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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1 05:59 수정 : 2019.07.26 10:56

[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② 문화의 교차로, 요르단 페트라와 오만 무스카트에서

여행은 호기심을 충족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음악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알아가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라고 글쓴이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글쓴이는 신드바드, 오디세우스, 마르코 폴로, 그리고 이븐 바투타를 부러워한다.

“두근두근 울렁울렁 가슴 뛰지만/ 무섭고도 두려워서 겁이 나지만/ 신밧드야 오늘은 어디로 가나/ 우리 모두 듣고 싶다 얘기보따리 (함성)”

만일 여기에 멜로디를 붙여 따라 부르는 사람이라면, 글쓴이는 독자께서 1970년대를 기억하는 세대라고 확신한다. 이 가사는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옛 일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도입부이다. <신밧드의 모험>은 원작 국가인 일본도 그렇지만, 70년대 중반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아랍 문화권 이야기를 대중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소화해낸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한다. 글쓴이는 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주제가야말로, 특정 문화권 속에서 성장한 우리가 전혀 다른 문화권 또는 그 결과물을 만나는 우리의 심경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신드바드의 후손

설령 이 만화영화 또는 아예 이 가사나 멜로디를 모르는 세대라 하더라도, 신밧드 또는 정식 외래어 표기인 신드바드라는 이름을 통해,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 동반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가사에서도 등장하지 않는가. 신드바드라는 이름 자체가 바로 우리 모두 듣고 싶은 이야기보따리임을. 그 보따리의 이름은 때로는 ‘아라비안나이트’ 또는 ‘천일야화’가 되었다. 지중해로 치환하면 오디세우스 같은 존재랄까. 꽤 오래전에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낯선 문화를 만나던 신드바드야말로, 낯선 문화를 만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우리의 대선배이자 롤 모델이다. 어쩌면 월드뮤직을 사랑하고, 낯선 문화에 호기심을 갖는 독자들 모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신드바드의 후손이 아닐까.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 무대였던 요르단 페트라의 고대 유적. 게티이미지
지난 회에서 글쓴이는 월드뮤직에 대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 본연의 정서인 희로애락을 소리의 고저장단으로 호소하는 음악’이라는 정의를 제시했다. 이번 회에서는 월드뮤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가지 요건을 추가로 제안하고자 한다. 오직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했으며, 그 지역의 언어나 음악 형식, 또는 그 지역만의 전통 악기로 연주된 음악이면 더 좋고, 그리고 위의 두 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를 담아냈다면 그 음악은 월드뮤직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건을 염두에 두고 세계 각지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을 들어본다면, 우리가 월드뮤직에 대한 정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드뮤직의 공통성과 다양성

이 요건을 적용해서 월드뮤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음악들을 추리고 나면, 그 음악 속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문화 코드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 역사, 지리, 관습, 기후 등등, 월드뮤직은 인류 문화의 공통점을 내포하는 동시에 다양성을 함께 지닌 재미있는 음악이다. 우리는 단순한 지식의 나열과 주입식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음악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세계 지리를 익히며, 특정 지역 사람들만의 관습을 이해할 수도 있다. 어느 외국인이 우리의 전통음악이나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한국어, 그리고 우리만의 관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듣는 해외 각지의 십대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가치는 뒤로하고, 세계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문화의 공통분모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가 열광하는 것이다. 이제 그 안에 특정 지역인 우리만의 문화가 담겨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만 남았다.

이런 사례로, 좀 더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본다. 만일 우리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로 시작하는 우리 옛 가요를 듣는다면, 우리는 아마 현인 선생님의 목소리를 맨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 노래를 모르거나 이 가사를 처음 들어본 방탄소년단 세대라 해도, 우리의 옛 가요 중 하나라고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의 목소리로 한국어로 구성된 가사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가 상징하는 역사적 사실을 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구체적으로 1·4 후퇴 때 흥남에서 이산가족이 되어버리는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담은 대중음악의 첫 가사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들어온 서양 대중음악을 한국의 옛 대중가수가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을 적용해 부른 한국 가요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의 현대사를 담았고, 한국인이라면 공감하는 분단의 비극을 노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가요는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뮤직으로 손색이 없다.

반면, 한국의 문화나 역사, 관습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외국인이나 외국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 이 노래를 처음 듣는다면 꽤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왜 북한의 지명이 남한의 옛 대중음악에 등장하는지 사전 이해가 없다면, 외국인은 저 음악의 정서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반대로, 최소한 한글을 읽을 수 있다거나 한반도의 현대사라든지 한국전쟁에 관한 사전 정보를 이미 갖고 있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의 원로 대중가수가 부르는 저 노래의 감성을 이해하고 공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경우는 순전히 음의 고저장단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의 힘이 발현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이 지경에까지 몰입한 외국인 가운데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국 역사와 관습에 몰입하거나, 한국어를 배우거나, 최소한 한글을 읽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거나. 글쓴이는 확신한다. 이 사람은 백 퍼센트 또 다른 신드바드의 후예일 것이다.

요르단 제라시의 고대 로마 유적. 게티이미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께서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쪽인가, 아니면 호기심이 앞서는 쪽인가. 물론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반반 정도일 수도 있겠다. 여행은 호기심을 충족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음악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알아가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라고 글쓴이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글쓴이는 신드바드, 오디세우스, 마르코 폴로, 그리고 이븐 바투타를 부러워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글쓴이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기왕이면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문화권이 교차하는 지점을 좋아한다. 이런 곳을 여행하면 조금이라도 친숙한 문화권을 통해 낯선 문화에 대한 선입관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오랜 세월 동안 단일 민족, 또는 단일 문화라는 교육을 받은 한반도 거주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요르단 페트라와 레바논 음악가 아바지

한 예로, 대한민국 사람에게 꽤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한다면?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유럽 지중해의 역사와 문화가 이슬람 문화와 공존하는 지역이라면? 요르단과 오만 같은 나라들은 이슬람 문화권이면서도 그리스와 로마의 흔적이 꽤 남아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들은 모두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 볼거리가 많은 훌륭한 여행지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마침 글쓴이는 한겨레신문사 산하 테마여행 팀에서 제안을 받아 2019년 2월14일부터 요르단과 오만 등지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촬영 무대가 되었던 요르단 페트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역시 글쓴이의 관심은 음악인지라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의 음악들을 직접 듣고 느끼는 일에 들떠 있다.

레바논 음악가 아바지의 음반. 황우창 제공
이슬람 문화권 지역은 아랍어라는 공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국경의 개념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이집트에서 유행하는 대중음악이 레바논이나 모로코에서 동시대에 유행하는 특성이 있다. 물론 특정 지역의 음악 전통이나 정서가 반영되어 그 지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음악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레바논 음악가 아바지의 음악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슬람 문화권의 음악 특성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두두크(duduk)나 지중해의 음악 특성도 잘 담아내고 있다. 요르단이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이 레바논 음악가의 음반들이 꽤 유명하고 실제로 애청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아바지의 가치는,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 그리스·로마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의 음악과 정서, 그리고 문화를 잘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요르단 와디럼 사막의 일출 장면. 게티이미지
상상해보라. 요르단 페트라를 바라보면서, 오만 무스카트 시장에서, 별빛 쏟아지는 와디럼(와디람)의 붉은 사막에서 낯설지만 아름다운 아바지의 음악을 듣는 순간을. 두근두근 울렁울렁 가슴 뛸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신드바드의 공식 고향은 바그다드로 알려져 있지만, 오만 사람들은 신드바드의 고향이 무스카트라고 주장한다.

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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