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는 360여만명이 살고 있는데 이 중 4분의 1은 외국인이다. 지난해 여름 열린 나치 반대 집회 모습. 채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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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첫인사 베를린에 있는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nternational Women Space·IWS)에는 브라질, 케냐, 영국, 터키, 이스라엘 등 전세계에서 온 여성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독일 여성, 이주 여성, 난민 여성 등이 함께 활동하고 있어, 처음 멤버들을 만났을 때 얼굴만 봐서는 국적이나 출신을 알 수 없었다. 국제여성공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뒤 동료들과 가까워질수록 난 그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한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기다렸다. 누구도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흔히 듣거나 하는 질문, 국적이나 출신을 묻는 ‘넌 어디서 왔니?’(독어 Woher kommst du?, 영어 Where are you from?)도 마찬가지였다. 이 흔한 질문이 차별을 담고 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쿠르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쿠르드족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는 수잔나가 독일인임을 알게 됐을 때, 나의 페루 친구 크리스티나를 똑 닮아 남미에서 이주했을 거라 짐작했던 키야가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독일인임을 알게 됐을 때, 부끄러웠다. 어디서 왔는지 묻지만 않았을 뿐, 나 역시 겉모습만 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키야는 볼리비아에서 독일로 이주 온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겉모습 때문에 항상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듣는다고 했다. 최근 독일에서 발행된 책 <내가 독일에 왔을 때>(Als ich nach Deutschland kam)에는 독일 페미니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22명의 난민, 이주 노동자, 독일 여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중 ‘독일인, 그러나 이주 배경을 가진’ 장에는 국제여성공간에서 만난 인권운동가 튤린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터키에서 독일로 이주한 부모를 둔 튤린은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독일인이지만, 늘 독일인인지 아닌지 묻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튤린은 나에게 자신을 “독일인도, 터키인도, 아랍인도 아닌 그저 이주 배경과 독일 국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새로운 독일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독일에 거주하는 총인구 8170만명 중 1930만명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다(2017년 기준). 여기서 ‘이주 배경’이란 자신 또는 부모 중 최소 한명이 독일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경우를 뜻한다. 1930만명 중 980여만명은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즉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이고, 나머지는 외국인이다. 독일 사회에서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은 여전히 독일인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네오나치들의 집회가 크게 연이어 열렸을 때 길거리에서 한 백인 남성에게 “너희 나라로 꺼져라”라는 소리를 들은 건 다른 외국인 동료가 아닌 독일인 키야였다.
베를린에 있는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nternational Women Space·IWS) 활동가들이 사무실에 모여 있다. 채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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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원: <여성신문> <우먼타임스> 등에서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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