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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5 09:30 수정 : 2019.07.25 20:17

브이아르(VR) 스퀘어 홍대점에서 방탈출 공포 게임 ‘더 도어’를 하고 있는 이용자들. 사진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커버스토리/공포 체험

공포물 넘쳐나는 여름, 간편한 공포 체험 없을까
고글 쓰고 손가락 움직여 10분 만에 귀신들 만나
2인용 가상현실(VR) 방 탈출 공포 게임 해보니
본능적인 괴성과 알 수 없는 헛웃음, 뜻밖의 희열

브이아르(VR) 스퀘어 홍대점에서 방탈출 공포 게임 ‘더 도어’를 하고 있는 이용자들. 사진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여름마다 오싹한 공포물들이 넘쳐난다. 공포물을 경험하는 데는 대개 시간이 걸리거나 발품이 든다. 2시간 정도 심장이 아플 지경까지 버텨야 하는 공포영화는 때론 지루함을 참아야 한다. 놀이공원(테마파크) ‘귀신의 집’은 날 잡고 가야 한다. 귀신을 보러 ‘폐가’를 찾아다니려면 시간, 발품에 영혼까지 바쳐야 한다. 조금 더 간편하게 귀신을 만날 수는 없을까. 시원하고 쾌적한 실내에서 검지만 움직여도 귀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상현실(VR) 방 탈출 공포 게임이다. 가상의 존재(귀신)를 가상으로 만나고 왔다. 30도 넘는 더위가 사라졌다.

*방 탈출 게임 불문율은 스포일러 금지.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피 묻은 손으로 벽을 긁은 흔적이 보였다. 가로·세로 4m, 어둡지만 시원한 방이었다. 고글을 쓰고, 휴대전화보다 긴 무선 컨트롤러 두 개를 양손으로 잡았다. 지난 18일 오후 4시, 가상현실 방 탈출 공포 게임을 하려고 서울 홍익대학교 근처 ‘브이아르(VR·가상현실)스퀘어 홍대점’에 방문했다. 이곳은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업체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3월 문을 연 가상현실 놀이공원이다. 전체 콘텐츠 26종 가운데 공포물은 3종. 직원들이 가장 무섭다고 한 공포물 ‘더 도어’ 중에서도 공포 점수가 가장 높은 에피소드 ‘인형의 방’을 골랐다.

고글 안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2인용 브이아르 게임이기에 내게 허락된 공간은 가로·세로 2x4m. 양손에 든 컨트롤러는 뼈대만 남은 손으로 변해 있었다. 철창 넘어 같은 크기 방이 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해골과 두 손만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함께 게임에 나선 친구 만기(36·가명)였다. 사전에 만기는 “공포영화 좋아한다. 원래 무서워야 보는 맛이 있는 법”이라며 공포 체험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형의 방’은 가상 인물인 소녀 ‘에이미’와 함께 방을 탈출하는 게임이다. 방에는 인형들이 많다고 했다. “컨트롤러를 들고 검지로 트리거를 당기면 물건을 집을 수 있습니다. 벽을 자세히 보면 사각 구멍이 있는데 참가한 두 사람은 그곳을 통해서만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에이미한테 사탕을 주면 힌트를 얻을 수 있고 힌트로 문제를 풀어서 세 개의 열쇠를 꺼내야 합니다.”

가상현실(VR) 방 탈출 공포 게임 ‘더 도어’의 ‘인형의 방’ 에피소드 영상. 커튼 사이에 있는 아이가 에이미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직원 설명이 끝나자 에이미가 나타나 어두운 방 안으로 이끌었다. 6~8살 정도 돼 보이는 말끔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였다. 불을 켜자 어두운 방 안이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인형들은 진열장 안에서 뚱하게 앉아 있었고 벽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액자들이, 한쪽에는 마네킹이 벽에 기대 있었다. 만기가 들어간 건넌방은 왠지 좀 더 넓어 보였다. 열쇠 세 개를 넣어 둔 진열장, 목각 인형, 축 처진 채 앉아 있는 사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구석 공간까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넌방은 더 무섭고 더 찾아야 할 게 많은 방이라고 했다. 제한시간은 10분, 시간이 없었다.

