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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1 21:06 수정 : 2019.12.12 02:40

국민의당에 걸렸던 때수건 걸개그림. <한겨레> 자료 사진

커버스토리 ㅣ 세신 문화

청결 개념 시대마다 달라
한국 때수건 세계적으로 인기
유방암 예방 홍보에도 등장
‘때푸치노’ ‘때르메스’ 등 신조어 생겨

국민의당에 걸렸던 때수건 걸개그림. <한겨레> 자료 사진

송구영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이다. ‘목욕러’(목욕 즐기는 이들을 빗대 인터넷 신조어)는 묵은 때를 보내고 새 각질을 맞이한다. 2019년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이즈막. 때와 때수건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담았다.

아킬레우스의 약점은 발뒤꿈치였다.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아들을 스틱스강에 담가 불사의 몸으로 만들었으나, 손으로 붙잡았던 발목엔 물이 닿지 않았다. 이 이야기로부터 유래되어 발뒤꿈치의 힘줄 부분을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르게 됐는데,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게 됐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혼자 씻을 수 있다고 저항하는 어린이의 약점도 발뒤꿈치다. 엄마 손에 붙들리면 복숭아뼈 아래서 국수 줄처럼 때가 밀렸다. 패배의 증거였다. 지금도 발목 때를 밀 때면 생각한다. ‘아킬레우스의 발목을 빼먹다니. 한국의 어머니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스틱스강에서 때도 밀었을 거야.’

청결의 개념은 시대마다 달랐다. 몸에 쌓이는 때의 가치도 그렇다. 4~5세기 기독교도들은 깨끗해지는 것을 위험한 쾌락으로 여겼다. 목욕을 멀리하고 때와 냄새를 거룩히 여긴 기독교 성인들처럼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가 하면, 건강을 위해 씻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과거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할 무렵, 사람들은 목욕으로 모공이 열리면 균이 침투한다고 믿었다. 캐서린 애쉔버그가 쓴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는 18세기 초 프랑스 의사들의 주장을 전한다. ‘몸에 낀 때가 모공을 막아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몸을 씻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염 예방법이다.’ 17세기의 유럽인들은 목욕보다 깨끗한 리넨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더 청결하게 여겼다. 옷깃이나 소매 안쪽에 때가 끼면 몸의 때는 모두 제거된다고 생각했단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중에서 근대생활사를 다루는 22권에 조선사람의 두발 관리에 대한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남자들은 상투에 비듬이 끼면 높은 언덕에 올라가 머리를 풀고 흔들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흩날리는 비듬은 싸락눈 같았을까!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제일목욕탕’ 단골들의 목욕바구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더러운(?) 이야기를 박박 밀어낼 차례다.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52가지 디자인 중엔 ‘이태리 타올’(이태리타월)이 있다. 비스코스 레이온사를 까끌까끌하게 직조한 때수건이 등장하기 전에 한국인은 무엇으로 몸을 닦았을까? 1961년 한 신문에서 목욕 요령을 소개했다. ‘팔이나 배 등덜미 같은 데는 수세미 같은 것에 비누를 묻혀서 힘껏 문지르는 것이 타월(일반 수건)로 문지르는 것보다 모근을 깨끗이 합니다. 이때 심장의 방향으로 피부가 핑크색이 될 때까지 마사지하면 피부가 매끌매끌해집니다.’ 천연 수세미는 목욕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공중목욕탕 온탕에 때가 둥둥 뜨면 수세미를 띄워 제거하라는 팁도 있다. 1963년에는 등을 하도 밀려서 “껍데기 벗겨지겠네”라고 하소연하는 신문만평도 있었다. 당시 ‘군정 연장’을 밀어붙이려는 군부세력을 ‘때 밀기’로 풍자하는 내용이다. 피부가 붉어지도록, 또 등의 살 껍질이 벗겨지도록 때를 미는 것이 일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태리타월은 이탈리아가 아닌 한국 태생이다. 그러나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1964년 일본 관광객이 부산의 온천에서 쓰고 버린 거칠거칠한 목욕 수건을 본 장사꾼 김필곤이 ‘이태리식 연사기’라 불리던 직물기로 직조한 것이 최초라는 설. 그리고 부산 한일직물의 김원조가 당시 많이 생산하던 폴리에스터 실로 만든 직물 ‘깔깔이’를 목욕에 적합한 비스코스 레이온사로 바꿔서 개발했고, 김필곤은 이후에 이를 특허 등록하고 유통한 인물이라는 설이다.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은 정확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태리타월 3종.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다른 여러 기록을 종합하면 이태리타월의 탄생은 1962년에서 1967년 사이다. 그리고 김필곤의 이름으로 된 가장 이른 특허청 실용신안등록은 1962년이 아닌 1966년이다. 김필곤은 이를 바탕으로 큰 부를 이뤘다고 한다. 실용신안권이 소멸하는 1976년까지 유사상품 제조업자와 수십건의 소송이 이어졌고, 유사품을 만들어 유통하던 이가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이태리타월은 현재까지도 상거래 플랫폼 ‘아마존닷컴’의 해외 소비자들이 적나라한 때 사진 후기를 올리는 인기상품이다. 원조 이태리타월의 상징과 온탕에 몸을 담근 여성이 얼굴에 때수건을 대고 있는 포장 디자인의 상표권은 계속 갱신이 되어 현재도 살아있다.

