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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9 09:13 수정 : 2020.01.09 09:55

지난 12월28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이희문과 밴드 허송세월, 조선아이돌 놈놈이 앨범 ‘오방신과’ 발매를 기념해 열린 같은 이름의 공연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노승환(ROHSH) 제공

커버스토리 | 신 국악
요즘 20~30대가 열광하는 국악인 이희문
지난해 12월28일 공연장 가보니
파격적인 의상 휘몰아치는 노랫가락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 실험 등 때문 인기”

지난 12월28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이희문과 밴드 허송세월, 조선아이돌 놈놈이 앨범 ‘오방신과’ 발매를 기념해 열린 같은 이름의 공연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노승환(ROHSH) 제공

‘힙(hip)하다’는 과거 ‘핫하다’ ‘트렌디하다’라는 말과 상통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힙하다’에는 어떤 생동감이 느껴진다. 유행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힙한’ 무엇인가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 팔팔한 역동성 때문이랄까? ‘힙하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 여기 있다. 음악가 이희문. 그의 힙한 공연장을 찾았다.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국악인, 전통예술인. 그의 이름 뒤에 붙는 명칭은 차고 넘치지만, 그의 공연과 음악을 접하고 나면 그 명칭들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어본 게 2017년 말이었다. 당시 민요 록밴드 ‘씽씽’에서 ‘베틀가’를 부르던 그를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먼저 봤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팔뚝에 돋은 소름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세상에!”라고 외쳤다. 그로부터 3년간 크고 작은 무대 위의 그를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단독 공연장을 찾았다.

지난해 12월28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이희문과 밴드 허송세월이 함께 꾸미는 민요 콘서트 ‘오방신(神)과’ 공연장에 들어서자, 뭔가 시큼하면서 쌉싸래한 향이 풍겨왔다. 그 향의 정체는 공연 시작 전 선착순으로 관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막걸리였다. 과연 ‘민요’ 콘서트답게 준비한 재치 있는 장치였다. 이날 공연은 1월3일 발매한 앨범 <오방신(神)과> 공개에 앞서 마련한 단독 콘서트로, 오방신(동서남북에 중앙을 합한 다섯 방위를 관장하는 수호신)으로 분한 이희문, 조선아이돌 놈놈, 인디뮤지션이자 이번 앨범의 음악 감독을 맡은 노선택이 이끄는 밴드 허송세월이 무대 위에 함께 올랐다.

무대에 등장한 ‘오방신’은 역시나 파격적인 의상을 걸치고 나타났다. 예상할 수 없는 의상 콘셉트는 그의 공연 재미 중 단연 압권이다. 이희문은 이날 공연 전반 주머니가 많은 낚시꾼 조끼와 뒷목 가리개가 있는 모자를 쓰고 나왔다. 오방신이라고 해서 ‘신’적인 면모를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예상을 깬다. 오방신은 우리 삶 어디에나 있다는 듯한 메시지를 준다. 낚시꾼 같은 그가 불러 재끼는 노래는 꺾였다가 떨렸다가 높이 이어졌다가 아래로 휙 처박히기도 한다. 다채로운 목소리의 기교가 정신없이 휘몰아친다.

지난 12월28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이희문과 밴드 허송세월, 조선아이돌 놈놈이 앨범 `오방신과' 발매를 기념해 열린 같은 이름의 공연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노승환(ROHSH) 제공

‘민요와 뽕끼의 만남’. 이번 공연과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다. 뽕끼. 한국 대중음악 가운데 트롯풍 음악의 특징을 일컫는다. 트로트는 민요 등이 대중음악으로 스며들어 생겨난 음악이기에 민요와 뽕끼는 뗄 수 없는 관계이겠다 싶다. 그러나 그의 무대에 귀 기울일수록 그저 민요에 뽕끼를 더한 게 아니라고 느껴졌다. 민요와 뽕끼의 화학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전혀 새로운 화합물이 그의 노래였다. 블루스 음악 같기도 한 ‘어랑 블루지’에서는 그 화합물의 특징이 진하게 느껴진다. ‘흥’ 터지는 노래 ‘허송세월 말아라’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기도 한데, 뽕끼와 흥, 노랫가락에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노래였다. 이희문도 “‘허송세월 말아라’가 단연코 가장 흥이 나는 노래다. 그 외 ‘노래, 가락’과 ‘어랑 브루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다”라고 꼽았다.

