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⑤한과 그리움을 담은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Fado)
파두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구구절절하게 와닿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비슷한 침략의 역사에서 우리는 포르투갈 사람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침략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정서가 아니라, 대항해 시절 배를 타고 머나먼 바다로 떠나는 남자들의 정서, 그리고 그 남자들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정서가 담긴 노래가 바로 이들 포르투갈 사람들의 전통 가창 장르, 파두이다.
포르투갈. 새 여행지로 결정한 뒤 이것저것 살펴본다. 9만2천㎢에 인구 천만명을 넘는다는 이 나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서유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니 분명 유럽인데, 유럽 사람들조차 아프리카 또는 무슬림의 나라라고 따돌리던 시절이 포르투갈에는 분명히 있었다.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파란색 타일 ‘아줄레주’만 해도 그렇다. 당시 유럽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다는 파란색 염료로 그림을 그린 뒤, 완성된 타일로 벽면 전체를 한가득 장식한 것만 봐도 유럽의 향취보다는 좀 더 이국적인 향취가 강하다. 실제로 여러 명승지를 가보면 무어인들의 흔적이 잔뜩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트라는 또 어떤가. 무어인들이 지었다는 성채를 둘러보면 왠지 로마 가톨릭의 십자가보다는 어디엔가 초승달 모양 장식들과 멋들어진 꾸란(코란)의 캘리그래피가 좀 더 어울릴 것 같다. 에보라도, 브라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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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 이슬람 무어인의 성벽. 무슬림이었던 무어인들의 건축술과 예술을 받아들여 만든 걸작으로, 화려한 건물과 대비되어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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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역사는 한술 더 떠서, 동전의 양면에 가까운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흔히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역사는 부와 명예, 그리고 이방인들과 미개인들에게 로마 가톨릭을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이 시대는 제국주의의 시대였고 약탈의 시대였으며 가해자였던 역사이기도 하다. 야누스와 같은 역사랄까. 그러나 포르투갈 역시 가해자로서의 역사 이전에 피해자이기도 했던 시대가 있었다. 기원전 11세기부터 그리스인들과 켈트인들의 침략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로마에 정복당했던 역사를 거쳐 게르만 침공이라는 치욕적인 시기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8세기 무렵에는 아랍인들의 침공. 여기에 16세기 말에는 이웃 나라 스페인의 침략까지. 이쯤 되면 브라질의 드넓은 땅을 지배했던 제국주의 국가의 모습이나 가해자로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수많은 외침을 견뎌야 했던 우리네 역사와 매우 닮았다. 근대사에서 이웃 나라 일본에 지배를 받았던 역사까지. 심지어 1932년에 수립된 살라자르 독재정권의 모습까지, 우리와는 판에 박은 듯 닮은꼴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외침과 독재의 닮은꼴 역사
이런 양면의 역사를 지닌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정서는 노래에 담겨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고, 이들 포르투갈 사람들의 노래는 ‘파두’(Fado)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 파두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구구절절하게 와닿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런 양면의 역사, 그리고 비슷한 침략의 역사에서 우리는 포르투갈 사람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침략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정서가 아니라, 대항해 시절 배를 타고 머나먼 바다로 떠나는 남자들의 정서, 그리고 그 남자들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정서가 담긴 노래가 바로 이들 포르투갈 사람들의 전통 가창 장르, 파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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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 파두 공연 장면. 한과 그리움을 담아 여인들이 주로 부르는 리스본 파두와 달리, 코임브라 파두는 남자들이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왼쪽 남자가 연주하는 악기가 포르투갈 전통 기타 ‘기타라 포르투게사’.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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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에 있다는 황금을 찾아서, 무작정 배를 타고 떠나려는 남자들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항해를 앞두고, 포르투갈 여인들은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며 눈물로 남자들을 배웅한다. 그리고 강하게 견디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버지와 남편,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약 없는 삶을 보내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항구에 나가보고,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배가 돌아오지 않을까, 한을 담아 탄식을 내뱉기도 한다. 이렇게 여인들의 한과 탄식은 그리움을 담아 모양을 갖춰 노래로 재탄생했고, 이것이 바로 항구의 노래이자 여인들의 노래, 리스본 파두가 되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리스본 파두는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검은 숄을 두르고 한이 서린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파디스타, 파두를 노래하는 여자라고 불렀다. 남자가 부르는 리스본 파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가 부르는 파두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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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전통 가창 장르 파두의 고향이자, 트램으로 유명한 리스본 전경. 구시가지 알파마로 올라가는 트램이 여행자들 사이에 꽤 유명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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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배를 올라탔다지만, 기약 없는 항해 속에서 포르투갈 남자들은 고향 땅에 남겨둔 가족들과 여인들을 그리워했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바다 위에서 젊음을 보낸 남자들은 세월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들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향 땅을 밟은 포르투갈 남자들에게는 외로움과 향수만이 남아 있을 뿐, 생활고에 고향을 떠난 가족들과 여인들의 소식을 알 수가 없다. 더 이상 고향 땅에 정을 붙이고 혼자 살아갈 자신들이 없다. 이렇게 배를 타고 돌아온 포르투갈 남자들은 고향을 떠나 연고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때로는 내륙으로, 또는 북쪽으로 올라간 남자들은 서서히 늙고, 더는 움직일 기력도 없어졌다. 그리고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코임브라인데, 이 포르투갈 남자들이 경험한 신대륙의 이야기가 코임브라를 중심으로 서서히 축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식으로 승화되어 코임브라가 교육도시, 대학도시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정착한 포르투갈 남자들은 자신들의 무용담과 함께 그리웠던 가족들과 여인들에 대한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는데, 이것이 바로 남자의 파두, 코임브라 파두이다.
