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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1 07:00 수정 : 2019.09.02 11:59

써니항공 제공

[월간 쉼표토크② 김병만과 도전]
‘정글의 법칙’ 등 방송촬영 틈틈이
2년간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 준비
하루 10시간 영어·수학 공부부터
단독비행까지 완수

“도전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
몸개그 넘어 ‘익스트림 예능’ 개척
스카이다이빙·굴삭기 기능사 등
40개 넘는 자격증 ‘도전의 달인’

어려운 형편, 작은 키 탓에 좌절
개그맨 시험도 7번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쳐
다음 도전은 ‘비행기로 세계일주’

써니항공 제공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몸과 마음의 지침을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나요? ‘월간 쉼표토크’는 매달 첫주 월요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과 위로를 찾는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합니다.

#2017년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그가 스카이다이빙 교관 자격증을 딴 이후였다.

“다음엔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비행기를 직접 몬다고요? 우와, 멋진 일이네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불가능한 도전 같아 흘려버렸다. 제아무리 ‘자격증으로 카드놀이 하는 달인’이라도 비행기 조종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필기에 실기까지 공부할 것도 방대했고, 무엇보다 항공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비행기를 몬다는 게 상상이 안 갔다.

#2019년

5월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드디어 실기 시험을 칩니다. 너무 떨려요.”

“이번엔 무엇에 도전을?”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요.”

“네?”

잊고 있던 2년 전의 약속을 그는 줄곧 지켜오고 있었다.

곧장 ‘도전의 달인’ 김병만(44)을 만나러 전남 무안으로 달려갔다.

그는 <정글의 법칙>(에스비에스) 등 방송 촬영이 없는 날에는 늘 이곳에서 머물며 비행기 조종면허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자가용 비행기 조종면허 자격증은 운전면허처럼 필기에 통과한 뒤 실기를 치르지만, 실기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게 매우 힘들다. 그는 “40시간 이상 비행 경력을 갖춰야 하고, 그중 10시간 이상은 교관 없이 단독 야외 비행을 해야 실기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저는 지금 42시간을 넘겼다”며 뿌듯해했다.

비행은 둘째 치고 필기 시험 통과부터 만만찮다. 몇달 전 <개그콘서트>(한국방송2) 1000회 특집 녹화장에서 만났던 그는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영어 단어는 물론 삼각함수 등 수학 공식이 빼곡히 적힌 노트가 가득했다. 고3 수험생 저리 가라였다. 그를 가르친 이태곤 써니항공 교관은 “자가용 비행기 조종면허 자격증은 영어와 수학의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김병만은 1·2차 방정식부터 다항식, 비례식, 삼각함수까지 수학 공식부터 터득한 뒤 이론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병만은 “조종 언어가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서 영어 공부도 따로 했다”며 웃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김병만은 ‘항공법’ ‘항공기상’ ‘비행이론’ ‘공중항법’ ‘교통통신’ 5과목 시험에 통과했다. 그는 “하루에 많게는 10시간씩 공부했다”고 한다. 첫 과목은 5번 만에 붙었고, 전 과목은 공부한 지 8~9개월 만인 지난해 8월께 다 통과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실력은 뒤에서 3~4등이었는데 이제 증명이 됐어요. 내가 안 해서 못한 거지, 못해서 안 한 건 아니라고. 하하하.” 문병식 써니항공 교관이 “궁금한 것을 늘 물어보는 등 너무 성실하게 임해서 놀랐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굿 모닝’도 어색해서 입 밖으로 잘 못 꺼냈다”던 그는 이날 비행 연습에서 “무안 그라운드 컨트롤 호텔리마 1249호기, 인포 폭스 트롯 리퀘스트 택시” 등 조종 용어를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응? 뭐라고요? (무안 비행장에서 호텔리마 1249호기가 지상 활주를 요청합니다!)

써니항공 제공

그가 꿈이던 자가용 조종면허 자격증 시험에 용기를 낸 것은 2017년 스카이다이빙 중 불시착해 척추뼈 골절 부상으로 수술을 한 뒤 입원해 있으면서다.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멈춰 서 있었죠. 이 시간에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항공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공부는 누워서도 할 수 있으니까.” 수술 뒤 재활치료를 받는 내내 공부에 매달렸다.

지인들은 ‘잘못하다 몸이 마비된다’며 겁까지 주며 쉬라고 했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도전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자 에너지예요. 도전하지 않는 김병만은 살아 있는 게 아니죠.”

