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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6 21:48 수정 : 2019.08.07 20:27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턱걸이를 꾸준히 합니다.

종일 웅크려 일만 하다 보니 쭉쭉 펴주는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 문틀에 턱걸이 봉을 설치해 두고 오며 가며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라 처음엔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이내 익숙해져 요즘은 별 어려움 없이 즐겁게 합니다. 그러다 스포츠 클라이밍을 처음 해봤습니다. 턱걸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지인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보기만 했지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이름만 거창하지 결국 매달린 채 몸을 끌어올리는 운동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판 초보지만 스파이더맨처럼 암장(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는 곳)을 휘젓고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팔 힘만으로 끌어올리려 하면 힘드실 겁니다.”

첫 방문인 저를 안내해주는 강사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은 턱걸이를 못 하는 나약한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건성으로 듣는 것을 알아챈 듯 강사 선생님은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한 번 저 위까지 올라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 봤자 2~3m 정도의 높이라 가소로웠습니다. 저를 얕잡아 봐도 한참을 얕잡아 본 듯싶었습니다. 저는 콧방귀를 뀌며 알록달록한 홀드(손을 짚거나, 발을 딛는 돌출부)를 잡고 벽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저는 매미가 된 것처럼 그냥 벽에 붙어있기만 할 뿐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내심 자랑하던 팔 힘을 이용해 몸을 움직여보았지만, 좁은 홀드에 손가락만 걸친 채 몸을 지탱하는 것은 널찍한 철봉에 매달리는 것과는 범주가 다른 운동이었던 겁니다. 사력을 다해 팔을 뻗어 다음 홀드를 잡아보았지만, 그것만으로 근육에 경련이 오는 것 같아 섣불리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고작 지상 30㎝의 높이에서 옴짝달싹도 못 한 채 고요한 사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가만히 지켜보던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운동 좀 해보신 분들이 더 어려워하세요. 자기 힘만 믿어서.”

실로 저는 교만했습니다. 편협한 경험만을 가지고 있을 뿐임에도 마치 세상만사에 통달한 듯 우쭐해 했으며, 그 분야의 전문가가 오랜 시간 끝에 체득한 지식과 기술을 멋대로 얕잡아 봤습니다. 그 결과 시작과 함께 난관에 봉착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땀만 뻘뻘 흘리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감해야만 했습니다.

“중요한 건 팔을 잡아끄는 게 아니라 다리로 밀어내는 거예요.”

강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마비된 듯 멈춰있던 발에 힘을 주고 몸을 밀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한없이 무겁기만 했던 몸이 쑥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팔의 힘도 덜어져 영원히 닿을 것 같지 않던 위쪽의 홀드를 여유롭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조금 허탈해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 봤자 겨우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지만 좋았습니다.

그 뒤로도 때때로 암장에 갑니다. 자주 가지는 못하기 때문에 실력은 여전히 고만고만합니다. 벽에 매달려 더듬더듬 다음 홀드를 찾고 있노라면 처음 방문한 누군가가 강사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만만한 표정입니다. 운동 좀 해본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머지않아 그도 자만을 반성하는 참회의 시간을 갖게 되겠지요. 어쩌면 사람은, 시련을 겪을 때에서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와 별개로 모든 분께 스포츠 클라이밍을 추천합니다. 혹시 압니까. 우리 인생에서 악당에게 쫓겨 달아나다 해안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는 때가 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요.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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