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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5 21:18 수정 : 2019.08.15 23:21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군이 서명한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장병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천안/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 8·15 경축사 l 대일 메시지

에둘러 ‘경제보복’ 비판
강제동원·위안부 문제 언급않고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 걷어차선 안된다”

‘책임 있는 경제강국’ 비전 제시
“한국의 길은 일본과 다른 것
더 크게 협력, 더 넓게 개방”

일에 통 큰 제안
“세계인들 평창서 ‘평화’ 보았듯…
도쿄 올림픽을 공동번영 기회로”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군이 서명한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장병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천안/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 정부의 무역보복 조처 속에 맞은 올해 광복절인 만큼, 경축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을 대일 메시지에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집중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경한 반일 메시지 대신, 내년 도쿄 여름올림픽을 “동아시아 공동 번영의 기회”로 삼자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울러 ‘동아시아의 책임있는 경제강국’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경제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일본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일본 무역보복 조처의 ‘근원’인 일제 강제동원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정부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제외 조처를 다시 한번 비판했다. 다만, 직설적인 비판 대신 한국이 ‘책임있는 경제강국’이라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갈 것임을 강조하며 일본의 편협한 행태를 에둘러 나무랐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일본이 이웃나라에 불행을 줬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길은 경제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분업과 협업으로 ‘기적’이라 불릴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룬 동아시아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협력해야 함께 발전하고 발전이 지속 가능하다”며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를 추격 국가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제력에 걸맞은 책임감을 갖고 더 크게 협력하고 더 넓게 개방해 이웃나라와 함께 성장할 것”이라며 “우리는 동아시아 미래 세대들이 협력을 통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도쿄 여름올림픽을 동아시아 번영의 계기로 삼자는 제안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이라며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내 일부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대응 조처로 도쿄 올림픽 불참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되레 통 큰 카드를 먼저 제시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외교적 해결과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대일 메시지의 수위를 낮춘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보편 가치를 지키는 한국의 길을 제시하며 일본을 격조있게 비판한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극일과 자강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갈 것”이라며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부족함을 성찰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함께 격려해갈 때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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