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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3 06:00 수정 : 2019.07.26 11:00

[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⑧탱고, 삶의 애환이 담긴 항구의 리듬 속에서

19세기 노예들이 해방되면서 굶주림을 피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의 라플라타 항구 지역에 흘러 들어온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춤곡으로 알려져 있다. 탱고의 근간은 아프리카 음악, 유럽 이주민들의 음악과 평원에 거주하던 가우초(목동)들의 다양한 음악인데, ‘탱고’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연주하던 북소리의 의성어 ‘땅-고, 땅-고’라는 검증되지 않은 학설이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탱고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궁금하다면, 탱고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된다. 이 영화 후반부에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콜론 극장에서 살아 있는 탱고의 전설들이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 장내 아나운서의 한마디다.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과 절대로 말을 섞지 않는 게 있죠. 바로 탱고에 관해서입니다.”

기묘하게 자극하는 당김음,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장식된 전구 불빛 아래 연미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장에 가까운 복장으로 악기를 어루만지는 연주자들. 탱고의 구성을 보고 있자면 묘한 감정의 자극을 받게 된다. 뇌쇄적이고 말초적인 자극 속에서도 그 안에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 어쩌면 탱고의 최대 매력이 아닐까.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있는 묘지, 판테온 산이그나시오? 내부 정경. 입구에 있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동상부터 시작해 수많은 탱고 역사의 증인들이 이곳에서 영면하고 있다.? 황우창 제공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스페인을 통해 유럽 문화를 받아들이고, 아프리카를 비롯해 신대륙의 다양한 문화와 음악 전통을 항구에 모아 19세기 말부터 집약시킨 음악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 탱고의 리듬과 멜로디를 가리켜 ‘인간의 희로애락을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이라고도 말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탱고의 정의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하지만, 탱고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과 노력, 정열을 쏟아부은 상황에서, 20세기 초반 유럽 사교계에 전파된 탱고는 본질과 떨어진 음악이라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글쓴이는 카를로스 가르델이 묻혀 있는 산이그나시오 묘지를 회상하면서, 탱고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지역 음악에서 세계적인 음악 장르로 널리 전파한 거장들의 이름을 되뇌어본다. 카를로스 가르델, 아스토르 피아졸라, 아니발 트로일로, 후안 다리엔소 등등.

항구의 뒷골목에서 탄생한 탱고

19세기 노예들이 해방되면서 굶주림을 피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의 라플라타 항구 지역에 흘러 들어온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춤곡으로 알려져 있다. 탱고의 근간은 아프리카 음악, 유럽 이주민들의 음악과 평원에 거주하던 가우초(목동)들의 다양한 음악인데, ‘탱고’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연주하던 북소리의 의성어 ‘땅-고, 땅-고’라는 검증되지 않은 학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탱고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음악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때는 기껏해야 100년이 조금 넘는 정도일 뿐이다. 여러 지역의 전통 음악들이 수백년, 심지어 수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것에 비교하자면 탱고의 역사는 지나치게 짧다. 그러나 이처럼 짧은 탱고의 역사 속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아르헨티나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되면서 본격적인 탱고의 역사 역시 함께 시작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이 도시는 항구도시의 특성상 현지인들과 외부인들, 그리고 이민자들이 섞여가면서 아르헨티나 경제권의 중심지이자 외부 문화가 유입되는 최우선 경로가 된다. 육지를 그리워하던 뱃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는 순간, 낯선 곳에서 찾은 것들은 먹고 마시고 잘 곳,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여자까지. 또한 이민 온 유럽 노동자들이 하루의 고단한 일을 끝내고 피곤함과 향수를 달래기 위해 뒷골목 선술집으로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먹고 마시며 여인들과 춘 정열적인 춤이 탱고의 시작이다.

