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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7 16:34 수정 : 2007.06.28 23:02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분식이 되어버린 어제의 경양식,
김치와 풋고추의 친구로 노는구나

■ 서울 명동 가스라

김: 명동에 참 오랜만에 나와 보는 것 같아요. 이쪽에 맛있는 식당 많은데….

X: 오늘은 돈가스 먹으러 가는 거지?

김: 네. 명동에 나오면 늘 돈가스 생각부터 나요. 제 인생의 음식 중 하나가 돈가스였어요. 명동에서 먹었던 ‘서호돈가스’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구나” 싶었어요. 두툼하게 썰어 놓은 돈가스 옆에 양배추샐러드를 듬뿍 쌓아놓았는데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났어요. ‘명동돈가스’ ‘서호돈가스’ ‘진가스’ 등 유명한 집들이 많았죠. 오늘은 가스라로 가보죠. 몇 번 가봤는데, 튀김을 잘하는 것 같아요.

기사 식당의 주요메뉴로 살아남다


X: 예전엔 돈가스가 참 고급 음식처럼 느껴졌지.

김: 실제로 고급이기도 했죠. 7천원, 8천원 했으니까.

X: 양식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경양식집이 생긴 건데, 참 독특한 문화야.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오므라이스 같은 걸 팔았잖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제대로 된 양식이 들어오면서 돈가스는 전문 돈가스 체인점으로 분화된 거지. 오므라이스도 전문점 형태로 독립했고…. 지금은 일본에도 경양식집 같은 건 거의 없더라고. 한국도 그렇고….

김: 어렸을 때 경양식집에서 여자친구하고 돈가스 먹던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으로 바꿔 말하자면, 거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X: 한국은 돈가스의 독특한 문화가 있어. 돈가스가 기사 식당의 주요 메뉴로 살아남은 거지.

김: 왕돈가스 말이죠?

X: 에이포(A4) 종이 크기하고 비슷하다고 해서 에이포 돈가스로 부르기도 하지.(웃음) 내가 생각하기엔, 택시 기사들의 향수 어린 음식이 바로 돈가스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야. 어린 시절에 돈가스를 귀한 음식으로 생각했으니까, 그걸 먹게 되는 거지. 그리고 양이 많으니까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고…. 대신 돈가스와 함께 김치나 풋고추 같은 걸 곁차림 메뉴로 내놓으니까 반응이 좋았지. 그냥 먹으면 느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오스트리아의 돈가스라 할 수 있는 슈니첼.
김: 돼지고기가 참 맛있는 음식이에요. 어떤 요리사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 소는 먹기 위한 동물이 아니라 일을 시키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다. 일을 시키다가 먹게 된 거다. 그렇지만 돼지는 오로지 먹기 위해 키운 동물이다. 그러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맞는 말 같아요.

X: 웃기는 건 한국에서는 삼겹살만 비싸다는 거지. 삼겹살이 지금 킬로그램에 9천원 정도 하는데, 돼지 안심은 4천원 정도야.

김: 돈가스 표면에 튀김옷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걸 보면 더 먹음직스러운 것 같아요. 잘 튀겨서 그런 건가?

X: 그건 실력이랑 상관없어. 빵가루가 두 종류 있어. 마른 빵가루, 젖은 빵가루. 일본식 돈가스에는 젖은 빵가루를 쓰지. 그걸 쓰면 이렇게 삐죽삐죽 튀어나와. 그런데 이게 좀 문제가 있어. 젖은 빵가루를 쓰면 마른 빵가루보다 기름을 훨씬 많이 먹어. 접촉면이 넓어지니까.

김: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기름이 많게 느껴지네. 평소보다 좀 느끼해요.

X: 튀김만큼 예민한 요리가 없어. 보통 튀김기 속에 전자온도계가 내장돼 있어. 180도 정도로 맞추는데, 주문이 밀리는 시간이면 사정이 달라지지. 한꺼번에 튀기면 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온도를 올리면 되겠지만 여러 개를 튀길 때 온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요리사의 컨디션과 튀기는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김: 그러면 주방장이 튀김을 담당해요?

X: 그게 문제지. 한국에선 보통 막내들이 기름솥을 보거든. 설거지 끝나면 기름솥을 맡겨. 왜냐? 일이 더럽거든. 제과점도 마찬가지야. 서양에선 주방장이나 부주방장급이 오븐을 담당하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아.

