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21 22:17
수정 : 2007.12.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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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프 마일리’(Chef Me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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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맛기자 박미향, 와인집을 가다 쉐프 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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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프 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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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이태원 언덕을 올랐다. 000 와인바를 찾아가는 길은 험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와인바는 어둑하고 음침했다. 와인리스트에는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것이 즐비했다.
매니저가 왔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비싼 와인이 많네요.”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죠. 평범한 사람들이 오기 힘든 곳이죠.” 바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평범한 사람들이 마실 수 없다면 그것은 술이 아니다. 뒤통수에 들리는 각종 와인 예절에 대한 그의 말소리도 싫었다. 와인은 허영심 많은 이들에게 종종 훌륭한 포장지로 악용된다. 그 악마 같은 분위기에 와인은 시들고 죽는다.
호되게 당하고 난 후 만난 집이 ‘셰프 마일리’(Chef Meili)였다. 흙더미에 박혀 있는 보석 같았다. 각종 걸쭉한 요리들이 등장했다. ‘야채 넣은 쇠고기말이와 스페츨’(오스트리아 파스타)은 우리 입맛에 착 달라붙는 것은 아니지만 푸짐하고 맛있다.
드디어 발견한 와인은 나 자신을 통째로 흥분시켰다. 와이너리 푀클의 츠와이겔트와 츠와이겔트 클래식, 와이너리 유르취지, 와이너리 찬토, 골저 와너너리의 와인들이다. 모두 오스트리아 와인들이다. 요리도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다. 그래서 양이 많았던 것이다.
오스트리아 것이 넘쳐나는 이유는 주인 때문이다. 주인 크리스티앙 마일링거(43)는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2001년까지 밀레리엄 힐튼호텔 총주방장을 지냈으며, 작년까지 우송대학교 외식조리학과 계열 교수를 했다. 화려한 이력에 비해 ‘셰프 마일리’는 소박한 분위기다. 주인의 고향집 사진이 천장에, 오스트리아 화가 작품이 벽에 걸려 있다. 주인은 와인 ‘그뤼베’와 ‘보비어’를 추천한다. 훌륭하지만 비싸지 않다. 2만6천원 혹은 3만원대가 대부분이다. 딱 한 가지만 10만원이 넘는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음식과 그 나라 와인을 제대로 먹기에 알맞은 곳이다. 코르크마개도 없는 오스트리아 와인, 화가가 그린 모차르트 얼굴 라벨, 달콤한 맛, 쫀득한 음악.
얼굴에 묻었던 화기가 안개처럼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용산구 이태원동 (02) 720-5742, (02)794-7024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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