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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5 20:03 수정 : 2019.06.05 20:15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카를 라거펠트 마지막 공방 패션쇼. 2002년부터 샤넬이 사들인 영세한 공방들 작품을 라거펠트가 의상에 녹여 구성한 컬렉션이다. 사진 샤넬 제공

라이프 레시피/스타일

지난 2월 숨진 샤넬·펜디 수석 디자이너
그가 디자인한 마지막 공방 컬렉션
지난달 서울에서 화려하게 열려
고대 이집트와 뉴욕을 접목한 분위기
카를 라거펠트 진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카를 라거펠트 마지막 공방 패션쇼. 2002년부터 샤넬이 사들인 영세한 공방들 작품을 라거펠트가 의상에 녹여 구성한 컬렉션이다. 사진 샤넬 제공
세계적인 패션 거장 카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프랑스 고급 패션 브랜드 샤넬 공방 컬렉션 ‘2018/19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이 지난달 28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에스(S)팩토리에서 열렸다. 지난해 12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처음 공개한 컬렉션을 서울에서 재현한 것이다. 지난 2월19일 카를 라거펠트가 숨진 후 한국에서 처음 열린 샤넬의 패션쇼이자 카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마지막 공방 컬렉션이다. 프랑스 공방 장인들의 손끝에서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이 천재 카를 라거펠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를 라거펠트, 그의 마지막 공방 이야기다.

샤넬 공방 컬렉션은 샤넬이 소유한 공방의 창조적인 미적 감각과 기술력, 장인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패션쇼다. 1년 동안 선보이는 10개의 샤넬 컬렉션 중 최상위인 오트 쿠튀르(맞춤 고급 의류)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카를 라거펠트의 마지막 공방 컬렉션이 된 ‘2018/19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은 이집트와 뉴욕에서 얻은 영감이 바탕이 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안의 덴두르 신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전 세계에 샤넬의 위상을 입증했던 쇼는 한국 팬들도 사로잡았다.

지난달 28일, 한적했던 대낮 서울 성수동 거리는 한순간 인산인해가 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무장한 이들이 에스(S)팩토리에 모였다. 잔뜩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내리쬐는 거리의 뜨거운 태양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를 라거펠트가 설계한 마지막 공방 컬렉션에 대한 기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런웨이 무대를 제외한 에스팩토리 안은 까만 벨벳 천 같은 색으로 검게 칠해져 있었다. 런웨이는 이집트의 사막을 옮겨놓은 듯 고운 모래가 깔려 반짝거렸다. 샤넬은 이번 한국 쇼를 위해 덴두르 신전을 연상시키는 금빛 아치형 유리 장식들을 한국에서 제작해 꾸몄다. 이 장식은 쇼를 보러 전 세계에서 모인 인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프렌치 패션의 대명사 캐롤라인 드 매그레, 대만의 유명 인사 아리엘 린과 재즈 뮤지션 ‘9엠(M)88’를 비롯해 한국 배우 정려원, 고아성, 고소영, 김성령, 다니엘 헤니 등이 이날 쇼를 지켜봤다. 런웨이 오프닝 주인공은 세계적인 톱 모델로 자리 잡은 한국 모델 신현지였다.

샤넬의 ‘2015/16 패션쇼’ 중에서 잠시 쉬고 있는 카를 라거펠트. 사진 샤넬 제공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샤넬의 상징 같은 트위드(방모직물의 하나)와 보석, 백과 슈즈에 녹여낸 스타일은 완벽에 가까웠다. 뉴욕의 마천루를 패턴화한 그라피티 프린트가 섬세하게 수 놓인 드레스, 이집트의 튜닉(허리 밑까지 내려와 띠를 두르는 여성 옷)에서 영감을 받은 곧은 형태의 실루엣, 1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수 공방 르사주 장인들의 수려한 솜씨에 관람객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환상적인 디테일로 채워진 무대는 심금을 울리는 판타지로 가득했다. 패션쇼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홀을 지배한 황금빛은 이집트 문화를 찬란하게 드러내는 장치였다. 고대 이집트의 풍요로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블랙, 베이지, 화이트 옷감 사이에는 반짝이는 금실이 들어가 있고, 모자와 신발 등에도 어김없이 황금빛 실이 붙어 있다. 곧고 가는 실루엣 드레스 위는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터쿼이즈(터키옥), 라피스 라줄리(청금석), 코랄(산호색) 등 화려한 색의 원석이 장식돼 있었다. 몸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니트 소재의 원피스에도 화려한 원석이나 비즈, 자수 등이 장식돼 있어 관능적인 느낌을 더했다. 샤넬 모자 공방 중 하나인 ‘메종 미셸’에서 제작한 각종 헤어피스(머리카락 액세서리)와 모자는 스타일을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완성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카를 라거펠트 마지막 공방 패션쇼. 2002년부터 샤넬이 사들인 영세한 공방들 작품을 라거펠트가 의상에 녹여 구성한 컬렉션이다. 사진 샤넬 제공
의상의 선은 분명하고 형태는 기하학적이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샤넬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와 샤넬 공방이 만들어 낸 패션들로 가득했던 쇼는 한 편의 드라마이자 예술 작품이었다. 카를 라거펠트가 수십년간 전쟁터 같은 치열한 패션계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상을 지킨 이유를 세상에 마지막으로 드러내는 고백의 장이었다.

