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8 16:33
수정 : 2007.07.18 16:48
|
펠리체
|
[매거진 Esc] 맛기자 박미향, 와인집을 가다 / 펠리체
도시의 아스팔트가 장맛비로 얼룩져 있다. 맑은 날 활짝 웃던 도로변 꽃들도 야단을 맞은 학생처럼 고개를 숙인다.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검은 구름이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 잠시 심장이 멈춘 듯 내 안에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침묵의 무게를 덜어 보고자 발길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펠리체’에 닿는다.
‘펠리체’의 커다란 창은 언제 봐도 시원하다. 저 멀리 청계산이 보이고, 그 옆 자락에 우면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청계산은 처음 산행을 시작한 이들에게 더없이 편안하다. 굽이굽이 뻗은 길들은 사진 찍기에도 더없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그 길을 맨발로 다니기도 한다.
청계산에서 느낀 그 아늑함을 ‘펠리체’에서 한번 되새김질할 만하다. ‘펠리체’의 붉은 벨벳 소파는 청계산의 옥녀봉 계곡만큼 깊어서, 푹 파묻혀 있으면 세상사 골치 아픈 일들을 모두 잊게 만든다.
|
펠리체
|
예전엔 와인코리아가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프로비스타호텔이 직접 경영하고 있단다. 와인리스트도 옛날과는 조금 달라졌다. 100여 가지였던 것이 65가지 정도로 정돈됐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 세계의 와인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20만, 60만원짜리 와인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4만~5만원대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식사는 주로 파스타와 스테이크이고, 안주는 과일과 치즈, 찹스테이크가 있다. 호텔식 음식 맛이다.
음악은 조용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살짝 상념에 잠기기에 좋다. 한때 우리네 와인 ‘샤또 마니’가 이곳에서 인기였다. 충북 영동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만든 ‘샤또 마니’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담근 포도주를 닮았다. 달짝지근해서 마시기 편안하고 와인의 세련된 맛도 갖추고 있다. 지금은 이 와인을 그저 무료 시음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곳 매니저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반피’를 추천한다. 이탈리아 와인답게 고고한 맛이 흐른단다. 와인 한 잔을 남기고 창을 떠난다. 비에 젖었던 마음에 햇볕이 들었다.
mh@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