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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6 05:00 수정 : 2019.08.16 11:24

통일열차 서포터즈 회원들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아베 경제침략 맞서는 광복절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대학생과 청년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금강산 관광재개를 촉구하면서 남북이 함께 아베의 경제침략을 막아내자는 취지로 이번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한-일 경제전쟁 진단/양준호 교수
⑥일본의 딜레마와 ‘싸움의 기술’

일 우익세력의 감성적 선전포고
자국 부메랑 효과는 못 짚어
한국 반도체 제대로 공급 안되면
일 전자 대기업들도 전반적 타격

①일본의 안전장치를 역이용하자
규제 사각 일 기업 해외공장 활용
②‘일 아킬레스건’ 국제여론 만들자
WTO협정과의 정합성 문제 쟁점화
③국가 주도 ‘산업 백년대계’ 세우자
긴 안목으로 소재 국산화 전략을

통일열차 서포터즈 회원들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아베 경제침략 맞서는 광복절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대학생과 청년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금강산 관광재개를 촉구하면서 남북이 함께 아베의 경제침략을 막아내자는 취지로 이번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자유무역’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오사카 주요 20국(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의장국이었던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공표했다. 바로 그 공표 시점에서부터 일본 정부의 숨은 저의를 알아차릴 수 있다. 국제적인 합의를 모범생처럼 다소곳하게 지켜만 오던 그간의 모습과는 다른, 마음에 안 드는 나라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든지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강한 나라’임을 천명한 것이다. 전형적인 일본 우익의 지향점이다.

이러한 ‘화려한 변신’을 국제사회에 선보인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은 주지하다시피 포토레지스트(대일본 수입 비중 91.9%), 에칭가스(43.9%), 플루오린 폴리이미드(93.7%)로 불리는 반도체 소재들이다. 한국 기업에 의한 이들 소재의 대일본 수입액은 5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사용해 생산되는 한국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전세계로 수출되는 총액은 무려 170조원에 이른다. 금번 수출규제로 일본 쪽은 잃을 것이 별로 없고 한국 쪽이 받는 타격은 매우 크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계산이었으리라. 아베 찬양을 부르짖는, 일본 내 소위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레버리지(leverage)가 매우 큰 효과적인 경제제재’라며 맞장구를 친다. 일본 우익들의 한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맞다.

그러나 이번 수출규제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에 대한 일본 우익의 민족주의적 분개, 즉 ‘감성적’ 대응이 크게 작용했다. 면밀하게 준비된 조치로 보이지만, 사실 일본 정부는 자국 경제에의 부메랑 효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짚질 못했다. 일본의 혐한론자들이 다들 그렇듯, 이번 조치의 역효과에 관해서도 ‘이성적’ 판단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일본 기업들이 지금 한결같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결국 일본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부품·소재 및 장치 산업을 위축시켜 일본 경제 전체를 냉각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출규제를 둘러싼 일본 우익과 기업들 간 인식의 간극은 매우 크다. 최근 필자의 지인인 일본 교토의 한 전자부품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아베 정권은 정치적인 논리에 매몰되어 국내 경제를 돌볼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사실 한·일 간 전자산업 분업구조의 ‘역사적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일본의 첨단 소재·부품이 적기에 공급되지 않아 한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라인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면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기업들 역시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적지 않은 일본 내 전문가들이 이 예상을 지지한다. 다시 말해 한국 반도체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이번 수출규제 대상 3개 품목뿐만 아니라 유리판 같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다른 일본 소재의 한국 수출도 큰 폭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해서, 한국 반도체산업의 설비투자는 크게 줄어들게 되고,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그동안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해온, 즉 일본 경제를 먹여 살려온 반도체 제조장치 수출 역시 판로가 막힐 수밖에 없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 기업의 반도체를 사용해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일본 기업들 역시 반도체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이번 수출규제의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화학 소재는 전체 수입 중 18.1%를 차지하는 데 반해 경제 규모가 큰 일본이 한국에서 가지고 가는 반도체 등의 전자기기는 21.1%나 되니 말이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산 소재로 생산하는 반도체는 도시바, 소니, 일본전기(NEC)와 같은 대기업들의 컴퓨터 생산에 투입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위의 일본 기업들이 스마트폰과 티브이 화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일본 소재로 만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없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아베의 수출규제로 일본 정부 스스로가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양적 위상이 매우 큰 ‘국민적’ 전자 대기업들의 부품 조달을 막는 꼴이 된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 교수
결국 아베의 수출규제 조치는 그야말로 ‘자충수’다. 일본 재계는 이를 우려하며 비공식적으로 아베 쪽과 접촉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나라 경제 살리기를 지상 과제로 설정한 일본 역시, 경기가 좋아질수록 그들 경제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그리고 일본의 대형 전자산업 독점자본들의 자민당과 정부에 대한 입김은 꽤 세다. 이는 결국 아베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을 압박할 ‘지속 가능한’ 카드로 쓰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수출규제로 인해 일본의 기간산업으로 볼 수 있는 반도체 제조장치 산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 경제를 아주 망쳐가며 한국을 압박할 일은 없지 않겠나.

