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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6 06:01 수정 : 2019.07.26 20:17

[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⑪ 스페인 ,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

글쓴이가 유독 스페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 타지에서 여행 온 글쓴이를 언제든지 따듯하게 환대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여행자가 현지인들을 존중한다는 의도가 알려지는 순간 , 스페인 사람들은 이 낯선 외지인에게 마음을 열고 금세 친한 척 다가설 것이다 . 스페인 사람들은 원래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

자유여행이든 이른바 패키지여행이든, 또는 팀여행이든 개인여행이든, 낯선 곳을 경험한다는 일은 많은 용기와 신념, 그리고 정보를 담보로 한다. 현지에 대해 아무리 많이 조사를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도 막상 현장에 가서는 당황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세상 어디든 우리가 여행하는 곳이 사람 사는 곳임을 잊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될 일이다. 여행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칙만 인지하고 잘 지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현지 또는 현지인들에 대한 존중의 자세와 마음을 잊지 않으면 그 여행은 분명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글쓴이가 유독 스페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타지에서 여행 온 글쓴이를 언제든지 따듯하게 환대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대한 기본 이해는 여행자의 의무이자 본분이다. 그리고 여행자가 현지인들을 존중한다는 의도가 알려지는 순간, 스페인 사람들은 이 낯선 외지인에게 마음을 열고 금세 친한 척 다가설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원래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스페인뿐일까. 세계 어디서든 현지인 대부분은 외지인들에게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스페인은 조금 더 빨리 열릴 뿐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주인공 돈키호테가? 열심히 싸웠던 콘수에그라 풍차 지역. 사진 황우창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려면 역사와 종교, 음악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현지인들의 생활습관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습관 중에는 시에스타가 있다. 오후 두 시 전후부터 대여섯 시까지 모든 일과를 멈추고 오수를 즐기는 시간이다. 밤낮없이 일만 하던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선 생활습관이다. 이 단어가 익숙해질 만해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참 쉽게 생활하는 듯하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말초적인 생활습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많이 먹는 편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스페인 사람들은 타파스와 보카디요 등을 포함해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단다. 그렇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생활의 지혜가 녹아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에스타와 타파스, 그리고 수다

4월 중순부터 이베리아반도 중앙부 마드리드 남쪽은 섭씨 30도가 넘는 뜨거운 햇살이 하루 종일 내리쬐기 시작한다. 여름철이면 40도는 훌쩍 넘어간다. 올여름 유럽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 닥쳤다고는 하지만, 사실 안달루시아를 비롯한 스페인 남쪽 지역에서는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다. 7, 8월만 되면 정오 이후 섭씨 40도를 찍는 건 기본이다. 이렇다 보니 건물 외벽은 빛을 반사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흰색으로 칠하고, 지붕은 붉은 사암으로 만든 기와를 씌워 열기를 날려버린다. 이렇게 독특한 외관의 역사가 쌓인 곳이 바로 스페인, 그리고 안달루시아 지역이다.

