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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5 09:51 수정 : 2019.08.07 20:23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저녁을 먹고 일을 하는데 배가 살살 아팠습니다.

곧 괜찮아지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통증은 점점 심해져 허리와 등까지 아파졌습니다. 결국엔 앉아있기도 힘들어 바닥에 누워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았습니다. 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버지가 수시로 몸을 말고 앓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끙끙대며 밤을 새우고 먼동이 터올 무렵, 차를 끌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운전이 힘들었으나 새벽이라 오가는 차가 없어 별 일없이 도착했습니다. 차 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몸이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응급실 당직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빚쟁이에게 쫓기듯 마감만 하다 어느 날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원통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놀아둘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고통과 불안으로 벌벌 떨며 응급실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은 이른 아침부터 아픈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문진을 하고 한 병상을 배정받았습니다. “원인을 모르겠네요.” 엑스레이 결과를 본 의사가 말했습니다. 추가로 엠아르아이(MRI)를 찍고 진통제를 맞았으나 계속 아팠습니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니 더 센 진통제를 놔주었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소행성 같은 게 지구에 충돌해 버리거나, 빙하기가 찾아와 세상이 멸망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고통이 사고를 압도해 버린 것입니다.

엠아르아이(MRI) 결과가 나왔으나 의사는 아직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저 더 센 진통제를 놔주겠다고만 했습니다. 주사기를 들고 온 간호사는 말했습니다. “혈관이 아플 거예요.” 대답도 할 수 없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이윽고 주사제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혈관이 금속으로 채워지듯 서늘해지고 죄어오듯 아팠습니다. 낯선 고통이었습니다. “더 센 진통제는 없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라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하루에도 몇번씩 맞던 그것이었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세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다행히 통증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의사는 내게 말했습니다. “안 아프면 퇴원하세요.” 그렇게 원인은 알아내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습니다. 평소에도 오가는 길을 돌아오는데 아프지 않기 때문인지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왜 그렇게 죄인처럼 방에 틀어박혀 일만 하고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작업 진척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문자가 왔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가는 길이라 답하니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그것참 안됐군요. 하지만 일정에 차질 없게 해주세요.’ 일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아파서 병원에 가더라도 미뤄져서는 안 된다니. 상대가 야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역시 일에 휘둘리고 있는 가여운 사람이니까요. ‘알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낸 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우선은 자야 했습니다. 그래야 다시 안 아플 테니까요. 그것이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며칠 뒤 다시 병원을 찾아 정밀검진을 해보니 통증의 원인은 담석이었습니다. 끼니를 제때 먹지 않아 소진되지 못한 담즙이 굳어 돌이 되었답니다. 암은 아니고 일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에 응급실 오시면 수술하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에 답했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도록 꼭 끼니를 챙겨 먹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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