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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5 20:36 수정 : 2019.12.26 02:38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커버스토리 ㅣ 2020 & 2050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30년 전 <한국방송>(K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당시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주목받았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는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에스에프(SF) 영화에 견줘도 수작으로 꼽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애니메이션은 인구 증가,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 지구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려고 인류가 우주에 띄운 독수리호가 실종되면서 펼쳐지는 얘기를 담았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로봇, 우주선, 각종 첨단 전자기기들은 ‘결국 오고야 만 2020년’에선 신기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2020년으로부터 30년 뒤는 어떨까?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부대표이자 2010년께 등단 이후 에스에프(SF)소설을 꾸준히 써온 전삼혜 작가가 2050년의 풍경을 ‘손바닥 소설’ 형태로 보내왔다.

눈이 안 내려서 다행이네. 유나는 세종대왕상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지현이 아니더라도 눈은 골칫거리였다. 오른쪽 눈의 시야를 자꾸 가리고 왼쪽 인공 안구 앞의 고글에 물방울을 맺히게 했다. 2월, 땅은 잘 말라 있고 추위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밤의 광화문은 불빛으로 환하게 반짝거렸다. 인공 안구가 아직은 완벽한 상이 아니라 빛 분간만 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해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런데 눈부셔. 양쪽 다 고글 쓸까. 오른쪽 눈을 찌푸리다가 유나는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 버튼을 꾹 눌렀다. 지현이는 어느 출구로 나오려나.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손목에서 전화 신호가 서너 번 울리자 지현의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왔어! 조금 늦었지? 엘리베이터 고장 나서 계단 없는 출구로 갈게.”

통화가 끊기고 잠시 후, 지현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유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유나 너 서울 올라가고 못 봤으니까 한 2년 넘었지?”

“응. 너 혼자 왔어?”

유나의 질문에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따라온다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어. 세상천지에 어느 스물한살이 밤 나들이에 엄마를 데리고 가냐고.”

유나가 작게 웃었다.

“시외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그걸 혼자 다 한 거야? 멋있네.”

“아. 그래도 집에 갈 때는 시외버스 정류장에 데리러 나온대. 그건 어쩔 수 없지.”

하여간 엄마들은 딸을 너무 과잉보호해. 지현이 투덜거리며 전동휠체어 기어를 바꿨다. 윙, 소리가 나며 ‘평지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뭐냐. 이제 기어도 달렸어? 좀 있으면 계단도 올라가겠네.”

유나가 신기한 듯 휠체어를 들여다보았다. 유나의 고개가 내려오자 지현과 눈높이가 맞춰졌다.

“계단 좀 올랐으면 좋겠다. 그러면 대학에서도 보조 활동인 신청 안 해도 되는데.”

지현이 유나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 이게 그 인공 안구야? 고글 빼 봐. 나 구경 좀 하게.”

유나가 고글 옆 버튼을 누르자 고글 렌즈가 테 안으로 필름처럼 말려들어 갔다. 지금 유나의 인공 안구 눈동자 색은 지현이 골라준 어두운 녹색이었다. 메신저로 한참 이게 낫니 저게 낫니 착용 샷을 서른개쯤 보내준 뒤 지현이 제일 낫다고 한 것. 그 이야기를 하자 지현은 혀를 길게 빼물며 투덜거렸다.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사고 났어’ 다음에 내가 막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거엔 대답도 안 하고. 그다음에 떡하니 보내는 메시지가 뭐? 인공 안구 무슨 색으로 할까? 내가 살다 살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우리 할머니도 그거엔 기함하셨을걸.”

지현의 할머니는 1년 전에 돌아가셨다. 유나가 상경하고, 일하던 중 가스버너 폭발 사고로 손과 눈을 다치기 전이었다. 유나는 일하느라 바빠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다만 기억은 하고 있었다. 유나의 등짝을 냅다 후려치다가 고맙다고 하시던 할머니.

“정말 기함을 하셨을까? 등짝 때리고 골라주셨을 거 같은데.”

“어쨌든 등짝은 맞을 거야.”

유나가 지현의 할머니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시험 끝나고 다 같이 노래방에 가자고 멤버를 모으다 지현이 끼게 되었다. 그 노래방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으니까 휠체어도 가져갈 수 있잖아. 유나의 말에 지현은 휠체어가 안 되면 보행보조기구라도 끼고 가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문제가 있다면, 지현이 너무 신나게 노느라 법률상 청소년 장애인이 안전 점검을 위해 두 시간마다 눌러야 하는 휴대용 호출기 사용을 잊고 있었던 점이었다.

