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1 15:30
수정 : 2019.11.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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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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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황금비의 골드바
“용역비 좀 주세요”, “예산 좀 확대해주세요”
낮에는 혼내고 밤에는 고개숙이는 예결위 의원들
내년 총선 앞두고 ‘현수막 하나라도 더 걸자’
“‘예결위원’ 대표성 망각하는 행태” 지적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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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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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님, 부산 자주 오십니까?”
4일 밤 10시40분.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경제부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별 심사 회의가 끝나갈 무렵,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홍남기 부총리겸기획재정부장관을 향해 질의를 시작했습니다. “자주는 못갔는데…” 홍 부총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 의원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우리 서부산은 낙후돼 있습니다…삼락공원으로 가는 육교형 프론트시티를 만들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이게 제 필생의 사업이거든요. 이것 이번에 용역비 좀 주세요.” 홍 부총리가 답했습니다. “그런데 위원님, 저게 부산시 사업이 돼야 될 것 같은…” 장 의원의 지역구는 부산 사상구로, 삼락공원이 있는 곳입니다.
11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예산안 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한겨레>가 지난달 30일과 4일 열린 국회 예결특위 경제부처 심사 발언을 분석해보니, 내년도 예산안이나 정부의 경제정책보다 자신의 지역구 민원에 질의를 집중하는 예산위원들의 행태가 반복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이번 예산안 심사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마지막 예산이어서, 국가 재정 전반을 검토하는 예결위원의 대표성을 망각하고 전체 회의에서 지역구 민원만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예결위원들의 민원성 질의는 언론의 눈을 피해 늦은 밤 시간대에 집중됐습니다. 30일 밤 3시간24분동안 5명이, 4일 밤에는 2시간10분동안 무려 7명이 자신의 지역구 민원성 질의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낮에는 정부와 야당의 경제정책을 질타한 뒤 밤에는 자세를 바꿔 지역구 예산을 호소했습니다. 30일 낮 일자리안정자금 관련 예산 등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했던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대구 북구)은 밤이 되자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게 대구 물산업 클러스터 사업을 언급하며 “내년 사업 예산 455억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냐”라고 거듭 재촉했고요. 4일 낮 ‘전 정부 세수 할당' 논란을 두고 관세청장을 질타한 정점식 자유한국당 의원(경남 통영·고성)도 이날 밤엔 “통영 굴 패각 처리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 해수부에서 패각 처리 예산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운영위 국정감사 도중 삿대질을 한 강기정 정무수석을 비판한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밤이 되자 지역구의 충주댐을 두고 “출연금에 견줘 지원금이 적다. 이런 것 고려좀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500조원을 넘지 못하도록 14조5천억원을 순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한편, 소속 의원들은 내 지역구 챙기기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30일 오전 질의에서 주휴수당 삭감 등의 정책이 독단적으로 진행되면 안된다고 강조한 정의당 이정미 위원도 저녁 8시 이후 추가질의에서는 ‘인천항 물류망 확보’, ‘인천 도시철도 연장사업’, ‘송도 바이오산업 클러스터 산업’등 지역구 관련 사업 민원을 쏟아냈습니다. 비례대표인 이 의원은 오는 총선에서 인천 연수 출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질의 마지막에 은근슬쩍 민원성 예산을 밀어넣는 것은 여당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30일 지역구인 단양을 예로 들며 “국립공원지역 오폐수 시설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한 이후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언 전 “질의할 때마다 지역구 문제 연관된 질문을 드리는데, 그간 예산에서 많이 배려를 받지 못한 지방 중소도시의 사정이라고 생각을 해달라”고 읍소했습니다. 같은 날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의원(대구 북구)이 ‘대구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건축비 예산을 증액을 요청하려고 하니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요청하자, 홍남기 부총리는 “장비의 경우 예산 지원을 했지만, 건축비를 지원한 사례는 없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경제 부처 종합 심사’라는 회의의 본질을 망각한 듯 질의 내내 노골적으로 지역구 이슈만 언급한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전북 전주가 지역구인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은 4일 “새만금 배수지에 1억6천만원 들여서 설계를 내야하는데 그 예산이 안 잡혀있다. 작지만 꼭 순서를 잘 잡아줘야 한다”고 ‘깨알같이’ 예산을 챙기는가 하면, “새만금 신항만을 곡물 전용 부두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라며 홍남기 부총리의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제가 전북에 중소기업연수원 건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예산 태우실 것이지요?” 정 의원의 요구에 홍남기 부총리가 타당성 평가를 언급하며 난색을 표하자, 정 의원은 “이제 꼭 넣으셔야 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앞서 30일 회의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차별 완화 대책이 무엇이냐”라며 정부의 노동 정책을 묻는 것으로 질의를 시작한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김해 을)도 이날 남은 질의 시간을 모두 김해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채웠습니다. 주민의 소음 피해등을 언급하며 신공항계획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김정호 의원은 질의 말미 “부울경 지역은 민생이 정말 어렵다.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호소하며 질의를 마쳤습니다.
국회법에서 정하고 있는 예결위원 50명은 보통 당에서 지역을 안배해 선정하지만, 전체 의원을 대표하는 만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담고 있는 거시정책이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그러나 올해 예결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예산 확보 현수막을 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이 더욱 강한게 현실입니다. 국회 관계자는 “지역 예산 따내는게 지역에서는 중요한 의정활동으로 여겨진다. 의원들도 민원성 발언하는게 민망하다는걸 알면서도, 자신이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질의했다는 것 자체가 지역에서는 하나의 홍보효과로 비춰진다”고 말했습니다. 한 초선 의원은 “예결위원은 대표성을 갖고 내년도 예산안을 전반적으로 심사하는 의원들이지, 자기 지역구를 콕 집어 예산 확보하려고 회의장에 들어가는게 아니다. 전체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예결위원의 본질을 망각한 행태”라고 지적했습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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