돌이켜 보면 그 못 말리는 도전 정신이 ‘익스트림 예능의 달인 김병만 선생’을 만들었다. 남들은 타고난 입담으로 돈을 벌기도 하는데, 무술을 접목한 개그를 하고 싶었던 그는 몸 바쳐 노력해야 했다. 2007년부터 3년11개월 동안 계속된 <개그콘서트> ‘달인’에서 그는 줄을 타고, 외발자전거를 타고, 통을 굴리고, 텀블링을 했다. 5분 남짓 방송을 위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수개월간 연습했다. ‘몸빵’만 할 줄 아는 ‘무식한 개그맨’으로 치부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당시는 몸개그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괜찮았어요. 시청자들이 박수를 보내줬으니까요. 그걸로 행복했어요. 내가 흘린 땀을 응원해준 것 같아서 더더욱.”

‘달인’에서 시작된 도전은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소림사> <주먹 쥐고 주방장> <주먹 쥐고 뱃고동> 등으로 이어지며 ‘익스트림 예능’ 시대를 열었다. 그는 야생에서 집을 짓고 뗏목을 만들고 불을 지폈다. 김병만은 “예측불허 자연이 주는 의외성, 자연의 애드리브가 매력적”이라며 “익스트림 예능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영역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특전사가 집 짓는 영상을 찾아보고 공부하는 등 더 새로운 익스트림 예능을 위해 연구한다. 스카이다이빙 탠덤 교관, 굴착기 기능사, 바이크 2종 소형 등 40개가 넘는 자격증(인정증 포함) 역시 익스트림 예능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조종 면허를 따려고 영어, 수학의 기초 지식부터 쌓았다. 하루 10시간씩 공부했다.

사실 김병만의 인생 자체가 도전의 역사였다. 텔레비전 속 청룽(성룡)에게 반해 무술 연기자를 꿈꿨지만, 빚만 그득한 가정형편에 158.7㎝ 작은 키의 남자가 연기자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무작정 고향 완주를 떠나 서울에 와서 막노동을 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연기학원에 다녔다. 20살 때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4층에서 떨어져 고소공포증이 생기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무대공포증까지 있어서 그걸 극복하려고 4년간 연극판에서 살았지만, 한국방송 공채 개그맨에 8번 도전 끝에 붙었다.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멈추지 않았고, 2001년 영화 <선물>에 출연한 것이 눈에 띄어 <개그콘서트> 출연 기회를 얻은 이후 다시 공채에 도전했다. “다들 안 된다고 했어요. 집에 전화해 엄마한테 만원만 부쳐달라고 사정한 적이 있을 정도로 상황도 어려웠죠.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걸 보면 저에게 도전 디엔에이가 바닥에 깔려 있었나 봐요.”

유명해진 뒤에도 고생스러운 옛날을 잊지 않는 김병만은 네팔에 초등학교를 지어주고, 창업하는 이들을 돕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조용히 돕고 있다.

김병만이 비행 연습이 끝난 뒤 교관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뭔가에 미쳐서 도전하고 이뤄낼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지만 이제 그도 우리 나이로 45살이다. 곧 체력의 한계가 올 수도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고민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하하하하하” 화통한 웃음이 돌아왔다. “나이에 맞는 익스트림 예능을 하면 돼요. 20대 때 백텀블링을 했다면 지금은 다른 도전을 하죠. 그때는 체력만 있었지만 이젠 노하우가 있어요.” 그는 휴대폰으로 짧은 코미디 영상을 촬영해 올리는 등 자신만의 웹콘텐츠도 구상 중이다. 최근엔 ‘김병만의 어드벤처’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다양한 도전을 공개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하늘을 나는 공부’를 계속할 작정이다. “비행 조종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요. 비행 조종술에 대한 기초라 할 수 있는 자가용 과정을 통과하면 전문화된 항법 장치를 다뤄야 하는 중급 이상의 과정인 계기 비행에 도전해야죠. 비행기를 계속 조종하기 위해서는 90일에 세번은 타야 할 정도로 자격 유지가 까다로워요. 꾸준히 업그레이드할 예정입니다.” 그는 “언젠가 직접 조종한 비행기로 세계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에이~”라는 말이 이제는 안 나온다. 정말 해낼 것 같다.

며칠 뒤 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야호. 실기도 합격입니다.”

그의 다음 도전은 세계 일주일까. ‘도전의 달인’은 어디까지 날아오르는 것일까.

무안/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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