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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4 20:05 수정 : 2019.07.24 20:12

에버랜드 공포 체험 시설 ‘호러메이즈’ 전경. 에버랜드 제공

커버스토리/공포 체험

직전 체험자들 사색이 된 얼굴 보고 오싹
좀비도 관람객도 너도나도 괴성 지르고
드러눕거나 기어가거나 도망치거나
악명 높은 에버랜드 ‘호러메이즈’

에버랜드 공포 체험 시설 ‘호러메이즈’ 전경. 에버랜드 제공
에버랜드 공포 체험 시설 ‘호러 메이즈’에 가기로 한 건 인터넷 카페에서 후기들을 본 뒤였다. 한마디로 ‘정신이 나갈 만큼 무서웠다’는 내용이었다. 방 탈출 게임이 아닌데, 오프라인 방 탈출 카페 후기에서도 종종 언급됐다. ‘거의 무릎으로 기어서 빠져나왔다’거나, ‘일행의 옷을 잡아당겨 민소매 티셔츠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얼마나 무섭기에?’ 에버랜드 관계자는 “중도 포기자가 3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낮 12시 경기 용인 에버랜드 ‘호러메이즈’ 앞에 도착했다.

에버랜드 직원들은 낮 12시 전부터 줄을 섰다. 2019년 ‘호러메이즈’ 정식 개장을 하루 앞둔 이 날은 직원 체험 날이었다. 나는 친구 만기(36·가명)와 함께 직원 틈에서 줄을 섰다. 들어가기 전부터 공포감이 엄습했다. 방금 체험을 마치고 나온 직원들 때문이었다. 남성 직원 두 명이 어깨동무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다. 초점 잃은 두 눈은 허공을 향했고 입을 벌린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얼굴은 사색이 됐다. ‘아하··· 저 정도인가?’ 나도 덩달아 호흡이 가빠졌다. 앞서 가상현실 공포 체험과 오프라인 방 탈출 공포 게임을 해 본 만기도 오늘따라 유난히 눈을 자주 껌벅거렸다. 만기에게 재차 강조했다. “중도 포기는 절대 안 된다.”

지난 19일 에버랜드 ‘호러메이즈’를 체험하는 에버랜드 직원들. 이들이 밖으로 나온 모습을 본 직후에 만기(가명)와 호러메이즈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에버랜드 제공
‘호러메이즈’는 ‘공포의 미로’라는 뜻이다. 가상인물 ‘닥터 케이’가 잔혹한 인체 실험을 한 장소로 설정한 공포 체험 시설이다. 관람객들은 수술실, 고문실, 감옥 등으로 이어진 미로를 빠져나가야 한다. 호러메이즈는 2011년 가을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처음 문을 열었다. 놀이공원 이용료와 별도로 1인당 5천원 이용료를 받는데도 관람객 반응이 뜨거웠다. 2013년부턴 여름에도 개장하고 있다. 보통 줄 선 차례대로 조를 짜서 입장한다. 나, 만기, 에버랜드 직원 총 3명이 앞사람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들어갔다. 내가 제일 앞, 가운데가 만기였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들머리에서 작은 손전등 하나를 건네며 “바닥을 비추면서 가라”고 했다. 우리 셋은 희미한 주황색 불빛에 의지한 채 깜깜한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호러메이즈’ 내부 소품들. 사진 에버랜드 제공
미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어두웠고, 수술실 약 냄새가 진동했다. 만기는 들어가자마자 내 어깨를 세게 쥐고 온몸을 내 등에 밀착했다. 잘 걷지 못했다. “만기야 좀 걷자.” 그제야 엉금엉금 걷기 시작했다.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며 “웃으면서 즐길 거야”라고 호언장담한 만기는 어디 갔을까? 길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어두운 미로에서 가림막을 가까스로 찾아냈다. ‘진짜 들어가기 싫다. 찾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첫 가림막부터 시험에 들게 했다. 가림막을 힘겹게 들추니 누군가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청진기, 엑스레이 사진, 철창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손들을 봤던 것 같다. 전후 사정은 불분명하지만, 난 “으악!”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쇠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은 금속성 소리였다. 그 뒤로도 유독 그 금속성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형지물을 잘 파악할 수 없는 미로에선 좀비들이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괴성을 질렀다. 뒤에선 누군가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하고 소리쳤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은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때만 해도 그게 좀비가 내는 소리인 줄 몰랐다.) 갑자기 세차게 바람이 불어오고,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포대를 헤쳐 지날 땐 음산하고 오싹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호러메이즈’ 내부에 있는, 중도포기자들을 위한 안내판. 사진 에버랜드 제공
길목마다 중도 포기자들을 위한 안내 출구 표지판이 유혹했다. “잡지 마! 잡지 마!” 만기가 소리쳤다. “으아 읔” 그때 누군가가 내 몸도 툭 건드렸다. “와 이건 진짜 무섭다.” 만기는 애써 이성을 깨워 보려는 듯 때 이른 소감을 밝혔다. 또다시 어딘가에서 나무보단 질긴 재질의 무언가를 톱으로 써는 소리가 들렸다. 난 반칙인 줄은 알았지만, 손전등을 상하좌우로 비추기 시작했다. 잘 보이면 덜 무서울 줄 알았다. ‘헉!’ 대기 중이던 좀비를 비춰버렸다. 좀비도 눈빛이 조금 흔들린 것 같았다. 그가 달려들었다. “으아 아악!” 드디어 마지막 복도에 들어섰다. 멀리 출구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였다. 이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다.