세르반테스가 소설 <돈키호테>를 집필했다는 콘수에그라 여관. 당시의 모습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해놓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청동상이 세르반테스가 구상했던 돈키호테의 모습이라고 한다. 사진 황우창
시에스타가 끝날 즈음이면 하나둘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출출함을 달래려고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이르다. 사람들은 테라스가 있는 그늘진 식당이나 바를 찾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조그마한 빵 위에 싱싱한 해물이나 채소를 얹어 먹는데, 이게 바로 스페인을 상징하는 간식거리이자 때로는 주식이 되는 대표 요리 타파스가 된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먹는다? 스페인 사람들은 음식을 혼자 먹을 때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도 즐겁지만,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행복한 식사 시간이 완성된다고 스페인 사람들은 믿는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타파스 한두 개 정도 먹는 걸로 시작해 가볍게 와인 한잔. 그리고 일상생활에 관한 수다와 웃음. 스페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왠지 그 무리에 끼어들어 한마디라도 나누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이 되면 그 현지인 무리에서 인사말이 날아올 것이다. “올라”(안녕).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세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만 남았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업무상 출장 등 중요한 자리라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일상 대화로 시작해 잠깐 지나는 듯한 업무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잡담과 수다들. 하나하나 일일이 반응하다 보면 약간은 피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잠깐 시작한 자리는 어느새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땅거미가 지다 못해 주변에는 가로등과 장식등 불빛들이 환하게 켜져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스페인 속 또다른 이국적 정경, 천년고도 베살루 입구. 원래 유대인들이 카탈루냐 외곽에 모여 살던 마을인데, 천년을 지나면서 유대인들만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꼽히는 명소. 사진 황우창
반가운 사람들, 뜻이 맞는 사람들, 호감과 애정이 가는 사람들과 함께 테이블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을 스페인 사람들은 사랑한다. 초저녁 간식은 저녁 메인 메뉴로 바뀐 지 오래. 가벼운 상그리아 한잔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레드와인 틴토 두세 병을 훌쩍 넘길지도 모른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런 테이블 문화를 ‘소브레메사’(sobremesa)라고 일컫는다. 스페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테이블 문화다. 외지인이든 국적이 다른 사람끼리 모이든 그건 관계없다. 언어도 관계없다. 의사소통만 확실하면 된다. 그들이 사랑하는 플라멩코 음악과, 그들이 사랑하는 가우디의 집중력과 관찰력,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사의 축구 이야기… 대화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글쓴이라면 플라멩코 이야기를 파고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북서쪽 갈리시아 마을의 전형적인 식단. 스페인 전역에서 먹는 타파스나 핀초스는 빵 위에 여러 신선한 재료를 올려 먹는 방식이지만, 북서쪽 갈리시아에서는 그 재료에 종류가 추가된다. 빵으로 받쳐서 먹을 필요가 없으니 빵을 빼고 본요리만 먹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문어나 키조개 등은 이 지역 특산물인데, 물론 초고추장은 없다.? 사진 황우창
만일 스페인 사람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결코 겁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단순히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스페인 사람들조차 플라멩코의 진솔한 내면까지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외지인으로서 그들의 문화와 정서가 깊게 녹아 있는 플라멩코 이야기라니. 대신 그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 된다. 때로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때로는 장황할 정도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멀리서 온 이 외지인이 자신들의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동질감을 느끼면서 정성스럽게 설명해줄 것이다.

열두 박자 플라멩코의 완성은 ‘올레!’

여기에서 슬쩍 플라멩코의 대가들, 이를테면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시아나 토마티토, 또는 전설적인 가수 카마론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페인 현지 사람들은 커다란 감명을 받을 것이다. 플라멩코 역사상 가장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플라멩코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굳이 어려운 음악 원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기타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플라멩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기타 음악의 발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플라멩코가 완성되던 시대라고 믿는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독자들께서는 이미 플라멩코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셈이 된다. 여기에 살짝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파코 데 루시아와 토마티토는 모두 각각 내한공연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되겠다.

플라멩코의 전설들이 남긴 백조의 노래 <카예 레알>(왕도). 파코 데 루시아가 카마론과 마지막으로 남긴 음반이자, 당시 십대였던 차기 전설 토마티토가 갓 참가한 리코딩. 사진 황우창
다시 플라멩코의 기본 원리로 돌아가보자. 서양 음악에서 이야기하는 박자, 예를 들어 4분의 4박자나 4분의 3박자 개념이 플라멩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의 기본 박자는 ‘4분의…’ 또는 ‘8분의…’로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려 열두 박자. 스페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큰마음을 먹고 플라멩코 공연장을 가면 도대체 언제 박수를 치고 언제 ‘올레!’를 외쳐야 할지 난감하다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글쓴이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단 하나. 연주와 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조용히 관람만 하면 된다. 만일 리듬 또는 장단을 열두 박자로 세면서 따라갈 수 있다면 눈치껏 사람들의 환호성에 얹어서 크게 ‘올레’를 외쳐주면 된다. 플라멩코 음악을 이루는 구성은 노래, 연주, 춤, 그리고 무대 밖을 꾸며주는 관객으로 구성된다. 관객의 호응이야말로 무대 위 플라멩코 아티스트들을 성원하는 가장 큰 응원이다.

만일 오후 늦게 만난 스페인 친구들 또는 현지인들과 플라멩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면 일단 위에서 언급한 소브레메사 문화를 염두에 두면 좋겠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덧 뜨거운 바람은 선선한 저녁 바람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비어 있던 옆 테이블들은 어느새 한밤중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 스페인 사람들을 시에스타와 소브레메사로 시간을 낭비하는 게으른 인간으로 여길지,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인간답게 즐기려는 낭만주의자들로 판단할지는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적어도 사람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사람을 사람답게 존중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나라가 스페인이다.

작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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