“이 게임은 적극성이 중요해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요.” 앞서 들은 직원 설명을 떠올리며 이곳저곳을 건드렸다. 인형이나 마네킹은 건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 살짝 눌러도 좀비로 변할 거 같았다.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열쇠를 찾아야 한다.

여기저기 잡아 보다가 반짝이는 물체를 찾았다. 그걸로 입체 퍼즐을 맞추자 커튼 뒤에 숨어있던 ‘에이미’가 사탕을 달라고 말했다. ‘사탕을 주면 힌트를 주겠다’는 뜻이다. “만기야 사탕. 사탕.” 직원이 말한 작은 구멍을 향해 외쳤다. 만기 방으로 넘어갈 수는 없지만, 만기에게서 아이템을 받을 수는 있다.

만기 방에 있는 사탕을 받아 에이미에게 건네자 힌트를 줬다. 숫자 계산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는 힌트였다. 첫 번째 열쇠는 큰 어려움 없이 꺼냈다. 안심이 됐다. 아니, 심지어 ‘별거 아니네’라는 자만심마저 들었다. ‘최단시간 돌파하고 말겠어.’

이어 만기가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야 했다. 난 다급하게 재촉했다. “만기야 빨리 거기 가구들 문 다 열어. 다 열어 다.” 만기는 엄살을 부렸다.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데?” 답답했다. 재깍재깍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당연히 튀어나오지. 시간 없어. 빨리빨리.” 만기가 우는소리를 했다. 우정이 금 가는 소리였다. “봐봐. 여기 튀어나오잖아. 매달려 있잖아. 무서워서 더 들어갈 수가 없어. 아이고 깜짝이야. 아이X 무서워.” 만기가 무섭다고 말하는 동안 제한시간 10분이 지나 버렸다. 분통이 터졌다. 평소 공포물을 즐긴다는 만기, 그는 억울해 보였다. “너도 내 방에서 해봐!” 우린 방을 바꿔 게임을 한 번 더 했다.

‘인형의 방’ 게임을 하고 있는 만기(가명). 김선식 기자
게임 초반은 순조로웠다. 만기가 경험한 방이다. “여기 진짜 무서운데?”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동공이 흔들렸다. 세포가 뾰쪽하게 솟았다. 갑자기 시뻘겋고 징그러운 뭔가가 달려들었다. “으아! 하지 마. 하지 마.” 방심한 사이 누군가의 신체 한 부위가 튀어 올랐다. “어어 야야.” 만기는 건넌방에서 웃고 있었다. “내가 아까 왜 놀랐는지 알겠지? 흐흐흐.” 하지만 만기가 될 순 없었다. 더듬더듬 열쇠를 찾아 나섰다. 그때 비명을 지르며 ‘그놈’이 달려들었다. 호러 영화 <새벽의 저주>, <컨저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놈’을 이겨낸다면, ‘처키’(<사탄의 인형>에 등장하는 가상인물)와도 “요!”하고 손바닥 부딪히며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차여차 종료 5초를 남기고 열쇠를 모두 찾았다. 에이미와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됐다. 게임이 끝난 뒤 자꾸 헛웃음이 났지만, ‘뭔가 한 것 같은’ 보람을 느꼈다. 브이아르 공포는 생생하다. 실체가 있는 다른 체험과는 또 다른 공포다. 주말엔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요즘 청년들은 불타는 듯한 매운맛만큼 으스스한 공포도 재미로 즐긴다. 10~20대가 주 고객층이라고 한다. 최근엔 대학로, 신촌 등 대학가 중심으로 브이아르 체험관이 늘고 있다.

밀도 높은 20분이었다. 열쇠를 찾기 위해 집중했고, 귀신 보고 깜짝 놀랐고, 모처럼 괴성을 질렀다. 끝나고 생각해 보니 어이없었다. ‘이게 뭐라고···.’ 진짜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도 아니고, 정교하게 구성된 놀이공원 ‘귀신의 집’이나 오프라인 방 탈출 공포 게임도 아닌데 말이다.