신나게 샤우팅을 하고 있을 때, 노래방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휠체어 타고 온 애 이름이 혹시 최지현이냐?”

온 팔을 휘두르며 춤을 추던 지현이 머쓱하게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지현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노래방 주인 뒤에서 나타났다.

“최지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빨간색 이상한 휠체어 탄 애 본 적 없냐고 동네를 다 뒤졌어. 이 건물에도 없었으면 경찰 부르려고 했다.”

빨간색 이상한 휠체어, 라는 말에 같이 노래를 부르던 친구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받은 보급용 흰색 휠체어에 아크릴 물감과 매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장식을 달아준 건 친구들이었으니까. 유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지현이가 너무 신나게 놀아서, 저희도 연락하는 걸 잊어버렸어요.”

“그래. 호출하는 거 잊어버린 게 지현이 잘못이지 너네 잘못이겠니. 최지현, 너는 이번 시험 성적 두고 보자.”

“아, 엄마 좀!”

항의하는 지현과 엄마가 돌아가고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정작 사건은 그 다음 날 일어났다.

복도에 웬 할머니가 지나가는 아이마다 붙잡고 이유나가 누구냐고 물어보고 계셔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유나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지? 유나가 중얼거리자 지현이 잔뜩 겁먹은 눈치고 휠체어를 굴려 다가왔다.

“야, 우리 할머니인가 보다. 어제 집에 가서 나 대판 혼났거든. 같이 간 애들 이름 다 불라고 해서 네 이름 댔어.”

유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끼며 복도로 나섰다. 왜 하필 나야. 근데 내가 지현이 끌고 가긴 했지. 그래도 고등학생이 노래방 간 게 뭐 그렇게 죽을죄라고 그런담. 적당히 혼날 각오를 한 유나가 할머니 앞에 서서 말했다.

“제가 이유나인데요.”

“네가 지현이 친구 유나냐?”

“네.”

“노래방 가자고 한 게 너지?”

“네. 그래도…. 지현이도 재밌다고….”

우물쭈물하는 유나의 등에 할머니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으악!”

“아이고, 이 녀석아. 어떻게 노래방 갈 생각을 다 해? 응? 우리 애가 다리도 불편한데.”

“아, 아파요! 폭력 반대! 일단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 선생님 부를 거예요!”

항의하며 뒤로 물러나는 유나가 본 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할머니였다.

“어떻게 우리 지현이랑 노래방 갈 생각을 다 했어. 장하다. 너무 고마워.”

“예?”

아니, 최지현 노래방 되게 잘 가는데요. 걸린 게 처음일 뿐인데. 당황스러운 유나의 손을 붙잡고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하시다 가셨다. 지현은 이야기를 전해 듣더니 “우리 할머니가 20세기에 태어나서 그래. 좀 이상한 데서 감동을 잘하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쪽팔려.”

휠체어가 고속버스 탑승도 못 하는 시대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이해해야지. 내가 대학 간다고 했을 때도 엄청 우셨거든. 우리 교수님도 휠체어 타신다고 하니까 너무 좋다고 대학본부에 오시려는 거 말렸다. 투덜투덜 대며 휠체어를 조종하는 지현을 따라 유나도 낄낄거리며 걸었다.

경복궁 야간 개장 입장은 3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매표소 직원이 휠체어를 보고 “보호자가 없냐”고 묻자 지현이 휴대전화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여기 사진 보시면 오늘 야간 개장은 휠체어 입장 가능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보호자는 없지만, 휠체어를 탄다고 꼭 보호자가 필요한 건가요? 저는 성인인데요. 게다가 요새 휠체어가 못 들어가는 데가 어디 있어요.”

직원이 곤란하다는 듯 대답했다.

“문화재는 문화재 보호법 상 문턱이나 계단을 다 없앨 수가 없어요. 턱 넘는 게 좀 불편하실 거 같아서요.”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럼 제 친구가 왔으니까 얘를 보호자로 할게요. 성인이고 고등학교 때 장애인 활동보조 교육 이수했어요.”

직원은 유나를 올려다보다가 고글 너머의 진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저기, 그쪽 분은….”

“저는 턱 잘 보고 잘 넘어다녀요. 이 휠체어 경량형이라 제가 좀 도우면 문턱 넘는 건 괜찮아요.”