표면이 왜 삐죽삐죽 울퉁불퉁하지?

김: 이 집 초밥은 문제가 좀 많은데요?

X: 밥이 너무 따뜻하네. 체온보다 낮아야 하는 건데, 거의 뜨거운 수준이잖아. 이게 얼마야? 만오천원이야? 심하다. 이걸 왜 파는지 모르겠다. 밥하고 생선하고 따로 노네. 내가 광화문에 있는 회전초밥집 갔다가 열 받은 얘기 했었나? 참치 초밥을 내놓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 해동도 안 된 참치를 펄펄 끓는 밥 위에다 처억 얹어서 돌리는데, 기가 막히더라. 그게 한 세 바퀴 도니까 생선이 바싹 말라버리더라.

김: 한 세 바퀴 돌면 온도는 맞겠네요.(웃음)

X: 참치 질도 너무 나빴어. 통조림으로나 써야 될 참치를 초밥에 얹으니…. 이 집도 만만치 않다. 메뉴에서 빼버리는 게 낫겠어. 밥 위에 얹은 와사비의 형태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밥이 뜨거우니까 와사비가 다 녹아버렸잖아.

김: 오스트리아에 갔더니 슈니첼이라는 음식이 있더라고요. 그게 돈가스의 원조란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X: 나는 밀라노에서 돈가스의 원조를 봤는데, 비슷한 음식일 수 있겠다. 음식 이름이 ‘코스톨레테 알라 밀라네세’인데 거긴 돼지갈비를 이용해. 돼지갈비의 뼈를 발라내고 두들겨서 편 다음에 달걀을 입혀. 그걸 프라이팬에다 지지듯 굽는 거지.

김: 제가 먹었던 건 표면이 이렇게 고르질 않고, 울퉁불퉁해요. 뭐랄까, 대충 만들어서 파는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X: 그건 아마 그 나라 관습일 거야. 얇게 고기를 잘라낸 다음 힘줄 같은 걸 끊어내지 않으면 표면이 울퉁불퉁하잖아. 대충 만든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먹는 음식이었겠지.

김: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제가 일본식 돈가스에 익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X: 이탈리아에 갔을 때 슈퍼마켓에 들어갔더니 냉동돈가스 같은 음식들이 무지하게 많아. 치즈가 흔한 나라니까 안에다 치즈를 많이 넣어. 고르곤촐라를 넣은 것도 있고, 모차렐라를 넣은 것도 있고. 청소년들이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 맞벌이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니까 그런 외식사업이 활발해지는 거지.

김: 아, 돈가스 종류 중에 코돈브루라는 게 있잖아요? 도대체 그 이름은 어디서 온 걸까요?

X: 그 이름이 코르동블루를 뜻하는 거잖아. 내 추측엔, 어디선가 ‘푸른 리본표’ 모차렐라 치즈를 팔았을 거야. 그래서 코돈브루라는 게 치즈를 의미했겠지? 그 치즈를 넣어서 만든 돈가스를 코돈브루돈가스로 불렀고, 그게 코돈브루라는 이름으로 정착한 게 아닐까.

김: 추측이죠?

X: 100퍼센트 추측이지.

김: 그럴듯하긴 해요.(웃음)

일본 돈가스 별거 없더라

X: 얼마 전 일본에 가서 몇십 년 전통의 돈가스 집엘 갔는데 별다른 게 없어. 참깨를 갈아서 만든 소스를 주는 게 좀 남다르긴 하지만 그런 스타일로 하는 집들도 많잖아? 맛있긴 하지만 ‘아, 대단한 요리를 먹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 그리고 소스가 강하면 고기의 육즙이 느껴지질 않지. 일본에서도 체인점보다는 작은 집들이 맛있어. 체인을 해도 가족 형태로 분화되는 체인점 정도면 맛이 유지되지.

김: 이제 돈가스가 외식메뉴 1위가 되는 시대는 간 것 같아요.

X: 돈가스라는 음식은 딱 그 정도가 맞는 것 같다. 그냥 지나가다가 들러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이라는 개념보다는 이제 분식에 가까운 음식이 된 것 같아.

김: 돈가스를 먹으면서 가슴이 뛰던 시대는 갔나봐요. 시대가 바뀌고 우리는 나이를 먹고.

X: 나이는 먹지 말고 돈가스나 마저 먹어라.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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