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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4 19:58 수정 : 2019.09.05 09:26

‘쓰맘쓰맘’ 회원들. 사진 왼쪽부터 김현진·김현숙·김민영·박재경씨.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커버스토리┃쓰레기

포항 맘카페 쓰맘 회원들
‘제로 웨이스트’ 실천하자 즐거움 찾아와
업사이클링 클래스· ‘비치 클린업’ 활동 등
보관 용기 들고 장도 봐
“쓰레기 줄이는 삶에서 만족감 커”

‘쓰맘쓰맘’ 회원들. 사진 왼쪽부터 김현진·김현숙·김민영·박재경씨.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지난달 29일. 바늘과 실을 챙겨서 기차를 탔다. 한가위를 앞두고 선물 포장용 보자기에 수를 놓기로 한 포항시 거주 엄마들의 일일 프랑스 자수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모이는 이유는 ‘자수’에 있지 않다. 자수는 핑곗거리다. 그들은 쓰레기 이야기를 하러 모였다. 명절 선물세트에서 발생하는 포장지 쓰레기 대신 정성스럽게 수를 놓은 보자기의 유용함을 공유하자는 게 모인 이유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삶.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을 실천하는 개인과 단체가 여럿이다. 그중 쓰레기에 맘 뺏긴 쓰레기 구출 맘. 줄여서 ‘쓰맘쓰맘’(이하 쓰맘) 회원들이 있다. 그들을 만났다.

포항지역 맘카페 ‘포항 맘 놀이터’에서 인연이 닿아 올해 3월15일에 뭉친 쓰맘 회원들은 지난 다섯달을 무척 바쁘게 보냈다.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졸업한 후 버리는 가방들을 모아 캄보디아 등에 학용품과 함께 보내는 캠페인 ‘반갑다 친구야’를 진행했다. 세제 소분 가게와 친환경 생활용품 장터, 장난감 수리공이 오는 ‘쓰맘쓰맘 장터’와 업사이클링 클래스를 열어 이웃을 만났다. 또 칠포해수욕장과 신항만 쓰레기 줍기, 환경 다큐멘터리 감상과 독서토론회 등 거의 매주 만나 일을 벌였다.

“매주 목요일에 무조건 모이자고 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영유아 엄마들이라 아이가 아프면 외출이 어렵다. 2주나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지면, 그분은 다음 만남까지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상황이 되는 사람들이 목요일마다 모인다. 현재 회원이 열명이다. 직장맘도 두명이 있다. 매주 절반 정도가 참석한다.” 쓰맘 모임을 제안하고 구심점이 된 회장 김현숙(38)씨의 말이다.

자수 수업을 마치고 쓰맘 회원들과 마주 앉았다. 김현숙(35)·김현진(35)·김민영(37)· 박재경(38)· 김민희(34)씨 등 총 다섯명이다. 30대 비슷한 또래지만 각자 개성은 뚜렷하다. 현진씨는 손재주가 좋은 ‘금손’이고, 재경씨는 아이디어가 넘친다. 민영씨와 민희씨는 말수는 적지만, ‘제로 웨이스트’ 고수다. 회장 현숙씨는 추진력이 남다르다. 처음 친환경 장터를 열 때도, 모르던 이에게 대뜸 전화해 도움과 자문을 구했다.

‘쓰맘쓰맘’ 회원들이 칠포해수욕장에서 벌인 ‘비치 클린업’ 활동.
“다들 일을 했던 경험과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을 팍팍 밀어주고 있다. 쓰레기와 접목을 시켜서.” 재경씨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이들은 모든 활동을 쓰레기와 접목한다. 그 와중에 재미는 쓰맘 활동을 키우는 자양분이다. 이날 자수 수업을 진행한 현진씨는 수를 놓을 때 천을 고정하는 수틀 제작에도 ‘재미’를 담았다.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컵의 뚜껑과 몸체를 오려 재활용 수틀을 만든 것이다. 현진씨는 “궁리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다 재미다”라고 말한다.

“칠포해수욕장 쓰레기를 줍는 ‘비치 클린업’ 활동을 한 후 우리는 종량제 쓰레기봉투 뒷면에 포항 사투리로 메시지를 적었다. ‘쓰레기 버리지 마!’ ‘너거 집(너희 집)에 고 홈’이라고 말이다. 다 같이 쓰레기봉투를 채우고 ‘너거 집’에 가져가라고 쓰는 게 너무 재밌다. 이 재미가 퍼지길 바라는 것이다.” 재경씨의 얘기를 현진씨가 보충했다. “재경씨 동생이 그 일을 두고 ‘좋은 일 한다’했는데, 그 말은 ‘칭찬은 해줄 게 대신 난 안 할 거야’ 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의미일 때가 많다. ‘므찌데이(멋지네) 잘했네’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비슷한 거다.” 이들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재미’라는 것이다.

