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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7 08:00 수정 : 2020.01.07 10:20

지난달 13일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기자가 얼굴인식결제를 시도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중국 기술전쟁 현장을 가다
② AI 기업 산실 베이징

무엇이 중국 IT기업 키웠나
AI기업 산실인 베이징 가 보니

일상 곳곳에 AI 기술 접목
14억 소비자 데이터 기반으로 급성장

IT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해 ‘생태계’ 형성
소속 스타트업들 ‘유니콘’ 성장 사례도

지난달 13일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기자가 얼굴인식결제를 시도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모든 결제는 스마트폰으로 통했다. 호텔 체크인에서부터 수산물 구매, 버스 탑승까지 얼굴인식과 정보무늬(QR코드)가 곳곳에서 암호 구실을 했다. 앱 클릭 한번으로 수십가지 심부름을 시킬 수 있었고 자전거와 택시는 스마트폰 앱 안으로 들어왔다. 기계가 인간을 밀어내고 매장 계산대를 차지한 모습도 보였고, 기계가 법원 반복업무를 맡아 인간을 돕는 모습도 있었다. 지난달 17일 <한겨레>가 살펴본 중국 베이징시는 곳곳에서 아이티 신기술을 활용하는 거대한 실험공간이었다. 중국 아이티 기업들은 커다란 중국 내수시장과 이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첨단기술을 빠르게 상용화하고 있었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간편결제가 어디든 가능하다는 점이다. 호텔에 도착해 택시기사에게 알리페이 큐아르코드(알리바바 자회사 앤트파이낸셜)를 내미니 자신의 앱으로 스캔해 미터기에 적힌 금액을 결제했다. 온라인 지갑과 연동된 계좌에서 택시비가 빠져나갔다. 근처 백화점 음식 매장에 들르니 직원이 가자미가 싱싱하다며 스마트폰으로 가자미 운송 업체 정보를 보여줬다. 헤엄치는 가자미 등판 위에 큐아르코드(징둥)를 인식하는 마그네틱을 붙여둔 것이다. 방문객들은 무인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위챗(웨이신)페이 큐아르코드로 결제한 뒤 매장을 빠져나갔다. 대부분 5초 안에 계산이 끝났고 대기줄은 없었다.

모바일결제에 힘입어 공유경제와 오투오 서비스도 크게 늘어났다. 식당 건물마다 보조배터리 대여자판기(라이뎬커지)가 있어 큐아르코드 결제로 수시로 빌릴 수 있었고 배달음식(메이퇀뎬핑)과 자전거, 택시(디디추싱)도 앱으로 호출할 수 있었다.

얼굴인식과 같이 민감한 개인정보도 활발하게 쓰였다. 호텔 체크인 프런트와 레스토랑 계산대에 놓인 얼굴인식센서(상탕커지) 앞에 서자 곧바로 카메라가 켜지면서 얼굴을 식별했다. 신선식품 매장에서도 징둥페이를 이용해 얼굴로 결제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AI) 테마공원에선 공원 곳곳에 얼굴인식 카메라(하이크비전)가 달려 있어 방문객들의 공원 전체 보행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공원 북문 안내판엔 보행거리가 가장 긴 순서대로 1~20위 방문객 얼굴이 걸려 있었다.

이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설립된 지 10년이 안 됐지만 최대 100조원에 이르는 자산가치를 가진다. 거대한 이용자 규모와 데이터 활용력을 바탕으로 상용화 기술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월간순이용자(MAU) 규모는 3억~9억명으로, 최대 4천만명(카카오)인 한국 월간순이용자의 7배 이상이다. <신화통신>과 아이디시(IDC) 집계를 보면 2018년 중국 모바일 결제 이용자는 5억명에 이르러 미국(약 2억명)을 앞질렀고 데이터 생산량도 7.6제타바이트를 기록해 미국(6.9제타바이트)을 앞섰다. 지난해 데이터 관련 기밀보호법과 사이버보안보호법이 차례로 발효되기 전까지 이들 기업은 10년가량 자체 플랫폼을 개발해 데이터를 폭넓게 활용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아이티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투자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인 맷 스콧 마룽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중국 시장을 일컬어 “중국은 인구, 데이터, 비즈니스 규모가 미국보다 컸기 때문에 성공했다. 중국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으면 세계로 기술수출을 할 수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시 징동 매장 안에서 방문객들이 무인계산대를 사용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이들의 기술 발전은 미국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세계 최고 기술로 평가받는 얼굴인식기업 상탕커지와 음성인식기업 아이플라이텍, 세계 최대 시시티브이업체 하이크비전은 지난해 10월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미국 정부 허락 없이 미국 제품을 구매할 수 없게 됐다. 이들에 투자한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BAT)는 “중국 공산당과 연계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 국무부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일상생활에 AI 접목 ‘원조’ 샤오미의 전략

중국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데이터를 모으고 사업 규모를 키운 ‘원조’ 기업은 샤오미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렸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움트던 2015년, 국내외 가전제조사들이 프리미엄 가전제품 위주로 인터넷 센서를 적용할 때 샤오미는 ‘5%룰’(순수익률을 5% 이하로 낮춘다)을 적용해 50만원 이하 스마트 정수기와 에어컨을 출시했다. 고가 아파트에만 적용됐던 온·습도 측정 및 동작감지 기능을 저렴한 스마트센서로 구현했고 러닝화와 모기퇴치기계 등 소비재에까지 센서를 넣어 사물인터넷 제품군을 늘렸다. 샤오미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미유아이’(MIUI)로 스마트기기를 한꺼번에 연결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싸구려 편견 벗고 ‘5%룰’로 경쟁력
자체 운영체제 ‘미유아이’ 무기로
가전 넘어 운동화·칫솔·면도기까지
스마트 센서 달아 사물인터넷 확장
9억 사용자 빅데이터 기술 발전에

