. 피렌체에 가면 이탈리아 음식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프랑스나 다른 나라의 영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중세 때부터 발전해온 듯한 역사가 음식에 배어 있어요. 나는 그런 소박하고 묵직한 요리가 더 좋아요.

화려한 캐비어보다 더 맛있는 것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캐비어(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요리)를 처음 먹었을 때 생각이 나요. 영국의 그로스버너 하우스 호텔 식당에서 일을 할 때였어요. 일요일 아침마다 식사를 하러 온 군인이 있었어요. 내 기억으론 장군이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은 호텔에서 살고 있었는데, 돈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군에서 돈을 내준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요일마다 와서 꼭 캐비어를 먹었어요. 캐비어와 돔페리뇽과 메밀로 만든 팬케이크를 먹었어요. 캐비어가 남으면 요리사들 몫이에요. 그땐 날마다 캐비어를 먹었어요. 귀한 거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자꾸 먹다보니 그렇게 맛있는 줄 모르겠어요. 화려한 캐비어보다 평범한 식재료에서 뽑아낼 수 있는 맛이 더 많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정리 김중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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