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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6 04:59 수정 : 2020.01.16 09:05

청소년부모 지원을 위해 아름다운재단,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과 협업하는 ‘모아이프로젝트팀’이 국외사례 연구를 위해 지난해 10월3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보건아동부 산하 기관인 ‘10대 부모 지원 프로그램’(티피에스피·TPSP) 관계자와 면담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산프론티어아카데미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모아이프로젝트팀 제공

[청소년부모 최초 실태보고서] ㉻지혜 부부가 외국에서 살았다면
아일랜드, 정부서 ‘청소년부모’ 정책
병원 검진단계에서 기관 소개
‘학생 엄마’에게 등록금·교통비 지원
10대 임신율 가장 낮은 네덜란드도
정부·지역사회 협력 지원체계 구축

청소년부모 지원을 위해 아름다운재단,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과 협업하는 ‘모아이프로젝트팀’이 국외사례 연구를 위해 지난해 10월3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보건아동부 산하 기관인 ‘10대 부모 지원 프로그램’(티피에스피·TPSP) 관계자와 면담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산프론티어아카데미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모아이프로젝트팀 제공
지혜(가명·18)와 성훈(가명·22) 부부는 배 속에 있는 아기와 함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길 꿈꾼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이 젊은 예비 부모의 삶은 막막하기만 하다. 아직 부양능력을 갖추지 못한 청소년부모를 지원할 제도가 없어서다. 성훈이 곁에 있는 한 지혜는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 들어갈 수 없다. 지혜의 부양의무자인 지혜 어머니가 세대 분리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지혜 부부처럼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청소년부모가 한국이 아닌 곳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어땠을까. <한겨레>는 15일 아름다운재단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도움을 얻어 외국의 청소년부모 지원 정책을 톺아보고, 지혜 부부가 놓인 조건을 이 정책에 적용해 이들의 ‘다른 삶’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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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에서부터 청소년부모 돕는 아일랜드

아일랜드에 사는 지혜는 검진차 들른 산부인과에서 이미 ‘10대 부모를 위한 기관’을 소개받게 된다. 기관 소속 상담사는 이들 청소년부모에게 임신 대처나 낙태 지원, 관리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정부도 나선다. 우선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정한 이들을 위한 ‘당사자 맞춤 지원’에 들어가고, 출산과 양육에 무리가 없는지 확인한 뒤 상황별 대안을 청소년부모에게 제시한다. 상황이 심각한 경우 원가족과의 관계도 함께 관리한다. 만일 청소년부모 당사자가 난민이나 미등록 체류자 등 취약 계층이라면 특별관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일랜드는 국민의 88%가 천주교도인 만큼 보수적인 나라다. 그러나 한국의 품앗이와 비슷한 ‘메헬’ 문화 아래 ‘공동체가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보고 2000년대 초반부터 청소년부모를 위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보건아동부에 ‘10대 부모 지원 프로그램’(티피에스피·TPSP)이라는 산하기관을 따로 둘 정도다. 모든 지원은 한국과 달리 ‘한부모가정’이 아니어도 청소년부모라면 누구나 적용 대상이 된다. 티피에스피의 총괄 코디네이터 마거릿 모리스는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중앙정부 통계를 보면, 10대 엄마의 30%가 혼인신고를 했거나 아이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린 부모는 모든 미혼모나 미혼부와 똑같은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이런 정책은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청소년부모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일랜드에서, 아직 고등학생인 지혜는 정부로부터 등록금과 교통비도 받을 수 있다. 이 나라에선 대부분의 10대 엄마가 교육을 받는다. 지혜가 수업을 받는 동안 아이는 국가가 돌봐준다. 몸 상태 등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일 땐 교육부가 나서서 해당 청소년부모에게 가정 수업을 받게 한다. 이는 학업을 끝마치지 못한 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 견줘 실업률이 매우 높은 아일랜드의 현실 때문이다. 학력과 학벌에 따라 차별이 심한 한국도 아일랜드의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일랜드 정부는 아이를 일찍 낳고 길러야 하는 청소년부모도 같은 출발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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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이 유무가 중요할 뿐인 선진국들