파두의 양대 갈래, 리스본과 코임브라
파두의 두 갈래가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서적 배경을 갖고 있다면, 이 파두를 세계적으로 알린 주인공이 바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이다.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당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성을 떼고 ‘아말리아’라는 이름으로만 부를 정도로 1920년 7월23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난 이 파디스타를 사랑했는데, 1999년 10월 세상을 떠날 때에는 성대하게 국장을 치른 역사도 있다.
절정의 가창력, 최고의 목소리 같은 표현만으로는 아말리아의 업적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아말리아 최고의 업적은, 포르투갈 사람들만 즐기고 공유하던 노래와 그 속의 정서를 세계에 알렸다는 점이다. 세계 음악 시장이 미국이라는 최대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1960년대 유럽의 음악 시장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시대는 바로 아말리아가 최전성기를 보낸 시기와 일치한다. 실제로 아말리아의 히트곡들 가운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노래들은 대부분 1960년대 프랑스에서 녹음한 것들이 많다. 또한 이 당시 아말리아는 올랭피아 등 꽤 많은 프랑스 극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 녹음된 공연 실황들 역시 음반으로 공개되어 ‘검은 돛배’(Barco Negro) 같은 노래에서 아말리아 최전성기의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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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파두 가수 중 현지에서 가장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는 여성 가수이자 ‘바다의 노래’ 주인공 둘스 폰트스의 90년대 공연 실황 음반 표지.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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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리아의 유산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쳐서, 현역 파디스타들 가운데 ‘바다의 노래’(Can??o do Mar)로 유명한 둘스 폰트스나 마리자, 크리스티나 브랑쿠 등은 하나같이 ‘제2의 아말리아’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이 현역 가수들은 월드뮤직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명성을 쉽게 얻었지만, 제2의 아말리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수들이 더 많았다는 어두운 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고민에서 벗어난 마드레데우스(Madredeus) 같은 90년대 신생 밴드는, 파두의 전통을 답습하기보다 선대의 유산에 고전 음악, 그리고 포르투갈 전통 음악들을 절묘하게 배합해 색다른 방향으로 파두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진화하는 여성 파두 또는 리스본 파두와는 다르게, 코임브라 파두는 조제 아폰수(Jos? Afonso)라는 전설적인 스타를 배출하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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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파두와 유럽 클래식의 전통, 그리고 포르투갈 전통 음악 등을 아우르는 음악성으로 파두의 영역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마드레데우스의 걸작 음반 <존재>.?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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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파두를 즐기고 싶은데 제목이나 가수 이름을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글쓴이는 독자들께 이런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영어 말고 ‘콩글리시’ 발음으로 읽어볼 것. 물론 ‘cora??o’(꼬라싸웅: 마음)같이 읽기가 꽤 난해한 단어도 있지만, 포르투갈어를 포함해 우리가 흔히 로마자 알파벳으로 부르는 문자로 표기된 언어는 속칭 콩글리시로 읽을 때 의외로 원어에 가까울 때가 있다. 언어마다 읽기가 확연히 다른 음가도 있지만, 모음 발음을 ‘아, 에, 이, 오, 우’로 통일해 대충 읽어도 원어에 비슷하게 들릴 때가 많다. 물론 프랑스어처럼 모음 발음을 대충 읽기 까다로운 언어도 있다. 염두에 둘 것은, 읽는 시도부터 시작한다면, 세계 각지의 음악을 즐기는 데 언어는 결코 장벽도 아니며 두려워할 필요도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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