지난달 18일 <한겨레>가 방문한 베이징 샤오미 본사 ‘스마트홈체험센터’는 그런 전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거실·화장실·주방·안방·공부방·카페·사무실 총 7개 공간을 샤오미 브랜드 기업이 만든 제품만으로 꽉 채웠다. 샤오미 에이아이 스피커 ‘샤오아이퉁쉐’를 부르니 커튼이 저절로 열리고 청소기가 움직였다. 스마트 안마의자와 스마트 비데는 ‘사용자 맞춤형’ 모드를 설정할 수 있었고 소모품으로 여겨졌던 선풍기와 칫솔, 면도기, 전등도 인터넷 센서가 심겨져 있어 에이아이 스피커와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했다.

미유아이 계정에 스마트기기가 연결되면 사용자들이 어떤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몇 개의 기기를 앱에 연결하는지 디지털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인다. 버지니아 수 동아시아 총괄 매니저는 “샤오미는 사용자 기기 정보와 사용자가 쓰는 소프트웨어·앱 정보에 한해 수집한다”며 “제품에 들어갈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 소비자들의 활발한 플랫폼 참여 덕분에 제품 에이아이 역량이 길러졌고 에이아이 스피커도 상호작용을 통해 매번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미유아이 플랫폼과 소비자 빅데이터는 ‘샤오미 생태계’를 넓히는 자산으로도 활용됐다. 샤오미는 중국 아이티 대기업이 신생 스타트업을 자사 브랜드 안으로 끌어들이는 ‘생태계 전략’을 사업 초창기부터 활용했다. 현재 100곳이 넘는 기업들이 생태계에 들어와 있고 1천개가 넘는 샤오미 생태계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시공간에 들여놓은 에이아이 학습로봇 등 스마트기기는 물론 우쿨렐레와 볼펜, 침대, 드라이기 거치대 등 일상 소비재까지 전부 샤오미 생태계 기업 제품이다. 샤오미가 직접 만드는 제품은 에이아이 스피커 ‘샤오아이’와 스마트폰, 라우터, 노트북, 티브이뿐이다.

생태계 전략은 자금을 넣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버지니아 수 매니저는 “유망 스타트업의 일부 지분을 사거나 스타트업에 연구개발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일종의 에인절투자를 하고 있다. 지분을 안 사고 샤오미 브랜드로 유통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산가치 10억달러(약 1조원)를 넘어선 유니콘 기업 화미테크(미밴드)와 즈미테크(보조배터리), 나인봇(전동킥보드), 쯔미테크(공기청정기) 모두 샤오미 생태계 기업에 속해 있다. 최근엔 화웨이와 징둥, 베이징자동차 등도 샤오미 전략을 따라 유망 기업들을 발굴해 자사 브랜드로 끌어들이고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자사 제품을 샤오미 브랜드로 홍보할 수 있고 샤오미 입장에선 들쭉날쭉하는 스마트폰 매출을 상쇄할 수 있다. 올 3분기 샤오미 생태계 기업은 156억위안 매출을 올려 전체 매출의 29%를 차지했다. 샤오미 생태계 전략 창시자인 류더는 이와 관련해 “전통적 대기업이 100년 크는 소나무라면 샤오미는 운과 트렌드를 만나 하루아침에 큰 성장을 이루는 대나무숲과 같다”며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해 혁신과 성장 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생태계 전략엔 위험도 있다. 100개 넘는 기업들 품질을 유지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법적 책임도 함께 져야 해서다. 샤오미는 2018년 생태계 기업 ‘나인봇’이 만든 전동스쿠터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전량 리콜을 결정했다. 최근엔 전자담배를 팔겠다거나 수년이 지나도록 신제품을 내지 않는 기업을 생태계에서 내보내기도 했다. 버지니아 수 매니저는 “생태계 규모가 커지면 품질이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다. 품질사무소를 1급 부서로 둬 협력사 품질을 수시로 점검하고 상품 현황을 파악한다”고 했다.

신생 스타트업 품는 ‘생태계 전략’
스타트업 자금 대고 경영 미관여
“들쭉날쭉한 스마트폰 매출 상쇄
혁신·성장동력 안정적 확보 효과”
화미테크·나인봇 등 ‘유니콘’도 속해
화웨이 등 대기업들도 ‘생태계 전략

최근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들 가운데선 ‘탈샤오미’를 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생태계 기업들이 따라야 하는 ‘순수익 5%룰’과 샤오미 브랜드 이미지가 생태계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봐서다. 단순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은 판로가 확보돼 안정감을 누릴 수 있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스마트테크 기업들은 확장에 한계를 느낄 수 있다. 화미테크와 즈미테크가 최근 샤오미와 별개로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놓는 이유다.

중국 아이티 기업의 생태계 전략은 제조사가 고객사 이름을 달고 상품을 개발·생산하는 오디엠(ODM) 방식과 유사하면서도 개발 자금을 대고 지분 일부를 사들인다는 점,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벤처투자로 분류될 수 있다. 최근 한국도 카카오와 네이버 등 아이티 기업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유망 스타트업 기술을 사 들이고 있다. 마이클 자코비데스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통해 “규제 완화와 디지털 혁신으로 시장들끼리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기업 혼자 고객을 만족시키기 어려워졌다”며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는 여러 생태계를 연결해 산업 지배력을 높이고 기업들끼리 협업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고 평했다.

베이징/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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