때수건은 저렴한 가격과 친근한 이미지로 판촉물이나 홍보에 두루 쓰인다. 때수건 하면 초록색 바탕에 검은 가로줄 무늬가 익숙한데, 초기 때수건은 맨드라미처럼 붉다거나 빨간색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때수건의 상징이 녹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굳어졌다면 어땠을까? 2017년 12월15일 국민의당 당사 벽면에 커다란 때수건 그림이 내걸렸다. ‘국민의 마음이 개운할 때까지.’ 국민에게 호소하는 당의 메시지다. 당의 상징색인 녹색 넥타이를 맨 당시 안철수 대표는 녹색 때수건 그림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때수건의 상징색이 달랐다면, 다른 당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

목욕탕 세움간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편 유방건강에 대한 의식 향상을 위한 캠페인인 ‘핑크리본’이 때수건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유방암학회와 한국목욕관리사연합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2014년 ‘핑크 스크럽’(Pink Scrub·핑크 때밀이) 캠페인에서다. 대중목욕탕에서 세신 서비스를 받던 여성이 유방의 이상을 발견한 목욕관리사의 조언을 듣고 병원을 찾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해서 유방암 조기 검진 홍보 활동을 벌였던 것. 핑크리본 끝에 검은 가로 선을 넣어 분홍색 때수건을 표현한 이미지는 캠페인 포스터로 썩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많은 이들이 매일 샤워를 한다. 때를 ‘밀지’ 않아도 충분히 청결하다. 표면이 거친 직물로 온 힘을 다해 피부를 마찰하는 시절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때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미는 만큼 밀리는 때를 보는 보람에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때를 보는 효율로의 변화. 그 중심에 ‘때푸치노’라는 표현이 있다. 곱게 분쇄된 때가 카푸치노 우유 거품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때 비누’는 때푸치노 제조에 탁월하다. 대한민국 제1호 세탁비누 제조사로 잘 알려진 기업 무궁화는 2010년 ‘샤워 때 비누’를 출시했다. 2019년 11월 누적판매 2000만개를 돌파한 히트 상품이다. 보디클렌저로 씻을 때 남는 미끈거림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뽀득하고 개운한 때 비누를 찾는다. 여기에 더해 피부가 상하지 않게 각질을 관리하는 시중의 때수건 상품 중 3종을 골라 직접 사용해 보았다.

왼쪽부터 정준산업 ‘요술 때밀이 장갑’, 범양산업 ‘오션타월 매직 글러브’, 송월타월 ‘쓸쓸한 토끼 빙글빙글 에어샤워’.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정준산업 ‘요술 때밀이 장갑’은 때푸치노 생산의 절대강자다. 제품명보다 때수건계의 명품 ‘때르메스’(때+에르메스)라는 별칭이 더 유명하다. 러시아산 자작나무를 원료로 얇은 실을 만들고 다시 여러 번 꼬아 만든 까칠한 실이 때를 분쇄한다. ‘목장갑형’과 ‘손모아장갑’ 형태 중 목장갑을 골랐다. 비누칠을 하고 슬슬 문지르는데도 촉감이 개운하다. 손가락이 자유로우니 귓바퀴나 복숭아뼈 등 평소 소홀하기 쉬운 부위를 꼼꼼하게 씻기 좋다. 장갑을 물에 헹구면 섬유 올이 품고 있던 뽀얀 때가 올라온다. 소매점 판매는 하지 않고 오로지 온라인 구매만 가능하다.

범양산업 ‘오션타올’은 이보다 앞서 고급 때수건 시장을 열었다. 한때 홈쇼핑 생방송에서 수많은 쇼호스트의 때와 화장을 지웠던 제품이다. 오글오글한 고리 형태 조직이 때를 제거한다. 꼼꼼한 마감도 만족스럽다. 국내 타월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송월타월의 때수건 중에서는 ‘쓸쓸한 토끼 빙글빙글 에어샤워’를 골랐다. ‘때수건이 왜 쓸쓸해!’ 하고 알아보니, 쓸쓸한 토끼는 도안 디자인명이다. 납작한 때수건에 공기주입 빨대가 있어서 한번 불면 구멍을 막지 않아도 공기가 새지 않는다. 빵빵하게 부푼 타월이 손의 압력을 고르게 분산해서 피부에 닿는 자극이 적다. 젖은 타월을 말릴 고리가 달리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귀여움은 최고다. 때수건 3종으로 씻고 나니 수챗구멍에 소복하니 하얀 가루가 쌓였다. 다시 한 번 눈을 떠올렸다. 함박눈이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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