그렇게 하세요. 승낙 후 직원이 멀어지자 유나가 지현과 눈을 마주쳤다.

“창덕궁은 후원 경사가 심해서 휠체어가 아직 못 들어가거든. 그래서 일부러 경복궁으로 한 건데.”

지현이 변명하자 유나가 왼쪽 손으로 뺨을 문질렀다. 엄지와 검지가 플라스틱 관절로 된 의수였다.

“어쩔 수 없지. 문화재도 보호해야 하고 너도 보호해야 하고.”

둘은 산책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며 경복궁 앞 인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계단 오르는 것보다 문턱 넘는 휠체어 보조바퀴가 먼저 나와야겠네.”

아직까지 문턱이 있는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 지현이 한숨을 쉬었다.

“의수는 괜찮아? 추우면 막 얼고 그러진 않아? 나 핫팩 있어. 줄까?”

걱정스러워하는 지현의 질문에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좀 춥긴 한데 견딜 만해. 재활 훈련도 열심히 해서 이제 의수로 가위바위보도 해.”

“병뚜껑은 아직 못 따지?”

“그건 어려워. 오른손으로 따면 되긴 하는데, 나 원래 왼손잡이잖아.”

“그러네. 왼손용 의수는 작업하기에 좀 힘들 거 같아. 사용자가 적으니까 개발도 느리고.”

“괜찮아. 사람들 쳐다보는 거에도 익숙해졌고.”

유나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너랑 놀다가 사람들 시선을 엄청 받았잖아. 그거 덕에 사람들 시선이 이제 신경 안 쓰여.”

휠체어가 원활하게 탑승하도록 교통수단이 변하고, 문턱이 사라지고, 인공 안구가 시신경과 연결되어 빛 분간이 가능하게 되어도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지현과 유나가 고등학생이었던 몇 해 전보다는 나아져 있었지만, 아직도 불쌍하다, 나는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 라고 어릴 때부터 휠체어를 탄 지현이 유나를 위로했지만 소용없을 때도 많았다.

“우리가 엄청 설치면서 살자. 우리가 어른이 되면 더 나아질 거야.”

사고 후 왼손 재활 훈련이 너무 힘들다고 유나가 펑펑 울며 전화한 날, 지현은 그렇게 말했다.

“너는 뭐 재밌는 일 없었어?”

휠체어 바퀴 휠에 야간 등을 켜며 지현이 물었다.

“음, 별로. 아. 얼마 전에 나 자격증 시험 쳤거든? 그런데 시험 전에 전자기기를 다 끄라는 거야. 그런데 누가 ‘저 어깨 근육에 전류기 삽입했는데 꺼야 하나요?’ 그러는 거 있지. 그 사람 말에 시험 감독관이 넋이 나가 있는데, 30명씩 들어가는 시험장 안에서 열 명이 손을 든 거야. 저는 다리 근육에 전류기가 있어요, 저는 인공 안구 안에 배터리 들어가는데요, 전류형 청신경 꺼요? 심폐보조장치 꺼요? 난리도 아니었어.”

“대박. 시험 감독관 비장애인이었나 보다.”

“그런가 봐.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나는 고글 빼래. 고글이랑 스마트 모니터 연결해서 커닝하다 적발된 사례 있다고.”

유나가 고글을 벗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진짜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고, 인간의 악용도 끝이 없다. 유럽에서 인공 안구 안에 마약 넣어서 밀매하려다 적발된 사례 때문에 지금 인공 안구 사용자 유럽 입국제한 걸렸잖아.”

휠체어 바퀴가 빛 자국을 남기며 광화문 앞 인도를 조용히 흘러갔다.

“오늘 야간 개장 재밌었으면 좋겠다.”

지현이 두 손을 호호 불며 말하자 유나가 맞장구쳤다.

“응. 나중엔 우리끼리 막 여행도 가고 그러면 좋겠다.”

지현이 씩 웃었다.

“우주여행도 슬슬 가능하지 않을까? 유인 우주탐사 다시 시작했잖아.”

“오, 좋네.”

입장 시간 10분 전을 알리는 소리에 둘은 걷던 방향을 틀었다.

우리 어디든 가자.

밤 나들이든 어디든 우리 원하는 곳으로 가자. 2050년 오늘은 우리가 경복궁 야간 개장으로 만족하지만, 나중에는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가 버리자.

밤이든 낮이든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전삼혜(에스에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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