이날 공연은 전석 입석(스탠딩)인 공연이었다. 흥이 높이 치달을 즈음 무대 바로 앞 울타리(펜스)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무대 위 음악가들을 가장 가까운 데서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모여든 그곳에는 20대로 보이는 관객부터 60대 관객까지 있었다.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의 오랜 팬들부터 최근 유튜브와 축제 무대 위 이희문을 보고 팬이 된 신규 팬들까지, 모두가 두 팔을 높이 들고 펄쩍펄쩍 뛴다. 이희문과 조선아이돌 놈놈의 손짓에, 눈길에 환호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제 민요는 ‘어르신들이 찾는 전통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20~30대에게까지 어필하는 ‘이희문식 경기민요’의 강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이희문은 “틀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움, 그게 강점일 거라 생각한다. 더불어 시각(비주얼)적인 부분에 힘을 쏟고 동시대성을 갖기 위해 실험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젊은 청중들이 가상하게 여겨주는 거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지난 12월28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이희문과 밴드 허송세월, 조선아이돌 놈놈이 앨범 ‘오방신과’ 발매를 기념해 열린 같은 이름의 공연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노승환(ROHSH) 제공

공연 후반에 들어서자 이희문은 형광 초록색 단발 가발을 쓰고, 화려한 꽃무늬의 점퍼,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예의 빠지지 않는 날카로운 굽의 하이힐도 신었다. 조선아이돌 놈놈은 번쩍이는 은박 의상을 입고 등장해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났다. 무대 전반의 색감과 조명 연출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희문은 “개인적으로 2013년 ‘오더메이드레퍼토리 잡’ 공연 이후 가장 투자를 많이 한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앨범 제작과 공연에 있어 비주얼 콘셉트에 변화를 주기 위해 꼭 필요한 투자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패션 브랜드 푸시버튼 박승건 디자이너가 이번 공연의 비주얼디렉터를 맡았다. 푸시버튼 역시 항상 재미와 흥이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이희문의 공연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희문은 “무대 위 인원 10명은 만만치 않은 수인데 박승건 디자이너가 어려운 일을 자기 일처럼 해줘서 가능했던 무대였다. 그가 멤버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보이도록 연출해줘서 퍼포머(공연자)로서 훨씬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무대였다”고 덧붙였다.

80분의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열기는 채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팬이 팬 사인회로 몰려갔다. 오래 기다렸다 사인을 받고 함박웃음을 짓던 유아람(31)씨. 그는 이 공연을 보기 위해서 대구에서 올라왔다. “2년 전쯤 유튜브에서 밴드 씽씽 시절의 모습을 보고 반해서 그 뒤로 그의 공연을 많이 찾아다니고 있다. 오늘 공연에는 ‘긴 난봉’이라는 노래가 정말 좋았다. 하나의 민요를 매번 다르게 표현하고 해석해서 들려주는 게 정말 신기하고 좋다”고 유씨는 공연 소감을 남겼다.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의 공연 ‘깊은사랑(舍廊)사랑’의 한 장면. 이 공연은 오는 2월20~2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3부작으로 열린다. 사진 이진환 제공

전통음악인, 국악인,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공연 ‘오방신(神)과’는 이제 그를 ‘음악가 이희문’으로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공연이었다. 그의 실험이라면, 도전이라면 꼭 놓치지 않고 보고, 듣고 싶다는 생각이 남았다. 곧 그가 예술감독을 맡은 경기소리프로젝트그룹 나비의 ‘전집’ 공연이 1월26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다. 2월8일 서울 문화역284의 기획전시 ‘호텔사회’의 공연 프로그램에도 이희문의 민요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2월20일부터 26일까지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깊은사랑(舍廊) 3부작’ 공연이 있다. 이희문은 “앞으로 홍익대 앞 작은 클럽에서도 놀아보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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