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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5 20:00 수정 : 2019.08.07 20:23

김보통 만화가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김보통 만화가

※ 무엇이든 해봅니다. 소소한 소재를 버무려 깊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김보통 만화가. 그가 `직접 해 본 것'에 관한 에세이를 전합니다. 도전이라기엔 너무 거창하고 일상이라기엔 조금 특별한, 그런 것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쭉 서울에 살았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시골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날 집주인이 전세금을 30% 올려달라 하는데, 죽었다 깨도 마련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로, 구체적으로는 일산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한번 서울을 벗어나면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말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서울에 있어 특별히 좋았던 기억도 없지만 그랬습니다.일산은 산이 하나라 일산이 아니라, 일본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송포면 덕이리 한산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인근에 고봉산을 빼면 산이 없기도 합니다(이름을 딴 지하철역도 있어 제법 유명한 정발산은 해발 88미터의 야산입니다). 그래서일까 도시 전체가 평지라 자전거 타기가 매우 수월합니다. 도시 곳곳에 공유 자전거가 배치되어 있어 어지간해선 자전거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이곳에 와 가장 놀란 것은 나무가 크다는 것입니다. 말이 신도시지 개발된 지 이십년이 훌쩍 넘어 당시에 심어진 가로수들이 지금은 다들 거목이 된 것이지요. 도로 옆 가로수뿐이 아닙니다. 빼곡히 지어진 아파트 단지 사이 산책로는 그 위를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가림막처럼 덮고 있습니다. 과장 좀 보태 부슬비 정도는 우산 없이도 걸어 다닐 수 있고, 녹음이 우거질 땐 하늘이 잘 안 보일 정도입니다. 서울에서는 본 적 없던 풍경이라 일부러 차를 두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이 많습니다. 여름에는 매미 소리에 시끄럽긴 하지만, 가을 단풍길을 걷노라면 시상까지는 모르겠지만 콧노래는 절로 나옵니다.

사람들은 서울보다 조금 느긋합니다. 도로에 오가는 차들은 번화가-일산에도 번화가가 있습니다-나 출퇴근길이 아니고선 어지간하면 경적을 울리지 않고, 차선 변경을 하려 깜빡이를 켜면 끼어들지 못하도록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지도 않습니다. 공원이 많아서인지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흔합니다. 멀리서 다가오는 저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거나, 제가 올 때까지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기다려주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특별히 인심이 좋다고 느끼거나, 그래서 감동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느렸고, 저도 따라 느려졌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구경한다는 것입니다.

길에서 자라나는 고양이가 많습니다. 잔디밭에서, 자동차 보닛 위에서, 벤치 밑에서 쉽게 고양이를 발견합니다. 태연히 인도 한복판에 드러누운 녀석들도 적지 않습니다. 새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그런 고양이들을 오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춘 채 구경합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싱긋 웃으며 고양이를 바라봅니다. 고양이만 심드렁한 표정입니다. 개중에 누군가는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서서 간식을 건네면 ‘별로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하는 얼굴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받아먹습니다. 모두는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다들 부러운 표정입니다. 요즘은 저도 외출할 때 고양이 간식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원해서 서울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돌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산간오지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유난 떠는 것이려나요. 적어도 서울을 벗어난 삶에 대한 불안은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언젠가는 보다 먼 곳으로 흘러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무언가를 포기해야겠지만, 또 무엇인가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조금 기대가 됩니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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