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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5 20:27 수정 : 2019.09.25 20:33

지난 20일 저녁 9시 서울 노원구 시립노원청소년센터에서 재난 구호소 체험 참가자들이 재난 대응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커버스토리┃재난 대응법

지난 20~21일 재해 구호소 캠프 체험 열려
28가족, 92명 참가해 다양한 생존 기술 체득
심폐소생술·유독가스 대처법·지진 체험 등
‘재난 대응 심리’ 체험은 마음의 구급상자

지난 20일 저녁 9시 서울 노원구 시립노원청소년센터에서 재난 구호소 체험 참가자들이 재난 대응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북쪽지역 6.0 진도의 지진 발생… 19:20까지 2차 대피장소인 시립노원청소년센터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노원구에 사는 몇몇 시민에게 전달된 문자 메시지다. ‘언제 그렇게 큰 규모의 지진이 있었나?’ 깜짝 놀랐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가상의 상황이다. 지난 20~21일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노원구 등이 마련한 ‘재해 구호소 캠프 체험’은 가상의 지진 발생 상황을 알리고, 대피소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체험 현장을 ESC가 따라가 봤다.

지난 20일 저녁 8시 서울 노원구 노원청소년수련관에는 배낭을 멘 사람들이 여럿 모여들었다. 이들은 재해 구호소 캠프 체험을 신청한 사람들이다. 가상의 재난을 체험하고, 재난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모두 28가족, 92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상의 상황인 만큼,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재미있는 놀이터에 놀러 나온 듯 웃음기가 넘쳤다. 그러나 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그 웃음기는 사라지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성인 참가자 몇몇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참가자들은 저녁 8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재난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3개의 교실이 마련됐다. 야외에는 심폐소생술 교실이 열렸고, 실내에는 지진 체험과 생존 배낭 만들기 교실, 화재 체험 및 방독면·소화기 사용 교실이 열렸다.

먼저 둘러본 심폐소생술 야외 교실은 열띤 참여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중요한 건 그저 말로만 이뤄지는 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적십자사가 보유한 안전체험 교육용 차량을 활용한다. 강사는 “먼저 의식을 잃은 사람을 크게 부릅니다. ‘여보세요! 괜찮나요! 눈 떠보세요!’라고 크게 소리치세요.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구조 요청을 할 것을 지시하고, 주변 공간을 확보한 다음에 환자 옆에 무릎을 구부린 채 선 뒤 가슴 가운데를 압박하는 거예요. 이때 손을 쫙 펴서 겹치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압박하는 겁니다!”라고 안내했다. 교육용 차량 앞에 있는 인형의 가슴을 압박하는 시범이 이어졌다. 그냥 인형이 아니다. 인형에는 센서가 달려있어, 심폐소생에 충분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지 측정이 가능하다. 1분 동안 충분하고 적절한 압박이 가해지면 교육 차 안 모니터에 ‘100%’라고 뜬다. 최소한 90% 이상이 되도록 인형의 가슴을 압박해야 한다.

참가자 6명씩 심폐소생술을 체험했다. 어린이들은 체중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강사의 지시대로 정확하게 압박하려 노력한다. 성인 참가자들은 온 힘을 다해 1분간 심폐소생술을 했다. 어린이 참가자들은 “또 하고 싶어요!”라고 외쳤다. 심폐소생술 강사는 “한 번 해보는 것으로 끝나면 안 돼요. 자주 해보는 게 제일 중요해요. 오늘 해본 걸 또 해볼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해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기도가 막혔을 때 쓸 수 있는 하임리히법(기도 폐쇄 응급처치법) 교육이 이어졌다. 단, 1시간 가량의 교육인데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2가지나 배울 수 있었다.

지난 20일 저녁 9시 서울 노원구 시립노원청소년센터에서 재난 구호소 체험 참가자들이 재난 대응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방독면을 처음 써봤어요. 또 마스크가 없으면 화재 때 수건에 물을 적셔서 코와 입을 막고 나가야 한다는 것도 오늘 알게 됐고요. 무엇보다 방독면을 쓰고,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서 화재 상황을 체험해 보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도 오늘 해봤으니까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두 자녀와 함께 캠프에 참여한 김현주(44)씨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2분가량의 체험이었는데도 화재 상황을 간접 체험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실제로 방독면을 쓰고 입장하는 화재 체험관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다. 여기에 유독가스를 대신한 짙은 가스까지 더해져 현실감이 100%에 가깝다.

