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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1 19:58 수정 : 2019.05.01 20:51

‘고잉메리’ 안에 있는 분식점 메뉴.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커버스토리/분식

최근 프리미엄 분식점 등장
고급 레스토랑 유사한 인테리어
대표적인 곳, ‘고잉메리’
2007년 SNS 대박 라면 만든 이들이 주인공
식품회사와 협업해 만두 출시하기도

‘고잉메리’ 안에 있는 분식점 메뉴.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분식’과 관련한 추억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엄마가 집을 비웠을 때 끓여 먹던 라면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친구들과 나눠 먹던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까지. 우리 삶과 뗄 수 없는 솔푸드가 분식이다. 최근 분식의 지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급 레스토랑이 연상되는 프리미엄 분식점이 생기고 있다. 분식점에 흔한 낙서도 이런 곳의 벽에 없다. 대신 은은한 조명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손님을 맞는다.

직장인 한정윤(31)씨는 신개념 분식점 마니아다. 일주일에 최소 2~3회, 프리미엄 분식점을 찾아다닌다. “분식을 꼭 허름한 곳에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처럼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분식을 먹으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실내가 고급스러운데도 가격도 저렴한 게 장점이다.” 최근 한씨가 방문한 분식점은 지난 3월18일 서울 종로구에 문 연 ‘고잉메리’.

고잉메리는 독특한 공간이다. ‘감성편의점’을 표방하는 고잉메리 안엔 분식점이 있다. 편의점 내에 분식점을 배치한 ‘숍 인 숍’ 형태다. 165㎡(50평) 크기의 매장에 편의점과 분식점 공간이 5 대 5로 구성돼 있다. 온라인 유통 업체 대표 여인호(48), 패션 브랜드 ‘앤디 앤 뎁’을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49), ‘투뿔등심’ 등의 대표인 외식 사업가 박영식(39), 인테리어 전문가 남이본(48) , 전 미국대사관 직원이었던 박리안(36)씨 등 직업도, 하는 일도 다른 5명이 뭉쳐 만든 ‘옥토끼프로젝트’가 낸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다. 옥토끼프로젝트는 평소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알게 된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옥토끼프로젝트 여인호 대표는 “몇 년 전 요괴라면, 만두 등을 출시했는데, 그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분식점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분식 메뉴를 주문하는 카운터.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2017년 이들이 ‘겁 없이’ 출시한 ‘요괴라면’은 한 달 만에 7만개 이상 팔렸다고 한다. ‘봉골레 맛’, ‘국물떡볶이 맛’, ‘크림크림 맛’ 등 기존 라면 시장에 없던 맛과 원색 포장지에 그려진 뿔 달린 요괴 그림 등 세련된 제품 패키지가 20~30대 사로잡았다.

이들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홍보 전략. 각 분야 인플루언서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요괴라면’, ‘#옥토끼프로젝트’ 등의 해시태그 통합 누적 개수만도 6000여개에 달한다. “백화점과 편의점 등 일반적인 유통 채널인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오직 옥토끼프로젝트 채널을 통해서만 판매했다”고 여인호 대표는 말한다. “한국인의 식생활에 가장 밀접한 식품이 (분식의 한 종류인) 라면이라고 생각했다.”

신개념 분식점 고잉메리.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고잉메리는 옥토끼프로젝트만의 감성을 덧입혀 탄생한 편의점이다. 와인을 비롯한 각종 음료, 수입 과자와 여성용품까지 다양한 품목을 판다. 하지만 일반 편의점과 같은 듯 다르다. 편의점의 인기 상품인 삼각김밥, 컵라면 등은 안 보인다. ‘요괴라면 국물떡볶이맛’, ‘개념볶음밥 햄범벅크림크림맛’, ‘개념 샌드위치 가츠산도’ 등이 있다.

고잉메리 안 분식점의 메뉴도 특이하다. ‘고잉메리 X 부첼리 스테이크’, ‘요괴칵테일’, ‘요괴와인’ 등 고급 레스토랑을 방불케 하는 음식과 주류를 갖췄다. 특히 ‘고잉메리 X 부첼리 스테이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 ‘부첼리 하우스’에서 직접 양념한 스테이크가 재료다. 각종 와인을 잔으로 판매한다. 고급 펍에서나 볼 수 있는 ‘매실원주’, ‘더 핸드 앤 몰트 브루어리’의 ‘애플 사이더’ 등도 즐길 수 있다. 여인호 대표는 “융합과 통합의 시대에 분식점이라고 꼭 분식만 판매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여러 분야의 융합 플랫폼이나 통합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 고잉메리에서 판매하는 ‘개념 있는 만두’(개념만두)가 식품회사 오뚜기와 협업을 통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리안 부사장이 거든다. “기존 냉동만두 제품에 불만이 많았어요. 속 재료가 부실한데, 그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싸지도 않아 만족도가 떨어졌어요. 시중 판매하는 냉동만두보다 속 재료를 3배 넣은 ‘개념 있는 만두’를 만들게 된 이유죠. 만두 1알 무게는 324g 정도입니다.” 박 부사장은 “식품과 음료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싶다”고 말한다.

신개념 분식점 ‘고잉메리’.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대도시 서울의 중심인 종로구, 그 종로구 한복판에 있는 분식점에서 먹는 고급스러운 분식이라면 가격이 비싸지는 않을까? 분식이 분식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가격 경쟁력은 필수가 아닐까? 차림표를 보면 의구심이 금세 사라진다. 오렌지 2개가 통째로 들어간 ‘호텔 오렌지주스’는 2900원, ‘개념볶음밥’은 4900원이다. 메뉴 대부분의 가격은 3000~4000원 선이다. ‘고잉메리 X 부첼리 스테이크’는 1만5000원, 하우스 와인은 한 잔 당 5000원대에 판매한다. 메뉴는 대략 40여개. 여인호 대표는 “프리미엄을 표방한다고 해서 가격이 비쌀 이유는 없다”며 “고잉메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곳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소확행’ 공간이다. 와인 한 병을 사기 부담스러운 이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와인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이도 많다고 박 부사장은 귀띔한다. 1인 고객을 위한 칸막이 테이블을 따로 마련한 이유다. 간단한 식사와 낮술조차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휴식처인 셈이다.

‘고잉메리’를 연 ‘옥토끼프로젝트’의 여인호(왼쪽) 대표와 부사장 박리안씨.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여인호 대표에게 고잉메리의 미래에 관해 물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음식 애호가이자 음식 기획자로서 고잉메리의 메뉴를 더 다각적으로 개발할 생각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이 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실제 2009년부터 맛집 블로그를 운영한 그는 라면 한 봉지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옥토끼프로젝트의 ‘요괴라면’을 통해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고잉메리가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거대한 하나의 함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종로 고잉메리 1호점을 시작으로 올해는 더욱 많은 곳에서 고잉메리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옥토끼프로젝트의 고잉메리는 애니메이션 <원피스> 속 고잉메리호를 오마주한 이름이다. 고잉메리호는 크지도 않고 장비도 많지 않은 허름하고 평범한 배지만, <원피스> 주인공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매개체이자 역경을 헤쳐 나가는 기둥이다. 분식을 통해 소비자의 삶에 스며들고자 하는 옥토끼프로젝트의 고잉메리호의 미래도 그와 같을지 궁금해진다.

글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분식 분식(粉食)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싼 가격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외식 메뉴를 통칭하던 분식이 최근 복고풍 트렌드에 편승해 변신하고 있다. 1970~8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주방 소품 등을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등 독특한 분위기의 분식점이 20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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