‘탱고의 발생지는 매춘굴’이라고 정의한 보르헤스의 말처럼, 초기 탱고는 ‘매춘부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짙은 화장과 현란한 의상을 입고 추는 춤’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탱고는 항구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선사하기 시작했고, 평민들과 서민들의 춤과 음악이 되었다. 이후 유럽의 여러 음악 양식들이 알려지면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탱고는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한다. 여기에 독일인 하인리히 반트가 만든 아코디온의 일종인 반도네온이 1866년에 아르헨티나에 알려지면서 탱고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1912년 제정된 보통선거법을 통해 평민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때부터 자신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대중음악’으로서 탱고를 새롭게 인식한다. 이후 탱고는 급격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초기의 난해함도 없어지고 프랑스로 수출되어 당시 파리 사교계의 최신 유행 춤곡이 되고 인기 장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20년대에 탱고는 춤곡에서 벗어나 가사 속에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탱고의 왕’, 카를로스 가르델이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등장한 군사 독재 정권은 1930년대에 탱고를 암흑기로 밀어넣는다. 이때 사람들은 더 이상 탱고를 즐기지 않고, 무성영화를 앞세운 미국의 문화에 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탱고가 부활하기까지는 약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당시 등장한 영화, 라디오, 레코드 등은 탱고의 부활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위대한 악단 지휘자들인 후안 다리엔소, 아니발 트로일로, 오스발도 프레세도 등은 탱고의 기원과 역사, 탱고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설정한 인물들이자 탱고의 황금기를 수놓은 아티스트들로 역사에 남았다.

1946년에 등장한 페론 정권은 ‘에비타’ 에바 페론이 탱고를 사랑하면서 절정기를 맞이했지만, 1952년 페론이 사망하면서 또다시 암흑기에 접어든다. 이때 등장한 미국의 로큰롤과 외국 문화는 탱고의 인기를 빼앗아갔으며, 점점 탱고가 잊혀가는 것을 우려한 의식 있는 음악인들은 반도네온 사용을 강조한 새로운 탱고를 만들거나 전통적인 탱고의 형식을 재발견하면서 탱고의 명성을 이어간다.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의 일개 연주자였던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반도네온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탱고 자체에 커다란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탱고’,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주도하는 대가로 거듭나게 된다.

피아졸라, 탱고에 새 생명 불어넣다

영원히 소멸될 것 같았던 탱고는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등장하면서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반도네온,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이민 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소년 피아졸라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카를로스 가르델, 클래식을 전공하면서 사사하려 했던 나디아 불랑제와의 일화까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생애는 극적인 탱고의 역사를 많이 닮았다. 그가 남긴 음악은 춤을 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탱고였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 멤버들의 모습. 피아졸라 음악의 진정한 계승자로 피아졸라 재단이 인정하는 단체다. 사진 봄아츠/마장뮤직 제공
피아졸라의 탱고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재즈 등등 수많은 버전으로 들을 수 있는 ‘리베르탱고’,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고별 무대에서 준비했던 ‘아디오스 노니노’, 광고 음악과 영화 음악으로 수없이 등장하는 ‘오블리비온’ 등등. 이처럼 우리에게 피아졸라의 음악이 친숙한 이유는, 그가 남긴 음악 속 정서와 배경이 우리의 정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정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피아졸라 음악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피아졸라 재단이 인정하는 연주 단체,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 콘서트가 2019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를 방문 중이다. 이틀 전인 5월1일 서울 공연을 마치고 내일 토요일 오후 5시에는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두번째 공연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반도네온과 바이올린, 일렉트릭 기타, 피아노,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5중주 형태는 피아졸라가 가장 애착을 가진 구성인데, 이번 내한 콘서트는 위대한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유산 중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곡들을 엄선해 들려줄 예정이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해금 연주자 강은일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회 연재는 멀리 갈 것 없이 이 땅 대한민국에서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음악과 감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소개함으로써 갈음한다.

음악평론가, 작가

올해 발매된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의 음반 <혁명의 역사>(Revolucionario). 피아졸라의 대표곡을 엄선해 연주한 수록곡들은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연주된다. 사진 봄아츠/마장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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