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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3 05:00 수정 : 2020.01.13 17:56

청소년미자립가정 지원단체 킹메이커에 아기용품이 놓여 있다. 승은(가명) 부부도 종종 이곳에 와 둘째아이를 돌본다.

청소년부모 최초 실태보고서 (상)
10대 부모 315명 면접·설문
가족 외면 속 국가지원 못 받아
양육비 위해 불법대출·사채도

“지낼 곳 없이 날마다 끼니 걱정”
찜질방과 모텔, 24시간 카페서 숙식
임신 기간 5번 넘게 입원해
휴대전화 소액결제 막혀 고리대금업 이용

청소년미자립가정 지원단체 킹메이커에 아기용품이 놓여 있다. 승은(가명) 부부도 종종 이곳에 와 둘째아이를 돌본다.

시큰거리는 허리 통증에 이승은(가명·20)은 눈을 떴다. ‘24시간 카페’라지만 종업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살 어린 남편 김지훈(가명·19)이 승은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임신 4개월을 맞던 지난해 3월, 수도권 변두리의 한 카페의 의자 위에서 밤을 지새운 승은은 문득 서러운 마음이 북받쳤다. 입덧은 그쳤지만, 몸이 붓고 허리가 아파왔다. 눈을 떴던 승은은 다시 카페 테이블에 엎드렸다. 한달 내내 먹고 있는 햄버거조차, 오늘은 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편히 누울 수 있는 찜질방이나 모텔이라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의 출산 반대로 거리를 떠돌게 된 두 10대 부모의 주머니는 텅 빈 채였고, 휴대전화 소액결제까지 모두 막힌 뒤였다. 배 속의 아기를 위해 태교를 하긴커녕, 집을 나온 뒤 승은은 매일 아침 그저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무엇보다 빚 독촉을 해오는 이들의 협박이 자꾸 승은의 마음을 짓눌렀다. 또래 지인에게 빌린 10만원은 이자와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뉴스에서나 보던 ‘추심’ 협박은 아기를 품은 승은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가족도, 국가도, 친구도 손 내밀지 않는 곳에서, 새 생명을 낳아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10대 부모’는 절망의 바닥을 마주해야 했다.

지훈과 승은 부부만이 아니다. 많은 청소년부모가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적으로 방치된 상태에서 불법 대출업체나 개인 사채업자 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는 12일 아름다운재단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이 청소년부모 315명(만 24살 이하)을 대상으로 면접과 설문조사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펴낸 ‘청소년부모 실태조사 연구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청소년부모의 실태를 담은 사실상 최초 보고서다.

실태조사에서 10대나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은 청소년부모 3명 가운데 1명은 양육비로 생긴 빚을 떠안고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아이가 있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제도는 한부모가족을 지원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뿐이다. 기댈 곳 없는 청소년부모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이유다. 2018년 한 해 전체 출생아 32만6822명 가운데 19살 이하 엄마를 둔 아기는 1300명, 24살 이하 엄마를 둔 아기는 1만4600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가 적극 나서서 청소년부모를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가 찾아왔을 때 지훈은 고교 2학년 학생이었다. 고교 1학년 때 검정고시를 친 승은은 이미 학교를 나온 뒤였다. 걱정하는 승은을 설득해 아이를 낳아 키워야겠다는 결정을 주도한 건 지훈이었다. “‘아이가 생겼으니까 무조건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8일 <한겨레>와 만난 10대 아빠 지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새 생명 앞에 가족의 반응은 차가웠다. 지난해 2월 지훈과 승은은 “아이를 가졌다”고 가족들에게 ‘고백’했다. 지훈과 승은의 가족 모두 단호하게 ‘수술’을 권했다. 승은의 어머니도 21살 때 승은을 낳았는데, 승은의 조부모는 손녀가 똑같은 경로를 밟는 것 같아 두려웠다. 승은과 지훈은 가족들의 결정을 따를 수 없어 집을 나왔다. 지인의 집에 머무르며 식당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둘이서 아기를 돌보며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지훈의 가족이 일터로 찾아오면서, 둘의 희망은 2주 만에 물거품이 됐다. 지훈의 어머니와 이모는 승은을 산부인과 병원으로 불러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낙태동의서’였다. 뒤늦게 알고 뛰어온 지훈이 승은의 손을 잡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어린 부모의 ‘양육 절망기’가 시작됐다.

누구도 손잡아주지 않았다

10대 부모를 도와준 지인이 이사를 떠나며, 지훈과 승은은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았다. 둘은 휴대전화 소액결제로 모텔이나 찜질방을 전전했다. 모텔에서는 그나마 어린 부모의 사정을 걱정한 사장이 퇴실 시간을 배려해줬지만, 찜질방에선 ‘청소년 이용 제한시간’이 있어 밤 10시면 거리로 나와야 했다. 그럴 땐 24시간 카페에 가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충분한 영양 섭취가 필요한 임신부였지만, 승은은 한달 내내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고기도 먹고 싶긴 했어요. 그런데 너무 비싸잖아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30만~50만원이던 휴대전화 소액결제 한달 한도마저 다 찼다. 둘은 같은 청소년인 지인에게 10만원을 빌렸다. 지인은 ‘한달 안에 이자 20만원까지 모두 30만원을 갚겠다’는 내용을 담은 각서를 쓰라고 했다. 곧 ‘알바비’를 받을 거라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음이 급해 허겁지겁 각서를 써줬다. 알바비가 들어오자마자 원금부터 돌려줬다.