이날 패션쇼를 관람한 채한석 스타일리스트는 “샤넬 공방의 미학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고대 문명(이집트)과 현대(뉴욕)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낼 수 있는 디자이너는 카를 라거펠트밖에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카를 라거펠트 마지막 공방 패션쇼. 2002년부터 샤넬이 사들인 영세한 공방들 작품을 라거펠트가 의상에 녹여 구성한 컬렉션이다. 사진 샤넬 제공
지난 2월19일, 카를 라거펠트는 지구에서의 찬란한 여행을 끝마쳤다.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 샤넬이란 거대한 패션 제국의 수장이자 샤넬 자체였던 인물, 카를 라거펠트. 새하얀 백발 포니테일(말총머리)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차려입은 턱시도 차림으로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런웨이 마지막을 늘 장식할 것 같았던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었기 때문에 비보는 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1982년 9월 카를 라거펠트가 샤넬에 영입될 당시 반발이 컸다. 유럽에서는 다소 패션 불모지로 취급받는 독일 태생이자, 오트 쿠튀르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1983년 초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샤넬의 첫 데뷔전을 치른 칼은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카를 라거펠트 마지막 공방 패션쇼. 2002년부터 샤넬이 사들인 영세한 공방들 작품을 라거펠트가 의상에 녹여 구성한 컬렉션이다. 사진 샤넬 제공
매년 샤넬에서만 10개의 컬렉션을 선보였던 카를 라거펠트는 모든 것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열정적인 디자이너였다. 물론 그의 오른팔이자 칼의 비밀 무기라 불리는 비르지니 비아르와 샤넬 패션 총괄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가 그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지만, 그는 모든 컬렉션을 혼자 스케치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카를 라거펠트가 위대한 디자이너로 인정받은 이유로 폭넓은 관심사와 엄청난 지적 욕구를 꼽는 이가 많다. 그는 세계 곳곳에 있는 자신의 집 7채에 25만권에 달하는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패션을 넘어 미술, 음악, 공예 등 예술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지적 호기심은 샤넬 컬렉션의 창조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변화가 2002년께 시작한 샤넬 공방 컬렉션이다.

샤넬은 2002년부터 크고 작은 공방을 인수했다. 2020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디 리치오티의 손을 거친 대규모 공방도 열 예정이다. 눈앞의 수익을 위해 공방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100년 뒤를 내다본 카를 라거펠트의 선택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소규모 공방은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공방의 장인은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제조 기술이 발달해도 대량 생산이 따라갈 수 없는 미학이 장인들에게 있다. 카를 라커펠트는 100년 뒤에도 샤넬과 패션의 도시로서의 파리가 건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방 투자에 나선 것이다.

카를 라거펠트가 샤넬의 ‘2017/18 오트 쿠튀르 쇼’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사진 샤넬 제공
지금 샤넬은 제3세대에 진입했다. 샤넬을 창조한 코코 샤넬의 1세대,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카를 라거펠트의 2세대가 막을 내리고 3세대로 들어선 것이다. 새 선장은 지난 30여년 동안 카를 라거펠트 곁에서 듬직한 지지자였던 비르지니 비아르다. 그의 항해가 어디로 향할지 세계 패션계는 주목하고 있다.

신경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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