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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4 20:07 수정 : 2019.07.24 20:19

게티이미지뱅크

커버스토리/공포 체험

‘범생이’ 여동생 독립 선언
오피스텔서 혼자 살게 됐는데
밤마다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
찾아간 동생집의 새벽 어스름
삐삐삐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게티이미지뱅크
공포는 귀신이나 좀비를 맞닥뜨려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포 체험 놀이가 호황이지만, 깊은 밤 으스스한 얘기를 읽어도 소름 오싹 돋는 공포가 몰려온다. 그래서 ESC가 준비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꼭 자정에 읽으시라.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가 개인 경험을 살려 섬뜩한 꽁트를 보내왔다.

최근 내 여동생이 겪은 곤란한 일에 관하여 이야기해 볼까 한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K라고 부르겠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로 소설이나 읽으며 부모님의 속을 썩였던 나와 달리 K는 우리 집안의 자랑이었다.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도 많았다. 대인관계가 넓은 인간은 대체로 어딘가 가벼운 구석이 있게 마련인데 K는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만큼 매사에 진지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남달랐다. K의 이타심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의 먹이는 전부 K가 챙겨줬다. 다친 고양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며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정성을 이 오빠에게도 기울여 보렴”이라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내심 저런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걱정이라면 “K한테 첫눈에 반했다”며 집 앞까지 졸졸 쫓아오는 남자애들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정도일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K는 연애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넓은 의미의 남자친구는 항상 있었지만, 애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이가 되면 단호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듯했다. 십대 무렵만 해도 그것은 부모님 입장에서 건전하고도 바람직한 전개였으나 조금씩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일종의 우환 비슷한 분위기로 변모해 갔다. 조금 과장해서 엄마가 한 트럭 분의 의사와 변호사 및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 번만 만나보라”고 애원해도 딱 잘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다양했다. 처음에는 “오빠가 결혼하면”이었고 그다음에는 “유학을 다녀와서”였다가 종래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폭탄선언으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버지의 생일 날 K는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 죄송하지만 저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냥 혼자 살게요”라고.

만약 내놓은 자식이었던 내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대충 몇 대 얻어맞고 넘어갔겠지만, K는 그동안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몇 날 며칠에 걸친 설왕설래 끝에 엄마는 여봐란듯이 앓아누웠고, 아버지는 “너, 그렇게 제멋대로 할 거면 나가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마라”라며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 버렸다. 가족 중에 평정심을 유지한 건 나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K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존중해 주는 일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께는 “요즘 대개들 결혼을 늦게 하니까 걱정하지 마시라”며 잘 말씀드려 두었다. 그건 내 처지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K는 여간 모질게 마음먹은 게 아닌 듯 보였다. 여느 때와 달리 강경한 자세로 부모님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일단은 혼자 살 집을 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건 내가 도와주었다. 며칠간 발품을 판 끝에 우리는 의정부에 있는 허름한 오피스텔로 이사할 집을 정했다. 내부는 새로 인테리어를 한 듯 깨끗했고 월세도 저렴했다. 복비도 시세보다 적게 받는다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때는 지방이라서 그런 건가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기에 뜻밖의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이사를 하고 얼마쯤 후의 일이다. 한번은 K가 나한테 “새벽마다 이웃집에서 여자의 기분 나쁜 교성이 들려 와서 죽겠다”며 하소연했다.

혹시 불법적인 안마 서비스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웃집에 혼자 사는 남자가 밤마다 여성 안마사를 부르는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며칠 뒤에 K는 더 희한한 얘기를 했다. 여자의 말소리가 어떤 날은 중국어인가 하면 어떤 날은 또 일본어 같아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무렵에는 나도 걱정이 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K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자정이 넘을 때까지 이렇다 할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집 안의 불은 일부러 꺼두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독서 등에 의지해 각자 가지고 있는 책을 읽었다. 새벽으로 향할수록 주위는 고요해져 갔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 졸았던 모양이다. 옆집에서 들리는 여자의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현관 도어록이, 이제 막 숫자를 익힌 아이가 천천히 입으로 발음하며 키보드를 누르는 것처럼 삑삑 하고 울렸다.

누군가 도어록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여자의 웃음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지나는 참이었다. 대관절 누가 이 시간에 남의 집 도어록을 누른단 말인가. K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말 그대로 핏기가 몽땅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내 가슴도 뛰다 못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후다닥 현관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현관문을 한 손으로 때리며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똑똑히 들었다. 밖에 있던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를. “어? 아니네.”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어? 아니네”라고. 그것은 짐작건대, 집 안에 있던 상대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그 말이 튀어나오기 무섭게 그놈은 복도 저쪽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아니,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곧장 뒤따라갔지만,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옆집 문을 두드렸다. 방금 도망친 남자가 혹시 이웃집에 사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방금 전 일어난 일은 충분히 공유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걸까. 방금 전에, 그러니까 도어록이 울리기 직전에 틀림없이 소리가 들렸는데. 그렇다면 방금 뛰쳐나간 놈이 이 집에 사는 게 분명하다고 나는 확신했다. 범행 현장을 들켰으니 자기 집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고, 당황한 나머지 밖으로 튀어나간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은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을 대동하고 건물 주인을 만난 자리에서 나와 K는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그 집에 살던 세입자가 나간 지는 꽤 됐습니다. 진즉에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혼자 사는 여자분이셨는데 무슨 안 좋은 일을 당했는지 그 집에서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우리는 집주인의 안내로 경찰과 함께 이웃집 문을 열어보았다. 과연 집 안은 휑하니 비어 있는 상태였다. 다만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고양이는 울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여자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지난 한 달간 만약 고양이가 울지 않았다면 그놈은 아마 K의 집에 침입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은 새벽마다 K의 현관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양이의 울음은 일종의 경보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놈이 K의 집에 접근할 때마다 고양이는 착실히 K에게 경고했던 게 아닐지.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고양이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창문 사이로 휙 하고 빠져나갔다. 여자의 웃음소리 같기도 울음소리 같기도 한 묘한 소리를 내면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공포 두렵고 무서움. 원시적인 공포에 덜 노출되는 현대인들은 ‘공포 체험’을 만들어냈다. 국내에선 여름에 공포 체험이 유행하는 전통이 있다. 오싹한 공포가 더위를 식혀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공포를 체험하는 시설들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놀이공원 공포 체험시설은 공포를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도 극단적인 공포심을 일깨우며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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