아일랜드 말고도 적지 않은 유럽 국가가 아동 보호에 초점을 맞춰 청소년부모를 지원한다. 영국은 2017년 한해 가구 넷 중 하나가 한부모가정이고, 이 가운데 1%가 청소년부모일 만큼 10대 청소년 임신율이 높다. 영국의 청소년부모는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결정하면 방문 간호 서비스, 양육비 지원 등을 연계받을 수 있다. 만약 18살인 지혜가 학교에 계속 다니길 원한다면 영국 정부는 한 자녀당 매주 160~175파운드(24만~26만원가량)의 돌봄 비용을 준다. 아이가 4살이 되기까지 지혜는 아이와 함께 학습·정서발달을 위한 프로그램인 ‘슈어 스타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10대 청소년 임신율이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네덜란드는 민관 협력이 특징이다. 청소년부모 정책을 맡는 보건부와 교육부는 지역사회 안에 지원 체계를 구축해두고 있다. 이곳 마을 보건소에서 지혜는 수시로 양육 환경이나 부모로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지역 간호사, 의사 등이 상담자 구실을 한다. 저소득층이 우선 입주 대상인 네덜란드 사회주택제도에서, 지혜와 같은 청소년부모는 지원 대상에 속한다. 공용공간과 개인공간을 모두 둔 사회주택에서 청소년부모들은 공동체 생활과 독립적인 주거 생활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포괄적인 가족정책 안에서 청소년부모들을 지원한다. 청소년부모만 특정해서 지원하는 게 아니어서 사회적 낙인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주거 문제가 있다면 가족 형태에 따라 모자 또는 부자 시설을 제공받거나 아이 돌봄을 위한 공동 주거지에서 살 수 있다. 독일 전역에 300곳 넘는 모자시설에서는 자기계발 활동, 부모 훈련, 상담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경우 매달 164만원가량의 최저생계비를 받는다. 청소년부모가 성인이 된 뒤에도 사회부조를 받을 자격이 생겨 또 다른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주거 지원이나 최저생계비 말고도 성인이 된 지혜는 아동수당과 난방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한부모일 경우 매달 100유로(12만원가량)가 추가 지급된다.

교육의 기회 역시 빼앗기지 않는다. 독일에선 청소년이 임신·출산 등의 사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는 경우 질병 사유와 똑같이 출석을 인정해준다. 출석 일수 부족 등의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청소년부모는 사회적 낙인 없이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또 독일의 중앙정부는 한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진학이나 전문교육을 받는 한부모를 대상으로 아이 한명에 113유로(14만5천원가량)의 자녀 양육 비용을 부담해준다. 10살 이상인 아이를 둔 경우에도 85유로(11만원가량)가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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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직후 ‘사례관리 필수 대상’ 등록해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선 민과 관이 청소년부모를 함께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위기대응 채널’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주민센터 등을 중심에 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신생아 출생신고를 할 때 부모가 10대라면 동주민센터에서 ‘사례관리 필수 대상’으로 등록하고, 청소년부모에게 현재 신청 가능한 지원 서비스를 안내해주거나 민간단체를 연계해주는 식이다. 정부는 보고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성년부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맞춤형 사례관리에 나설 수 있다.

최근 아름다운재단·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함께 ‘청소년부모 실태조사’를 진행한 임고운 연구원(한밭대 기초융합교육원)은 “외국에선 청소년부모를 혼인·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 양육을 하는 ‘부모’이자 동시에 아직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의 범주에서 보고 통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며 “현재는 청소년부모가 임신 사실을 안 뒤 지원을 받기 위해 센터 등에 직접 문의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청소년들과 밀착 연계하는 거점 기관들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배지현 강재구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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