일본의 이번 도발에 한국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서 맞대응을 했으면 한다. 첫째, 수출규제에 숨겨놓은 일본 정부의 ‘안전장치’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내놓으면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해온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의 판로를 완전히는 막지 않기 위해 실은 이들 기업의 해외생산 거점에 대해서는 수출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바꿔 말해 일본 정부가 기업들의 비판으로부터 빠지고 달아날 ‘비상구’를 마련해놓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일본 수입 비중이 매우 높은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일본의 주요 기업은 제이에스아르(JSR), 도쿄오카공업, 신에쓰화학공업인데, 벨기에에 있는 제이에스아르의 극자외선(EUV)용 레지스트 생산 거점과 같이 일본 레지스트 기업들의 생산은 해외에서도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일본 레지스트가 꼭 필요하다면’ 해외의 일본 기업들로부터 조달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대응이 소재 국산화 대응과 맞물려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현 상황에서의 대증요법이다.

둘째, 일본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지정 및 해제의 자의성과 그 심사제도가 실질적으로 자유무역을 위축시키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강조하면서, 무기나 전략물자 수출을 통제하는 바세나르 협정의 이행을 위한 일본의 수출통제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간의 정합성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의 이번 조치가 합리적인 안전 보장을 위한 무역관리 운용의 틀 내에 있다 하더라도 이는 세계무역기구 협정과의 정합성을 담보해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금의 일본 정부가 문제시되길 가장 꺼리는, 최대의 ‘아킬레스건’이다.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지혜와 신중함을 바탕으로 유지됐던, 세계무역기구의 자유무역과 안전보장을 위한 무역관리 간의 ‘평온한 공존’ 체제가 일본의 이번 조치로 붕괴할 우려가 실제로 매우 크다는 점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셋째, 소재 국산화를 위한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동북아 전자산업의 무역구조는 중국의 대두로 인해 급변하고 있어, 한국의 대일본 수입의존도도 1988년의 30.3%였던 수치가 2014년에는 10.2%까지 크게 떨어졌다. 이러한 경제 상황의 변화와 위에서 언급한 일본 수출규제의 낮은 지속가능성, 그리고 소재의 대체 수입처를 일본 국외에서 찾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가 당장 파국으로 휘둘리진 않는다고 보는 게 맞다. 해서, ‘좀더 길게’ 보는 안목으로, 또 총체적인 안목으로, 독점자본이 아닌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 정책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즉, 대국적이며 공공성이 견지되는 소재 국산화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 차원의 ‘경제 보복’이 아닌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성찰과 대응이 절실하다. 서두르거나 일희일비해서는, 또 정치적으로 이 사단을 풀어나가서는 안 된다. 이참에 소재 관련 기술의 토대가 되는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연구비를 학연·지연, 정치적 이해관계로 배분해온, 대학에 단기적인 연구 성과만을 양적으로 쪼아대어온 정책들 역시 궤도를 크게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소재 기술에 관련된 모든 영역의 정책과 그 주체를 전방위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죽창가’를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불러대며 삼성과 민중들 간의 대동단결까지 강제할 필요는 없다. 반일·애국을 앞세운 국가주의의 ‘광풍’하에서,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해 연장근로를 강행하고 재벌 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면죄부를 주는 데 모자라 심지어 세금도 깎아주는 경제적 명분의 반동은 견제되어야 한다. 국가 간, 국민 간 전쟁이 아니다. ‘강한 나라’를 꿈꾸는 ‘아베’와 이를 거부하는 ‘반아베’ 간의 전쟁이다.

양준호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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