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8 09:24
수정 : 2019.09.28 09:43
[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 다이어리 ⑥난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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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카메룬에서 온 도리스가 국제여성공간(IWS) 사무실 앞에서 웃고 있다. 채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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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에서 온 도리스는 늘 조용했다. 독일에서는 보통 포옹으로 인사를 하는데, 처음 만났을 때 도리스와의 포옹에서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말이 없고 잘 웃지 않는 도리스를 보며 그녀에겐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가 안에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스의 변화를 느낀다. 포옹할 때 이전에 느껴졌던 경계심 대신 따뜻함으로 날 안으며 환히 웃는 그녀를 본다. 무엇보다 우리가 동네 이웃임을 알게 된 이후에는 가끔 함께 집에 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도리스는 8년째 독일에 머물고 있지만, 독일 정부가 최소한의 난민만 수용하려는 탓에 아직도 그의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임시 체류 허가’ 상태로 살고 있다. 거의 매일 고된 청소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체류가 보장되는 비자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임시 체류 허가’ 상태의 난민들은 약 1~6개월마다 상태를 갱신해야 하고 다른 도시로의 이동 자유가 제한된다. 무엇보다 난민에게 살인이나 다름없는 ‘강제 송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매일매일을 살아내는데, 도리스 역시 두 번이나 추방당할 뻔했다.
마지막 강제송환의 위험에 놓였던 것은 2016년 여름, 새벽 3시30분. 도리스가 지내는 시설에 갑자기 경찰 5명이 들이닥쳤고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카메룬으로 돌아갈 거야.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났어.” 도리스는 신발도 없이 얇은 옷에 양말만 신은 채로 차에 태워져 공항에 도착했다. 이동 과정에서 도리스는 온몸으로 맞섰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녀는 공항에서, 비행기에 태워진 뒤에도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고 기장이 그녀를 태우지 않겠다고 이례적으로 결정하면서 다시 거주 시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재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한 난민 인구는 약 110만명(2018년 6월30일 기준, 독일연방의회 자료)이며 이 중 43%가 여성이다. 연도별로 보면 내가 독일에 도착한 2016년에 역사상 가장 많은 74만5545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여성들은 전쟁, 가난,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떠나오지만 강제 결혼, 가정 폭력과 전쟁 성폭력, 여성 생식기 절단 등 젠더에 기반한 박해를 피해 도망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억압은 독일에 도착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도망 왔지만 가해 남성들의 추적은 계속 이어지는데다 소위 ‘라거’(Lager)라 불리는 난민 숙소에서 그들은 감옥과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대부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커뮤니티 형성이나 자유로운 통행, 방문자 방문 등이 부분 통제된다.
라거의 형태는 천막촌, 공공기관 건물, 가정집 등 다양하다. 독일 정부는 이곳을 독일어로 ‘집’이란 뜻의 ‘하임’(Heim)으로 부르지만 활동가들은 이 단어 사용을 거부한다. 이곳은 절대 그들에게 ‘집’이 아니다. 숙소를 드나드는 남성들에 의해 매일 위협받고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보안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생활공간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다.
독일로 오기 전, 난민들을 향해 ‘난민 환영’ 문구를 들고 있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는 그 영상을 보며 독일이 멋있는 국가라 생각했다. 독일에서 3년 넘게 살며 여러 난민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도, 독일이 유럽 국가 중 난민 수용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독일 역시 난민을 ‘환영’하는 나라는 아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난민 환영’ 플래카드를 보며 난 더 이상 독일이 멋있는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은 난민을 환영하지 않지만, 나를 비롯한 베를린의 페미니스트들은 지금처럼 난민 여성을 환영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갈 것이다. 도리스의 ‘임시 체류 허가’가 빠른 시일 내에 ‘체류 허가’로 바뀌길 간절히 바라며.
채혜원: <여성신문> <우먼타임스> 등에서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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