기저귀 천과 자투리 천을 모아 바느질한 쓰맘쓰맘 현수막.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이날 모인 회원들은 2~6살 아이들을 키운다. 민영씨와 재경씨는 아이를 업고 나왔다.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염려하는 엄마들이 모인 맘카페 회원들은 환경문제에 더 민감하지 않을까? 그들에게 물었다. “신생아를 눕히는 용도의 제품 ‘바운서’는 잠깐 쓰니까 서로 주고받는다. 쓰레기가 되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게 되는 일종의 ‘핫 아이템’ 같은 것들은 다르다. 밤마다 아이를 재워놓고 나면 ‘핫딜(특정 시간에 대폭 할인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의 노예’가 된다는 말이 있다. 싼 물티슈, 좋은 기저귀를 찾아서 검색하고 밤마다 쇼핑을 계속한다. 싼 가격에 혹해서 더 사면 쓰레기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육아하고 쇼핑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일과가 이어진다. 이런 반복적인 일에서 벗어난, 나 스스로 선택한 라이프 스타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요즘 자주 얘기한다.” ‘핫딜’이 쓰레기 생산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현숙씨의 이야기를 듣고 ‘핫딜의 노예’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2014년 해외직구 열풍이 불던 무렵부터 시작된 표현이 현재 맘카페에 널리 퍼졌다.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사려고 핫딜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매한 후 후회하는 글도 다수였다. 그런데 핫딜 품목이 육아에 꼭 필요한 기저귀나 물티슈라면, 대체 이 쇼핑을 어떻게 그만둔단 말인가?

엄마들은 유해물질이 없다는 일회용 물티슈를 고르고 골라서 산다. 물티슈에서 미세플라스틱과 방부제가 검출되었다는 뉴스에 더 안전한 물티슈를 찾는 검색은 이어진다. 하지만 쓰맘 회원들은 일회용 물티슈의 대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재경씨가 가방에서 물티슈 포장을 꺼냈다. 뚜껑을 여니, 차곡차곡 접힌 마른 손수건이 나온다. 수건을 뽑아서 필요할 때 식수를 적셔서 쓴다. 물티슈 포장의 편리함과 손수건을 결합했다. 민영씨가 이렇게 쓰는 모양을 보고 재경씨도 배웠다고 했다. “쓰고 버리는 것보단 번거롭지만, 물티슈 근심과 환경오염에 대한 죄책감은 없어서 좋다.” 재경씨 말이다.

‘쓰맘쓰맘’ 회원들이 만든 한가위 선물 포장용 보자기.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귀찮지 않을까? 꼭 귀찮은 것만은 아니다. “김 가게에 가면 김을 잘라서 비닐에 넣어준다. 비닐 대신 가져간 김 통을 내밀면 좋다. 집에 와서 옮겨 담는 번거로움이 없다. 김치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칫국물이 흥건한 비닐봉지에서 김치를 옮긴 후 봉지를 쭉 짜고 뒤집어서 헹구는 과정이 필요 없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엄마들은 나도 통 들고 다녀야지 한다.” 현숙씨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대신 반찬 통으로 가사노동의 수고를 줄인 경험을 말했다. 재경씨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 제수로 문어를 사러 죽도시장에 다녀왔다. 그동안 단골이 되려고 자주 가서 얼굴도장을 찍을 때는 주인이 기억을 못 했는데, 문어 담아갈 박스를 들고 가니까 ‘오늘 또 가지고 왔네’ 하면서 바로 알아보시더라.”

최근 쓰맘 회원들의 새로운 궁리는 포항의 ‘안 뻘줌 가게’를 찾는 것이다. 지역 사투리로 (가지고 간 그릇을 내밀어도) 어색하고 민망하지 않은 가게란 뜻이다. 비닐과 포장 용기 사용이 많은 전통시장에서 ‘플라스틱 프리’ 활동을 전파하는 서울의 ‘알맹@망원시장’과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와 집에서 가까운 가게를 자주 이용한다. 정육점, 빵집, 채소가게 과일가게 등 내 주거지 근방에서 보관 용기를 가져가도 상품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자는 취지다. ‘OO정육점은 통 들고 가면 환영해줘요’라는 글을 올려 소개하고 홍보하는 활동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에서 얻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전하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줄이자는 인식이 퍼진다는 게 쓰맘 회원들의 생각이다.

재경씨가 천연 수세미 사용기를 덧붙였다. “설거지하던 남편이 이런 거는 어디서 가져오냐고 하더라. 제육볶음 접시가 싹 닦이고 수세미에 기름이 안 끼니까 너무 좋은 거지.” 여태 들어왔던 천연 수세미에 대한 어떤 권유보다 솔깃했다.

포항(경북)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폐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오리 로봇. 정혜정 작품 <한강 파라다이스> (2019) 사진 상상마당 제공

[ESC] ‘플라스틱 러브’에 숨은 비밀

가볍고 단단하며 변형이 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한 플라스틱은 20세기 문명의 상징이다. 한때 ‘신의 축복’이라 불렸다. 편리함과 경제적 가치 아래 대량생산되고 소비된 플라스틱은 현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로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토요일. 플라스틱 오염을 주제로 전시가 열리는 서울 마포구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명 ‘플라스틱 러브’(PLASTIC LOVE)는 ‘절대 사라지지 않기에 완벽한 창조물’인 플라스틱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수식어로 삼는다.

오랜 시간 방치된 서울 외곽의 복합상가 단지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간판을 수집하고 재조합해 메시지를 던지는 유화수 작가를 비롯해 한강 생태계와 플라스틱의 연결 관계를 탐구하는 정혜정 작가, 어릴 적 동네 쓰레기장에 살던 개와 얽힌 기억의 단편을 사진을 매개로 다시 불러내 재구성한 권도연 작가, 책상 크기의 작은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설치한 프래그랩까지 네 팀이 참여했다. 전시 기간 중, 워크숍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프래그랩’의 ‘데스크 팩토리’를 통해 플라스틱이 재활용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워크숍 준비물로 가져간 페트병 뚜껑이 부서지고 녹고 다시 굳어서 한입 크기 하트 초콜릿을 닮은 플라스틱 보석으로 재탄생했다. 전시는 9월22일까지. 9월30일부터 10월20일까지는 춘천 상상마당 아트갤러리.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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