어차피 귀신을 직접 봤다는 사람들도 그게 가상인지 실체인지 모를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시원한 공포 끝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인형의 방’ 에피소드 영상.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당신은 극탱인가 극극극쫄인가

오프라인 방 탈출 공포 게임 입문

가상현실 방 탈출 게임이 인기를 끌기 전엔 오프라인 방 탈출 게임이 있었다. 2015년 국내에 처음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전국 수백개 지점이 영업 중이다. 마니아층이 두텁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이용자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도 많다. 특히 ‘공포 게임’들이 그렇다. 포털 네이버 방 탈출게임 카페들에선 이런 종류의 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입문에 앞서 용어 섭렵은 필수다.

‘이 공테는 반드시 탱커를 데리고 가세요. 안 그러면 바주카 구간에서 쫄들은 완전 죽음입니다. 그건 삑딱쾅 수준이 아니라고요.’ ’공테’는 ’공포 테마’의 줄임말이다. 공포 분위기를 견디는 정도에 따라 이용자들을 구분하기도 한다. 크게 ‘탱’과 ‘쫄’로 나눈다. 탱은 ‘탱커’의 줄임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괴물(몬스터)이 공격할 때 구성원들을 보호하며 공격을 받아내는 역할인 ‘탱커’(게임용어. 탱크처럼 적에 맞서는 플레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들은 무서운 공간에 들어가거나, 공포 장치를 건드릴 때 일행 가운데 탱을 앞세운다. ‘쫄’은 ‘쫄보’나 ‘쫄래미’(어원은 불분명하다)를 뜻한다. 공포 분위기를 잘 견디지 못하는 이용자를 일컫는다. 방 탈출 게임에선 쫄도 탱이 필요하지만, 탱도 쫄이 필요하다. 탱은 쫄들이 기겁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고, 쫄들이 비명이라도 질러야 그나마 공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쫄’ 중에서도 ‘변쫄’은 ‘변태 쫄보’의 준말로, 공포감을 잘 견디지 못하면서도 이상하게 공포를 즐기는 이용자들을 뜻한다. ‘바주카’ 구간은 쫄들이 게임 중 극도로 무서워하는 공간이다. 탱크를 공격할 때 쓰였던 ‘바주카포’에서 온 말로 보인다. ‘삑딱쾅’은 게임 중 서랍이나 문 또는 다른 장치에서 갑작스럽게 나는 큰 소리를 뜻한다. ‘삑’, ‘딱’, ‘쾅’ 소리가 연이어 난다고 해서 붙은 말로 보인다.

공포의 종류를 나누기도 한다. ‘분위기 공포’는 조도, 음악,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연출한 분위기만으로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공포다. ‘창조 공포’는 정작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이용자 스스로 상상하면서 느끼는 공포를 말한다.

이용자들은 방 탈출 게임 만족도를 흙길, 풀길, 꽃길 등으로 표현한다. 꽃길로 갈수록 만족한단 뜻이다. 스토리, 인테리어, 장치(오류 유무), 직원 친절도, 공포도(공테의 경우)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네이버 ‘오프라인 방 탈출’ 카페에서 지난해 7월 ‘가장 즐거웠던 공포 방’을 설문 조사한 결과, 업체 솔버(건대1호점)의 게임 ‘루시드 드림’, 코드케이(강남)의 ‘거울의 방’, 더도어즈(일산)의 ‘향수’가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응답자 143명) 오프라인 방 탈출 게임을 950차례 가량 해봤다는 한 이용자(26살·학생)는 “공포테마의 매력은 무섭기 때문에 몰입을 잘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다른 테마들에 비해 인테리어, 소품, 장치 등을 이용한 다양한 연출에 더 힘을 쏟는 편이어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설명했다.

*참고 누리집

.네이버 카페 ‘방탈출에 대한 모든 것’(cafe.naver.com/everyescaperoom)
.‘오프라인 방탈출’(cafe.naver.com/escaperoomcafe).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공포 두렵고 무서움. 원시적인 공포에 덜 노출되는 현대인들은 ‘공포 체험’을 만들어냈다. 국내에선 여름에 공포 체험이 유행하는 전통이 있다. 오싹한 공포가 더위를 식혀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공포를 체험하는 시설들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놀이공원 공포 체험시설은 공포를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도 극단적인 공포심을 일깨우며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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