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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2 05:59 수정 : 2019.07.26 10:55

[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⑥우크라이나, 흑해의 보석

우크라이나의 지형은 스텝이라고 불리는 평지가 대부분이다. 푸른 하늘과 함께 풍요로운 황금빛 평지가 우크라이나 지형의 상징이다 . 이 스텝 지역의 전통 음악을 살펴보면 장대한 초원을 반영하면서도 지형의 특성을 반영하듯 꽤 화려한 편이다 . 러시아 남성 합창이나 발랄라이카 연주 같은 러시아의 특성이 우크라이나에도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오해할 만한 음악 요소들도, 사실은 우크라이나 특유의 스텝 지역 전통 음악들이다 .

5월 초순으로 확정된 우크라이나 여행 계획을 살펴본다. 키예프나 오데사 같은 지명조차도 이미 친숙하지만, 우크라이나라니. 정작 나라 이름이 어색한 건 아무래도 정보 부족 탓이리라. 여기에 체르노빌이 있는 나라라는 팩트까지 더하면, 안전하지 않은 나라 또는 위험한 나라라는 오해와 편견이 충분히 작용할 만하지 않나.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나라이자, 흑해 주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모든 요소를 갖춘 아름다운 보석이다.

1867년에 설립된 키예프의 첸코 국립극장. 게티이미지뱅크
우크라이나를 이해하자면 일단 러시아가 빠질 수 없다. 언어, 역사, 정치, 종교 등등 독립국가로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또는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나라의 ‘위성 국가’라는 편견과 오해를 오랫동안 뒤집어썼다. 나라 이름부터 러시아어로 ‘변방’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지만, 러시아의 근대사에서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키예프와 오데사를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을 화려하게 꽃피운 중심지였다. 러시아 민족주의를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작품에서도, <전람회의 그림>을 마무리하는 제목이 ‘키예프의 큰 대문’ 아니던가. 고전 음악으로 가보자.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보더라도, 의외로 익숙한 이름들 가운데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이 많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그리고 현역 최고의 테크니션 발렌티나 리시차까지. 발레는 또 어떤가. 옛 러시아 제국 또는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하는 발레단 중 하나가 바로 키예프 국립발레단이다. 그리고 영화사에 길이 남는 <전함 포템킨>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오데사 계단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영화 <전함 포템킨>의 유명한 유모차 장면 무대인 오데사 계단. 위키미디어
이 정도면, 오히려 러시아 또는 소비에트 연방의 근대사를 이해하려면 우크라이나를 빼고서는 설득력이 없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와 문화의 변방이 아니라 적어도 중심에 서 있던 지역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 예를 들면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와의 역사적 관계를 적용한다면 우크라이나는 역사의 변방이 아니라 항상 중심에 서 있었다. 단지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고, 아주 적은 정보량으로 우크라이나를 잘못 판단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평원 지대, 일명 스텝(steppe)은 세계의 전통 음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지닌 곳이다.

클래식 음악과 발레의 나라

세계 각국의 전통 음악은 모두 그 지역 지형의 특성을 반영한다. 세계 각지의 전통 음악을 살펴보면, 음의 고저장단이 변화무쌍한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중저음에 변화가 심하지 않고, 리듬도 꽤 느린 경우가 많다. 왠지 지형의 변화가 심하면 음악 속의 변화도 심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대표적인 예로 산악 지대가 그렇다. 알프스의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는 알펜호른 소리처럼 상당히 느린 중저음이 느릿느릿 멀리 퍼져간다. 이와는 반대로 평야 지대처럼 변화가 완만하거나 아예 수평선 또는 지평선처럼 변화 자체가 거의 없는 지역들의 음악은 음의 변화가 꽤 심한 편이다. 느릿느릿 널리 퍼져나가는 법이 없다.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발레단의 공연 모습. 키예프 오페라하우스 누리집
지평선이 멀리 보이는 아프리카 초원을 연상해보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전통 음악이라면 왠지 타악기와 사람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빠른 템포일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도 그렇다. 세계 곳곳에 자리잡은 사막 지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전통 음악은 박진감이 넘치는 리듬이거나 멜로디의 변화가 꽤 심하다. 그리고 바닷가 수평선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의 음악 역시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도서 지역 음악이나 스텝 또는 파타고니아 지역 등 평지라 하더라도 느린 리듬에 멜로디를 얹어 부르는 노래들은 꽤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멜로디를 꾸며주는 장식음에 주목한다면, 마치 고요한 표면과는 달리 밑에서 요동치는 바다처럼 미세한 멜로디와 리듬의 변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대표 민요 ‘아리랑’을 생각해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본 가락과 가사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지만 지역에 따라 아리랑은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한다. 여기에도 지형을 반영한 규칙이 있다. 지형이 완만한 평야 지대나 바닷가 수평선이 보이는 도서 지역 아리랑, 즉 ‘진도 아리랑’ 같은 경우, 그 가락의 진행은 여타 지역보다 꽤 화려하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으로 밋밋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아흐리아흐리랑~” 수준으로 장식음이 꽤 화려하게 등장한다. 반대로 한반도 내에서 비교적 고산 산악지대, 또는 지형의 변화가 제법 많고 험준한 산악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정선의 아리랑의 경우, 가락의 진행도 비교적 느리고 변화 역시 완만하다. 물론 장식음의 사용이나 아리랑이라는 기본 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수평선이 보이고 가까운 육지의 지형 변화도 완만한 진도에 비하면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음악이 지형을 반영하는 이유는, 특정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음악에 목적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즉 특별한 용도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이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알프스의 경우, 험준한 산맥을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마을과 마을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음악을 만들고 사용했다. 알프스처럼 지형이 험준하고 변화가 심한 곳에서는 사람이 의사소통을 위해 직접 산에서 산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더 빨리 소리를 통해 ‘적군이 쳐들어왔다’ 또는 ‘건너 마을에 불이 났단다’ 등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안타깝게도 지형의 변화가 심하고 산에 가려 시야 확보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펜호른 같은 저음역 악기와 전통 음악의 특성은 바로 이런 지형을 고려한 것이다. 보통 고음보다 저음이 더 멀리 퍼져나가고 또렷하게 들린다.

