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5 16:48
수정 : 2019.09.0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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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 담겨 버려졌던 유기묘 시절의 살구. 한쪽 눈이 없어 더 마음이 쓰였고 결국 입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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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고양이 순살탱
3회. 한쪽 눈이 없는 고양이, 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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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 담겨 버려졌던 유기묘 시절의 살구. 한쪽 눈이 없어 더 마음이 쓰였고 결국 입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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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7만9천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삼형제 순구, 살구, 탱구를 아시나요? <고양이 순살탱>의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단순히 고양이의 귀여움을 전하는 게 아닌, 성묘, 그리고 장애묘 입양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쪽 눈이 없는 살구, 선천적으로 두 눈이 안 보이는 탱구도 반려인의 배려와 사랑으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 ‘호구 집사’라 불리는 걸 마다치 않는 작가와 세 고양이의 일상을, 책이 출간되기 전 <애니멀피플>에서 단독 연재합니다.
순구가 혼자 있을 때면 외로운 듯해서 둘째를 들일까 고민하던 무렵,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오키, 도키, 로키’라는 이름의 유기묘 입양 홍보 글을 읽었다. 오키와 로키는 한쪽 각막이 뿌옇게 변했고, 도키는 왼쪽 눈을 적출한 상태였다. 처음 발견했을 때 세 마리가 한 상자에 담겨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눈이 아파서 버려졌나 생각하니 마음이 쓰여서, 그 계정을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셋 중 도키는 두 달째 입양을 못 가고 있었다. 전주에서 구조되어 서울의 사설 보호소에서 임시보호 중이었는데, 여름휴가 기간인 데다 휴가철에 버려지는 동물이 많아 입양이 더 어렵다고 했다. 언젠가 둘째를 맞이한다면 암컷 새끼 고양이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합사가 원활하려면 첫째와 성별이 다르거나 나이 차가 많아야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키의 상황을 보니 내가 데려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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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운 살구와 순구의 ‘패닉’
입양신청서를 쓰다 보니 내겐 입양 심사에서 불리한 조건이 많았다. 이런 문구도 있었다. “결혼 및 출산 예정자는 절대 안 됨.” 지금이야 ‘그 이유로 버려지는 고양이가 오죽 많으면 그럴까’ 싶지만, 당시 결혼 예정자이자 출산도 희망했던 나로서는 뭔가 입양을 시도해보기도 전에 차별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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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 치고 싶은 살구는 순구를 보기만 하면 때렸고, 순한 순구는 대부분 맞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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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심을 다해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고, 다행히 보호소에서도 내 진심을 믿어주셨다. 가족이 될 도키에게는 살구라는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무심코 지은 ‘순구’라는 이름을 따라 순구가 순한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둘째는 ‘살가운 살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집에 온 첫날, 살구는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종이상자에 숨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상자에서 살금살금 나오더니 여기저기 냄새 맡고 다니며 예상외로 금방 적응했다. 심지어 순구가 가장 좋아하는 창가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제는 순구였다. 처음 보는 고양이에게 자리를 뺏긴 순구는 패닉에 빠졌다. 다음날부터 스트레스로 설사를 시작하더니, 겨우 완치됐던 결막염과 링웜도 재발했다.
보통 합사 전에는 격리하면서 서로 익숙해질 시간을 줘야 한다고 하는데, 당시엔 순구를 탐탁찮게 여기는 아버지 때문에 내 방에서만 순구를 키우던 때라 바로 합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늦게나마 살구를 동생 방에 격리했지만, 순구는 살구와 한 방에서 보낸 며칠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혼자 있을 때도 부르르 떨었다. 동갑에 같은 성별, 심지어 순구보다 덩치도 큰 아이를 둘째로 들여도 아무 갈등이 없을 거라고 믿다니 난 정말 안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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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사 첫날부터 살구가 창가 쪽 명당 자리를 차지하자, 순구는 그만 패닉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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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합사를 시도할 때마다 순구는 나를 공격했다. 마치 모르는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워낙 순하고 배를 만져도 싫어하지 않아서 ‘개냥이’인 줄 알았던 녀석이 처음 하악질을 하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나를 공격하며 허벅지를 물었다.
늘 곁에서 함께 자던 녀석이 침대 밖에서 멀찍이 떨어져 잤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듯 폭식하기도 했다. 살구를 데려오는 게 외로운 순구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지만 큰 착각이었다. 순구는 사람에게만 순하고 다정한 고양이란 걸 그땐 미처 몰랐다.
합사 며칠 후 살구를 어루만져 주다가 옆구리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땜빵 자국을 발견했다. 그 부분만 털이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순구의 링웜을 경험한 나로서는 혹시 살구도 피부병에 감염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급한 마음에 살구를 보내주신 분에게 전화로 여쭤봤다. 그분은 사진을 보더니 “물린 자국이네요” 했다.
하지만 난 순하디 순한 순구가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다음날 바로 살구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거기서도 물린 지 며칠 안 된 자국이라고 했다. 잠깐이나마 살구를 오해했던 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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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미운 정이 들었는지, 큰형님의 아량인지 순구는 종종 살구에게 곁을 허락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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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사 스트레스로 순구가 이상행동을 시작한 것도 모두 내 탓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살구를 돌려보낼 순 없었다. 뒤늦게나마 하루 몇 분씩만 둘이 마주하게 하며 천천히 합사를 시도했지만, 살구는 만날 때마다 순구를 때렸다. 그런데 순구는 맞고도 가만히 있었다. 스트레스로 순구가 아픈 것도 너무 속상한데, 동생에게 맞아도 가만있으니 더 화가 났다. 그렇다고 살구를 꾸짖을 수도 없으니 결국 내 탓만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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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바냥’을 알게 됐다
고양이는 생김새와 털 색, 눈동자 색 정도만 다른 줄 알았는데, 사람처럼 모든 구석이 다 다른 생명체였다. 합사를 통해 경험했듯 성격 또한 다 달랐다. 고양이마다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에도 좀 충격을 받았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게 생겼지만, 순구는 바리톤 같은 중저음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살구는 테너처럼 하이 톤 목소리였다. 순구 외에는 다른 고양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 없어서, 살구의 가늘고 높은 울음소리가 왠지 아픈 것처럼 들렸다.
살구를 둘째로 들이고서야 그동안 많은 걸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관심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살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모든 고양이가 순구처럼 청소기도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으며, 낯선 사람도 가리지 않는 동물이라 착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순구와 살구를 함께 키우며 새삼 생명의 다양성을 배워간다.
글·사진 김주란, 인스타그램 @soongu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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