‘호러메이즈’ 내부 소품. 사진 에버랜드 제공
미로를 다 빠져나와 한숨 돌리고 만기에게 물었다.

-언제 제일 무서웠어?

=머리카락 스칠 때 진짜 소름 돋았어.

-진짜? 머리카락이?

=이 사람아, 그렇게 상상력이 빈약해서 뭘 한다고 그래. 머리카락이 스치니까 머리가 어떻게 매달려 있나 상상이 돼서 무서운 거잖아.

-그렇구나. (그 와중에 별걸 다 상상했네.)

=물방울을 한 방울씩 얼굴에 떨어뜨리면 더 무서울 거 같아.

-그렇겠네. (체험 다 끝났다고 쉽게 말한다?)

다음은 호러메이즈 기획 책임자들과의 대화.

-올해 조금 달라진 점이 있나요?

=협소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중간에 통로를 하나 더 만들었어요. 한 번 튀어나온 좀비가 그 통로를 통해서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튀어나오죠. 분위기와 장치가 가장 많이 변한 공간은 마지막 복도에요. 시체 느낌 나는 더미들과 마네킹들을 새로 설치했죠. 더미도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테마파크 소품 전문제작사에 의뢰했죠.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공포감을 주는 장치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예를 들면 깜박이는 조명 같은 건 폐허 느낌의 시각적 효과를, 망치로 내려치는 소리 같은 건 청각적 효과를 주죠. 수술실 약 냄새는 후각적 효과고 머리카락이나 포대, 가벼운 스킨십, 냉동고의 낮은 온도 설정 같은 건 촉각적 효과를 노린 거죠.

-나름대로 (덜 무섭게) 수위 조절을 한 건가요?

=가급적 스킨십은 최소한도로 했고요, 조도(밝기)와 잔인해 보이는 소품도 선을 유지했죠. 딱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만큼 선을 그은 거예요. 혐오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고의 무서움을 찾는 거죠.

‘호러메이즈’ 내부 소품들. 사진 에버랜드 제공
마지막으로 좀비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밝은 곳엔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좀비들의 스승, 문경택 코치를 만났다. 좀비는 1회 체험에 십여 차례 등장한다. 연기를 전공한 이들을 고용한다.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짓궂은 손님도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좀비 연기 지도할 때 어디에 주안점은 두나요?

=첫째가 ‘빈틈을 노리라’는 거예요. 손님들이 ‘이쯤에 뭔가 나오겠지’라고 예상할만한 지점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도록 해요. 배우들에게 그 타이밍을 잡는 재량이 어느 정도 있거든요.

-놀라고 무서워하는 관람객들을 보는 좀비들의 기분은 어떤가요?

=연습한 대로 연기했을 때 손님들이 놀라고, 울고, 중도 포기하고, 나가면 배우들 입장에선 자신이 연기를 잘한 거죠. 보람을 느낀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어떤 희열을 느끼죠.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나요?

=가끔 여름에 슬리퍼 신고 오는 분들이 있는데, 급히 도망치다가 신발이 찢어지거나 넘어져서 팔꿈치가 까지는 경우가 있어요. 놀이공원 놀러 온다고 예쁘게 차려입고 온 여성 분 중에는 너무 무서워서 더러운 바닥에 그대로 드러눕는 이도 있죠. 옷을 다 버리기도 하고요. 그런 거 보면 미안하죠. 여자친구랑 같이 온 남성분들이 종종 여자친구를 버리고 혼자 도망쳐 뛰어나갈 때가 있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나 걱정스럽기도 하죠.

-좀비 배우들도 말 못할 고충이 많을 것 같은데요?

=하루에 욕은 수십 번씩 듣죠. 손님들도 자신도 모르게 무서울 때 튀어나오는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런 건 이해할 수 있죠. 가끔 좀비 배우들을 악의적으로 때리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경우엔 세트장 안에 배치된 직원들이 그 손님을 밖으로 내보내죠. 이런 일들 겪으면서 배우들 사이에선 자신을 ‘감정노동자’라고 칭하기도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좀비도 인간도 모두 공포스러운 하루였다.

용인(경기)/김선식 기자 kss@hani.co.kr

공포 : 두렵고 무서움. 원시적인 공포에 덜 노출되는 현대인들은 ‘공포 체험’을 만들어냈다. 국내에선 여름에 공포 체험이 유행하는 전통이 있다. 오싹한 공포가 더위를 식혀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공포를 체험하는 시설들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놀이공원 공포 체험시설은 공포를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도 극단적인 공포심을 일깨우며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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