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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4 20:00 수정 : 2019.09.04 20:10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보다 보면 위기감을 느낍니다.

다들 행복한 얼굴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의 하루가 남들 하루와 비교하면 의미 없고 비루하게 보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이대로 보잘것없는 인간이 되어버릴까 두려워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마침 무더위도 지나고 날이 맑았습니다. 오늘이라면 저도 무언가 남들에게 내어 보일만 한 것을 ‘찍어 올릴 수’ 있겠지요. 어디를 가야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놀이동산을 가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있는 H랜드로 말입니다.

H랜드의 입장료는 단돈 천원입니다. 시설이 넓은가 하면 애매합니다. 놀이동산 자체는 걸어서 십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데, 오리 보트를 탈 수 있는 호수가 십이만평이기 때문입니다. 놀이기구는 총 열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용료는 모두 사천원으로 다섯 가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빅 파이브’는 만 오천원입니다. 그러나 운행을 안 하는 놀이기구가 몇 가지 있을 수 있으니 무엇을 탈지 살펴보고 이용권을 구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놀이공원 한복판엔 토끼 우리가 있으며 맞은편 매점에선 봉지에 담긴 배추 이파리를 토끼 먹이로 팔고 있어 먹이주기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소박한 곳이라 다소 맥 빠질 수 있으나 장점도 많습니다. 우선 대기 시간이란 것이 없습니다. 주말이었는데도 거의 모든 놀이기구는 줄을 오래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용자가 2명 이상이어야만 작동하는 관계로 혼자 가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또한 시설 간 이동 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아 빅 파이브를 다 타고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종업원들이 필요 최소한의 응대만을 하는 쿨한 태도였습니다. 접객을 위해 요란하게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기구에 올라타지 않았습니다. 대개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빅 파이브를 다 타고 토끼에게 배추를 먹인 뒤, 새파란 색의 슬러시(얼음을 갈아 만든 음료)를 마시며 H랜드를 나섰습니다. 놀랍게도 시간은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놀이동산에 갔더라면 이제 겨우 도착해 매표소에서 줄을 서고 있을 즈음이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찍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위기감을 느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자랑할 만한 성취를 이루려면 큰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과정 중에 성과를 위해 절차가 무시되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상처 입습니다. 원래 성장과 성공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고, 얼마나 성공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찍어 올리기 위한’ 삶을 살지는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왜 맨날 시시껄렁한 것만 글로 쓰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원래 대부분의 삶은 시시껄렁합니다. 저는 그 시시껄렁함을 사랑하며, 그런 시시껄렁함의 소중함을 알리는 글을 쓰며 살고 싶습니다. 벌써 26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H랜드 같은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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