키예프의 성 소피아 성당. 동방 정교회,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문화가 시작된 곳이자 정수가 모여 있는 유산으로 2차대전에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대로 아프리카 초원이나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인근 지역 등 평지 지역에서는 일단 시야가 확보된다. 굳이 소리를 통해 전달하기보다,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소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런 평지에서는 음악이 집단과 집단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보다 집단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예가 더 많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예식이나 종교적인 모임에서 사용되는 음악들은 대부분 심장 박동 정도로 시작해 더 빠른 리듬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고, 주로 저음보다는 고음역 악기들과 육성을 사용한 음악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우크라이나 스텝의 화려한 음악

이쯤 되면 독자들 가운데에는 얼핏 예외라고 보이는 음악들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알프스에는 알펜호른뿐만 아니라 요들 같은 음악도 있지 않은가? 화려한 변화와 빠른 리듬만 놓고 보면 평지 지대의 변화 이상으로 음의 고저장단 변화가 심하다. 그렇다면 요들이라는 음악의 목적은 산꼭대기에서 산꼭대기로, 집단과 집단 사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끼리의 결속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실제로 요들이 등장하는 집단의 거주지는 산과 산 사이 자그마한 평지 또는 분지에 존재하는 소규모 촌락들이다. 세계 전통 음악에서 거의 예외가 없는 현상이지만, 만일 예외로 규정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 그 경우는 지형 이외에 더 큰 요인으로 이미 한차례 변화를 겪은 음악이거나 그 지형을 반영하지 않은 외부 지역의 음악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포크 뮤직 앙상블 음반 <스텝으로부터 온 목소리>. 사진 황우창
이런 관점을 적용해 우크라이나의 음악을 살펴보면, 우리가 예외라고 생각할 만한 이 지역의 전통 음악은 모두 외부에서 강제로 유입된 음악일 확률이 높다. 우크라이나의 지형은 스텝이라고 불리는 평지가 대부분이다. 푸른 하늘과 함께 풍요로운 황금빛 평지가 우크라이나 지형의 상징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위가 파란색, 그리고 아래가 노란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 스텝 지역의 전통 음악을 살펴보면 장대한 초원을 반영하면서도 지형의 특성을 반영하듯 꽤 화려한 편이다. 러시아 남성 합창이나 발랄라이카 연주 같은 러시아의 특성이 우크라이나에도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오해할 만한 음악 요소들도, 사실은 우크라이나 특유의 스텝 지역 전통 음악들이다.

루비스톡의 우크라이나 민요집 음반. 사진 황우창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와 툰드라 지역을 반영하는 음악이, 우크라이나에서는 스텝 지역을 반영한 음악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음반 사진에 등장하는 우크라이나 포크 뮤직 앙상블의 음악을 추천한다. 또한 루비스톡(Loubistok)처럼 전통 음악 요소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과 편곡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던 연주 단체도 있었다. 국내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카치니 ‘아베 마리아’의 색다른 편곡 버전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통 음악을 현대화한 노래들이 루비스톡의 음반에 담겨 있다. 음반 두장 모두 국내에 염가반으로 소개된 일이 있고, 확실히 러시아 전통 음악과는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키예프와 오데사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까지.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나라다.

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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