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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6 10:28 수정 : 2019.09.06 16:37

‘곧 지워질 얼룩’이라던 오른쪽 팔의 자국은 나중에 링웜으로 밝혀졌다.

[애니멀피플] 고양이 순살탱
1회. 첫 고양이를 ‘구매’하던 날

‘곧 지워질 얼룩’이라던 오른쪽 팔의 자국은 나중에 링웜으로 밝혀졌다.

인스타그램 7만9천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삼형제 순구, 살구, 탱구를 아시나요? <고양이 순살탱>의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단순히 고양이의 귀여움을 전하는 게 아닌, 성묘, 그리고 장애묘 입양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쪽 눈이 없는 살구, 선천적으로 두 눈이 안 보이는 탱구도 반려인의 배려와 사랑으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 ‘호구 집사’라 불리는 걸 마다치 않는 작가와 세 고양이의 일상을, 책이 출간되기 전 <애니멀피플>에서 단독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은 동물에 대한 선입견을 만든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병균 옮는다”며 동물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동물은 더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개를 보면 피해서 멀리 돌아갔다. 혹시 물까 봐 무서웠고, 손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만지는 건 생각도 못 했다. 길고양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마당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며 중성화수술까지 해주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순구, 살구, 탱구를 만나며 생긴 변화다.

동물에 무관심한 정도를 넘어 무지했던 내가 동물을 키워 볼까 생각한 건 외로움 때문이었다. 2012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취업하면서 자취를 시작했을 때 즐겨 보던 SNS 계정이 있었다. 그 계정에는 고양이가 주는 위로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왔다. 고양이를 키우면 정말 저럴까 싶었다. 하지만 동물을 키우기엔 돈도 시간도 없었다. 내가 살던 방은 싱글 침대 하나만으로도 꽉 찰 만큼 좁았고, 괜히 동물을 들였다가 집주인에게 트집 잡힐까 걱정도 됐다.

펫숍에서 처음 만난 날, 순구는 내 품에 안겨 벌벌 떨었다.
몸도 약했다.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본가로 들어갔을 때 몸살이 한 달이나 이어졌다. 검사 결과는 섬유근통증후군. 통각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손에 물이나 바람이 닿기만 해도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왔고, 관절과 근육도 약해져서 누워만 있어야 했다. 한국에 알려진 지 20년도 채 안 된 희귀 난치병이라 원인도 모르고, 고칠 수도 없다는 말에 더 힘들었다.

섬유근통증후군 환자 중 70% 이상이 우울증을 함께 경험한다. 의사가 강력한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었지만 부작용도 컸다. 일하는 날에는 약을 먹지 말아야 겨우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담당 의사는 “반려동물을 키우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동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께 얹혀사는 처지라 불가능했다.

펫숍 주인은 생후 2개월이라고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작고 약해 보였다.
아프다고 마냥 누워만 있을 순 없어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상근직은 무리여서,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면 되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까지 비는 시간에 엄마와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가까운 펫숍에 들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는 펫숍에서 동물을 사고파는 일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 무렵 알게 된 ‘러시안 블루’라는 품종을 실제로 보고 싶었고, 그런 고양이는 가격이 얼마나 할까 궁금했다.

펫숍에는 스케치북 크기만 한 유리 진열장에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었다. 큰 고양이는 하나도 없고 새끼 고양이만 있는 풍경이 낯설었다. 고양이들은 절규하듯 “빽빽” “짹짹” 울며 문틈으로 앞발을 휘저었다. 내가 보길 원했던 러시안 블루도 있었고, 자기를 봐 달라며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벵갈 고양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 한쪽 구석에서 털을 바짝 세우고 쭈그려 앉은 하얀 스코티시폴드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 의욕 없이 있는 모습이 왠지 신경 쓰였다.

발로 놀아주는 걸 너무 좋아해서 ‘족구’라는 별명을 얻은 순구.
펫숍 주인이 건네준 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안아 보았다. 어깨를 타고 넘어가려는 녀석, 내 손을 긁으며 발버둥 치는 녀석…. 활동적인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하얀 새끼 고양이는 내 품에 안겨 벌벌 떨었다. 그 고양이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펫숍 주인은 나와 잠깐 대화를 나눠 보고는,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가격을 물어보았더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금액을 불렀다. 하지만 어차피 고양이를 사러 간 건 아니었으니 “나중에 올게요” 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주인의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나중에 오셔도 다른 스코티시폴드는 있겠지만, 이 아이는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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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 깎아줄게요”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걸 알아챈 펫숍 주인은 잽싸게 다양한 혜택을 제시했다. 산 지 14일 내에 고양이가 아프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겠다는 둥, 연계 병원이 있어 병원비도 비싸지 않다는 둥, 모래와 사료도 거저 주겠다는 둥…. 급기야 파격 할인까지 해주겠다며 쐐기를 박았다.

스코티시폴드는 흰색이 인기가 많아서 비싸요. 원래 80만 원인데, 앞발에 노란 자국이 좀 있으니까 10만원 깎아줄게요. 저 자국도 금방 없어질 거예요.”

하필 그날 통장에는 얼마 전 고민 끝에 해지한 개인연금 환급금 90만원이 있었다. 그 새끼 고양이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2015년 3월,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던 내게 너무나 충동적으로 첫 고양이가 생겼다.

글·사진 김주란, 인스타그램 @soongu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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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애니멀피플] 고양이 순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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