그러나 ‘이자를 갚지 않았다’며 빚 독촉이 시작됐다. 지인은 페이스북 공개 글에 ‘빚을 갚지 않는다’며 이들의 실명과 함께 승은의 첫째 아이 사진을 올리고, “죽이겠다”고 썼다. 댓글창에는 두 사람에 대한 욕설과 성적인 모욕이 가득했다. “쟤네 낙태하러 갔으니 신고하자”는 거짓말도 적혀 있었다. 갚지 못한 휴대전화 소액결제와 빌린 돈까지 합쳐서 빚은 150만원까지 늘었다. “정말 심했어요. (심각함을) 숫자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1부터 10까지 중에 10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지친 상태여서 신고도 못 했어요.” 지훈이 여전히 그 지옥을 잊지 못하는 듯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승은은 빚 독촉과 불안정한 주거 탓인지 아이를 낳기 전까지 대여섯 차례 입원을 거듭했다. 하혈이 심해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자궁에 있는 태반이 벗겨지는 ‘태반조기박리’ 증상이었다. 병원에선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절망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청소년부모들 많은 수가 승은 부부와 같은 삶을 겪는다. 청소년부모 실태조사 연구보고서를 보면, 평균 임신 나이가 만 18.7살인 청소년부모 315명 가운데 37.8%(119명)가 ‘빚이 있다’고 답했다. 빚 규모는 ‘1천만원 이상 5천만원 미만’이 37.8%(45명)로 가장 많았고, ‘500만원에서 1천만원 사이’도 29.4%(35명)나 됐다. ‘1억원 이상’ 빚을 진 청소년부모도 4.2%(5명)였다.

청소년부모가 돈을 빌리는 이유는 자녀양육비와 주거비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거비와 양육비, 생계비를 위해 대출했다고 답한 이(복수 응답)가 77.2%나 됐다. 그다음이 통신비(15.2%)와 학업비(6.1%) 순서였다. 청소년부모의 절반 이상(57.6%)이 은행에서 돈을 빌렸지만, 불법 대출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이(15.2%)보다 사채업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개인 대출을 이용하는 이(17.6%)가 더 많았다.

기적처럼 내밀어 온 사회의 손

다행히 승은과 지훈에겐 기적처럼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있었다. 승은이 알고 지내던 보컬 선생님을 통해 알음알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소개받았고, 연이어 청소년미자립가정 지원단체인 ‘킹메이커’와 연결됐다. 임신 5개월째로 접어들던 때였다. 두 사람은 킹메이커가 인천에서 운영하는 시설 안에 있는 ‘119 응급하우스’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시설에 딸린 좁은 공간이었지만, 두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곳이었다. 지훈은 그동안 나가지 못했던 학교에 다시 출석할 수 있게 됐다. 인천부터 경기도 광주까지 새벽 5시 첫차를 타고 등교했고, 나중엔 학교를 옮겨가며 제빵과 목공 등의 일을 배웠다.

킹메이커의 ‘119 응급하우스’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두 사람에게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미성년 아빠가 됐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지훈을 징계하겠다고 나섰을 때, 킹메이커가 “교칙에 없는 규정”이라고 항의해 징계를 면했다. 두 사람에게 가계부를 적게 하는 등 경제 교육도 했다. 무엇보다 단체는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두 사람에게 방 2개짜리 월셋집을 구해주고, 보증금과 월세 50만원을 지원해줬다. 승은은 그동안 조모에게 맡겨뒀던 첫째 딸까지 데려와 함께 키울 수 있게 됐다. 조그만 울타리를 갖게 된 승은 부부는 자신들과 같은 청소년부모에게 주거 지원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거주할 곳이 없으니 일도 할 수 없고 학교에 갈 수도 없었죠. 그래서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다 포기해버릴까’ 싶다가도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그랬어요.”

그렇게 조금은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승은은 지난해 8월 두 사람의 아기를 낳았다. 18살이던 지훈은 갓 태어나 우는 아이의 탯줄을 자르면서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손에서 나는 땀 때문에 위생장갑도 제대로 낄 수가 없었어요. 너무나 예뻤는데, 또 너무나 작아서 부서질까봐 무서웠어요.”

승은(가명)과 지훈(가명) 부부가 손을 마주잡은 모습. 이들은 “우리처럼 잘 살고 있는 청소년부모도 있으니 청소년부모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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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모에겐 주거가 가장 필요해요”

승은과 지훈은 그렇게 어엿한 부모가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승은이 ‘한부모가족 지원’을 신청해 첫아이 앞으로 매주 20만원씩 받고 있지만, 첫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한 뒤 한달 식비만 50만~60만원이 든다. 두 아이 모두 유료 예방접종은 맞히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한부모가족 지원’마저 곧 끊길지 모르는 처지다. 동주민센터 쪽에서 “사실혼 관계라 더는 한부모 수급을 받기 힘들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알아보겠다”고 알려와서다.

아직 만 18살인 지훈은 부모가 동의해주지 않아 승은과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청소년부모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 임대주택이나 청년 대상 임대주택을 구하려면 법적 부부로 인정받거나 일정한 보증금을 마련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급여를 받으려 해도 부양의무자인 지훈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부모가족 지원이 아니면, 이 ‘어린 부모’가 도움을 받을 길이 우리 사회엔 아직 없다. 청소년미자립가정 지원단체인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는 “은행 대출이 불가능한 10대 미성년 부모는 불법 대출이나 고리대금 업체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생활고가 반복돼 부부 관계가 끊어지면 아이가 방치되거나 학대당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며칠 새에도 승은은 번갈아 독감에 걸린 아이 둘을 업고 병원을 오가며, 설움을 삼켰다. 그래도 두 아이는 이 ‘어린 부모’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아이를 ‘해님’이라고 불러요. 원래 동그라니까 달님이라고 불렀는데, 달님은 어둡잖아요. 해님처럼 밝게 빛났으면 좋겠어요.” 승은이 5개월 된 둘째 아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

배지현 강재구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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