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여기저기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이나 영남대의료원 보건의료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갈수록 보수화되어가는 정부가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어차피 보수정당이다. 보수정당 정부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치, 경제, 군사적 주권 확립이다.
며칠 전 고향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 <변호인>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상임이사 고호석 선생이 11월25일 63살 나이로 운명했다. 작년 이즈음에도 멀쩡했는데, 골육종 암이라고 이름도 처음 듣는 병으로 몇달을 병상에 있다 떠난 것이다.
빈소에서 누가 말했다. “고문 후유증 때문이지.” 1981년 부림 사건으로 같이 고초를 겪었던 후배는 생각이 달랐다. “내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자, “니는 몸이 건장하잖아. 그라고 호석이는 훨씬 더 혹독하게 당했으니까.” 고문 같은 건 경험한 적 없는 내가 주눅 든 소리로 물었다. “근데 왜 고 선생이 더 심하게 고문받았습니까?” 후배가 말했다. “수괴였잖아요. 수괴.” 그랬구나. 그 시절 부산대 친구들이 같이 야학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 ‘사랑공화국’이었는데, 그 나라의 맏형이었으니까 수괴가 맞긴 맞네.
사랑공화국의 수괴를 인민공화국의 하수인으로 만들기 위해 한달 이상 고문을 했는데도 쓸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없는 죄도 만드는 곳이 검찰이다. 친구들끼리 모여 독재를 비판한 것은 이적단체 고무, 찬양으로, 책방에서 사서 읽은 책들은 이적표현물 소지라고 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는데, 판사는 국가보안법이나 계엄법 위반 같은 것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6년 징역의 실형을 선고했다.
근 40년 전의 일을 거론하는 까닭은 그 역사가 다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신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사람들 대다수는 사랑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선 세력이 내부의 독재 권력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제국주의적인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어떻게 예속되어 있는지 토론했다. 하지만 이건 소수 학생들의 일이었고, 대부분은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온 교수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대화의 요지는 미국은 누가 뭐래도 민주주의 국가로서 여론에 의해 정치가 움직이는 나라이기 때문에, 박정희가 계속 독재 권력을 휘두른다면 미국의 여론이 나빠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 정부도 박정희 정권을 계속 지지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기대가 우리 사회에서 차가운 불신으로 바뀐 것은 80년 5월 이후였다. 미국을 호의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그 시절 광주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고립무원의 열흘 동안 광주 시민들 사이에 미국의 항공모함이 광주를 구하기 위해 한반도 해역으로 진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항공모함이 광주 시민을 구하러 온 것은 아니었으니, 항쟁은 마지막날 새벽의 학살극으로 끝났다. 그 후 광주는 미국을 믿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평화 시에도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12·12 쿠데타를 통해 신군부가 등장한 뒤 겉으로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행세했으나 5·18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는 신군부의 행태에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누가 권력을 장악하든 미국의 이익만 해치지 않으면 그만이니, 자기들의 통제 아래 있는 군대가 미국에 반기만 들지 않는다면, 국내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사견이 사람을 물어 죽였다면 개 주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이치에 따라 82년 부산에서 고신대생 문부식과 부산대, 부산여대 학생들 여럿이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그 후 85년 5월에는 서울의 여러 대학생들이 서울의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였다. 이렇게 미국문화원이 여기저기서 공격 대상이 되자, 결국 미국 정부는 기존의 미국문화원을 모두 폐쇄해버렸다.
그런데 87년 이후 진행된 한국의 민주화는 거시적으로 볼 때 미국과 일본에 문화원을 폐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까지 대다수 한국 정부는 껍데기만 주권국가의 정부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일본 통제 아래 있는 조선총독부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알아서 챙겨주었는데, 한국의 민주화와 함께 시민들 사이에 국가의 주권에 대한 명확한 자각이 뿌리내리고 정부 역시 더는 총독부 노릇을 하려 하지 않자 한국을 식민지처럼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국가 주권에 관해서는 이전의 어떤 정부보다 자주적인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으로서는 지난 2년의 세월 동안 일어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처음에는 국내의 친일 정당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관망하는 편이었으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참패하는 것을 본 뒤에는 평상심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도사견이 되어 한국 정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지소미아 문제가 불거진 뒤에는 한국 정부에 대한 미·일의 무례한 비판이 도를 넘더니, 급기야 현직 미국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 좌파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한 것을 보면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거니와, 이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시민과 독재권력 사이의 내적 대립으로부터 한국과 외세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통일된 나라에서 누구와도 반목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국가도 그 소박한 소망이 실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우리를 분열과 적대적 반목 속에 묶어 두고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좋을까. 자유로운 인간으로 태어나 노예로 살지 않으려면, 이 사악한 제국주의적 질서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내부의 반독재 투쟁이 외부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한국 민주화의 역사가 지닌 세계사적 의의이다.
이 겨울 여기저기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이나 영남대의료원 보건의료 노동자들 그리고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등을 생각하면, 나는 갈수록 보수화되어가는 문재인 정부가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은 어차피 보수정당이다. 보수정당 정부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치, 경제, 군사적 주권 확립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선결문제다. 한국 정부가 다시 조선 총독부 시절로 퇴행한다면, 그때 우리 사이에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출규제나 지소미아 모두 저쪽에서 먼저 걸어와 피할 수도 없게 된 싸움이니, 우리는 이제 미군 철수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로 응수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상봉 ㅣ 전남대 철학과 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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