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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7 09:41 수정 : 2019.07.29 17:34

[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다이어리
②연대 파티

베를린의 공연장이나 클럽에서는 ‘연대 파티’가 자주 열린다. 채혜원 제공
베를린의 작은 클럽이나 공연장에서는 ‘연대 파티’(Solidarität Party)가 자주 열린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여는 파티다. 일반 파티처럼 간단한 음식이나 음료를 먹으면서 공연을 보고 춤도 춘다. 약 30여개 단체와 개인들이 참여하는 ‘베를린 국제 페미니스트 연합’은 지난 6일 마리아를 위한 연대 파티를 열었다. 200여명이 참석해 마리아를 위해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았다.

루마니아에서 온 마리아는 ‘로마’(Roma) 또는 ‘로마니’(The Romani)라는 민족의 여성이다. 이들은 흔히 ‘집시’라고도 불리는데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루마니아는 유럽연합의 일부지만 ‘로마니’ 사람들은 유럽 사회에서 여전히 박해를 받고 있다.

마리아를 처음 만난 건 내가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에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호탕한 웃음과 활기 띤 모습으로 주변 모두를 밝히는 에너지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런 마리아가 지난봄 베를린 지하철에서 칼에 찔리는 테러를 당했다. 독일인인 테러범은 마리아의 가족을 먼저 공격했고, 이어 마리아의 어깨 부근을 찔렀다. 한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고, 테러범을 체포했다. 마리아와 가족들의 상태는 심각했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테러범은 “인종차별로 인한 공격”이라고 인정했다.

사건 발생 이후 ‘베를린 국제 페미니스트 연합’은 마리아의 사건을 공론화하고 법적·재정적으로 그를 도울 실무단을 조직했다. 마리아는 테러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떠안은 채 비싼 변호사 선임비와 병원비,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드는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하게 둘 수 없다. 마리아의 소식을 처음 들은 날, 칼을 들고 자신을 찌르려는 테러범에게조차 “진정하세요.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는 선한 마리아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난 6일 열린 흑인민권운동 집회에 참석한 마리아의 모습. 재니스 가넷(IWS 연대활동가) 제공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과 차별은 익숙하다. 한국에서 ‘여성’이기에 겪었던 차별과 폭력이 독일에서는 ‘아시아 여성’이라 받는 차별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젠더 차별과 마주하면 이미 박여 있는 굳은살에서 대응 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인종차별에 기반한 폭력에는 한없이 무너진다. 대처가 되지 않는다. 유럽의 이주자로 살기 전에는 전혀 겪지 않았던 폭력이라,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대응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그 상대가 나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있는 2미터에 달하는 독일인이라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베를린 국제 페미니스트 연합’은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마리아가 칼에 찔렸던 동네에서 인종차별 공격을 당한 여성 피해자가 또 있음을 알게 됐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폭력을 떠안고 있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이 사건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을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든 건 ‘혼자’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서로 피해 경험을 나누면서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됐고, 자신이 겪은 폭력을 알려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응하기로 했다. 여성 연대로 가능했던 미투운동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연대 파티는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 연대의 메시지가 필요할 때 베를린의 여성 활동가들은 늘 파티를 열어 기부금을 모으고 어떤 여성도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의 연대는 계속된다.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 쓴 문구를 바꿔서 써본다. “만국의 여성이여, 단결하라!”(Frauen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채혜원: <여성신문> <우먼타임스> 등에서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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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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