지진 체험 교실에서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낙하물로부터의 부상을 막는 두꺼운 방석을 마련해 두고, 지진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 행동 요령에 관해 알려줬다. 기자가 초등학교 때 교육을 받았던 기억을 가까스로 떠올려 봐도 ‘책상 밑으로 들어가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한다’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아주 많다. 먼저, 지진 뒤 출입문에 뒤틀림이 생겨 열리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에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이 지진이 일어나면 문을 먼저 열어둬야 한다. 그리고 지진이 멈춘 뒤 건물 밖으로 나가기 전 전기와 가스를 차단해야 한다. 이런 지진 행동 요령을 어린이 참가자들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한다. 최근 안전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재난시 대피 요령을 교육하기 때문이란다. 어린이보다 성인 여성이 재난 대응과 안전 관련 지식 및 경험이 더 적은 편이다. 방재 에듀테인먼트 소셜 벤처인 라이프라인 김동훈 대표는 “대표적인 재난 취약 계층이 성인 여성이다. 남성은 군대에서나 민방위 훈련 등을 겪는 데 반해, 여성들은 그런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한다.

지난 20일 저녁 9시 서울 노원구 시립노원청소년센터에서 재난 구호소 체험 참가자들이 재난 대응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재난 체험과 생존 기술 익히기를 마치고 난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역력하다. 금요일 밤 11시가 가까워진 탓도 있겠지만, 가상의 상황일지라도 재난을 체험하며 받는 스트레스의 영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체험 중에 ‘재난 대응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기쁨나눔재단의 신정식 인도적심리사회지원단 단장은 “재난을 겪고 사회적 지지를 못 받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불안 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늘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의 경험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어떻게 돌보는지가 중요하다. 일반인들이 재난 속에서 심리적 스트레스에 적정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아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심리적 응급처치’다. 자신의 상태를 ‘보고’, 자신의 내면이 필요로하는 심리적 지지와 지원을 ‘듣고’, 필요한 지지를 ‘연결’하는 게 심리적 응급처치다. 참가자들이 당황하는 부분은 스스로 ‘필요한 지지’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편안한 마음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신 단장은 “마음의 구급상자를 평소 잘 마련해 두어야 한다. 소염진통제를 평소 구비해 놓듯이 내 마음을 편안하고 평화롭게 하는 걸 평소 잘 살피고 마련해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리적 응급처치와 마음의 구급상자는 꼭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활용해볼 만하다.

자정을 앞두고서야 체육관 안에 재난 구호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재난 상황에 이재민들이 쓰는 구호 텐트를 가져와 설치하고, 이용해 봤다. 다소 좁은 텐트이지만, 가상의 재난 상황 속 참가자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잠들기 시작했다. 구호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조은빈(42)씨는 “텐트에 지붕이 없어 의아했는데, 텐트 위가 막혀있으면 폐쇄된 공간 속에서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어 뚫려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수긍이 되는 설명이었다. 또 구호소에서 일어나 정리를 하면서도 모두가 힘을 모아 주변을 정돈하고 보니 참가자들끼리도 어려운 시기를 잠시나마 함께 보내며 동질감, 연대감이 생기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21일 아침 9시에는 방재 운동회가 열렸다. 다양한 재난 속 생존 기술을 활용해 만든 게임으로 구성한 운동회다. 재난 속에서 고립됐을 때 내 위치를 알리는 방법, 화재 때 벽을 짚으며 길을 찾아 탈출하는 방법, 지진 때 행동 요령의 순서 등을 몸을 이용한 게임으로 익히는 시간이다. 이 방재운동회는 방재 및 응급용품을 만드는 넥스트세이프가 진행했다. 넥스트세이프 쪽은 방재 운동회와 같은 재난 대비 교육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재난 구호소 캠프는 올해 서울에서 3번 열렸다. 의무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교육 효과가 높은 편이어서 내년에는 서울의 7개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김원민 서울시자원봉사센터 팀장은 “안전 의식 테스트를 해보면, 재난 체험 전에는 40~50점(100점 만점)에 머무르던 안전 의식이 체험 뒤 80~90점으로 높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반응이 좋아 재난 구호소 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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