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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7 06:01 수정 : 2020.01.17 09:48

[한겨레-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기획]
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⑤ 페미니즘 탐구 독서동아리 부너미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되어 재취업하려면 괜히 위축되는 게 있어요! 희망연봉도 낮추게 되고요.” “우리 좀 더 당당하게 목소리 내봐요! 우리가 경력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사실 엄청난 다른 역량을 보충한 거잖아요! 엄마가 되면서 새롭게 채워진 역량도 많다고 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아요.”

‘부너미’ 회원들이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이민경 지음)라는 책을 읽고 나눈 토론이다. ‘부너미’는 결혼한 여성들의 페미니즘 탐구 독서동아리다. 우리 옛집 아궁이에는 ‘부넘이’(부넘기)가 있었다. 아궁이에서 넘어간 따뜻한 연기가 방을 데울 수 있도록 역류를 막는 구실을 하는 언덕이다.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페미니즘이 가정에서부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실천적인 논의를 하자는 뜻을 모아 활동한 지 3년이 되었다.

일복 많은 생계부양형 직장맘 정현주씨, 히말라야에 오를 정도로 체력은 자신 있었는데 출산과 육아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이예송씨, 남편과 ‘공양공살공경’(공동양육, 공동살림, 공동 경제활동)하는 은주씨, 사업 심사할 때 남편 직업을 물어보는 심사 역들 때문에 분노한 사업가 유지은씨 등. 연령, 소득, 가치관은 제각각이지만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으로 살면서 ‘이건 좀 아닌데…’라는 의문을 가진 기혼여성들이다.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둔 뒤 다시 노동시장에 뛰어들 때의 어려움은 대부분의 엄마가 공감하는 문제다. 육아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일임에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을지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회원들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종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정도지만 온라인 카페나 메신저를 활용하여 일상적으로 소통한다. 책을 읽는 것은 기본이고, 읽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을 글로 쓰는 활동이다. 글쓰기는 더 많은 사람과 우리들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부너미 제공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빨래 한번을 안 하던 사람이, 온라인 매체에 기고한 글을 보더니 바로 사과하고 행동이 변하더라고요. 글의 효과를 실감했어요!”

글의 힘을 경험한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19년 3월에는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 부너미 지음)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떤 학자도 말해주지 않던 기혼 유자녀 여성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같은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은 멈춰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함께 읽고, 함께 쓰는 동안 우리의 삶은 달라졌다. 더 유쾌하게 살아갈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두 번째 출판을 목표로 읽고 쓰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여자니까, 아내니까, 며느리니까, 엄마니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역할과 ‘나’라는 존재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는 탐구과정은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것은 갈등을 일으키곤 하니 침묵과 순응이 더 편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여자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놓지 않을 수 있는 힘은 동아리 회원들이 ‘함께’하는 데 있다. 혼자라면 두렵고 외로웠을 길이지만 함께 읽고 쓰는 엄마들이 있으니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너미’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대표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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