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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1 09:30 수정 : 2019.08.07 20:27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작업실을 추가로 열었습니다.

원래 쓰는 작업실이 번화가 한복판에 있어 편리하면서도 조금 번잡스러워 한적한 주택가 2층에 얻었습니다. 한 달 전 리모델링을 끝내 깔끔한 곳이었습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엔 맞은편 공원의 소나무가 보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이라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만 같아 급히 소파를 주문했습니다. 멋지고 편해 보이는 것들이 많았으나 결국은 싼 걸로 고르게 됐고, 직접 조립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평생 처음으로 소파를 조립해 보았습니다. 처음 하는 대개의 것들이 그렇겠지만, 쉽고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알맞은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분해된 채 배송된 택배 안에는 친절하게 육각 렌치가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필요 최저한의 도구일 뿐입니다. 순진하게 ‘이걸로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간 도중에 몇 번이고 소파를 때려 부순 뒤 불태우고 싶은 충동을 겪게 될 겁니다. 다행히 과거에 같은 업체에서 서랍장을 한 번 주문해 본적이 있어서 그때와 같은 낭패를 보지 않기 위해 다양한 공구를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다음엔 조립 설명서를 잘 읽어야 합니다. 뻔한 이야기를 뭐 하러 강조하나 싶지만, 이렇게 말해도 분명히 신중히 읽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소파의 조립이란 서랍장을 조립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어느 것이 등받이고 팔걸이인지, 서로 길이와 크기가 다른 나사들은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하고, 어떤 순서에 맞춰 조립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부속들을 이리저리 맞추며 많은 것들을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조립이 복잡한 소파를 샀다는 것이 후회스러웠고, 작업실을 얻은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애당초 작업실을 더 얻어야 할 정도로 사람을 뽑은 것이, 감당할 수 없이 일을 벌이고만 있는 상황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무인도로 가자. 작업실이니 뭐니 다 그만두고, 무인도로 도망쳐 해초나 건져 먹으면서 자연인으로 살자.’

어느 순간 저는 잘못 조립된 소파에 앉아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지쳐있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일을 하며 나날이 부담이 커졌습니다. 처음엔 방에서 혼자 조용히 일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여러 명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일을 보조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제는 매달 인건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합니다. 이 와중에 떠나가는 사람이 있고, 새로 오는 사람도 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 사람 하나하나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일을 벌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무심히 지켜만 보는 꼴이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마음을 다잡고 조립 설명서를 펴들었습니다. 그곳엔 제가 왜 고통 받고 있는지, 되돌릴 방법은 무엇인지 소상히 적혀 있었습니다. 잘못 조립한 것을 되잡기 위해선 해체해야만 했습니다.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종일 소파와 씨름하느라 이미 기운이 다 빠져버린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당연한 생각을 해냈습니다.

‘내일 직원들을 부르자. 불러서 같이 조립하자.’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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