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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안에서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을 운영하는 약사이자 책방지기 박훌륭씨.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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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종이책
숍 안에 숍···특별한 독립서점
약도 팔고 책도 권하는 약국 서점
‘하루만 하루끼’ ‘에라 묘르겠다’ 등 신기한 이벤트
여성작가 시와 SF 소설 읽는 카페 안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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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안에서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을 운영하는 약사이자 책방지기 박훌륭씨.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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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지도 앱을 만든 퍼니플랜의 ‘2018 독립서점 현황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전국에서 운영 중인 독립서점은 416곳이다. 같은 해 휴·폐점한 독립서점은 50곳. 임대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경영난이나 임대료 상승 등의 고비가 찾아온다. 지난 11일과 16일, 약국을 겸해서 또 카페 한 귀퉁이에서 ‘가늘고 길게’ 생존과 지속을 도모하는 독립서점 세 곳을 방문했다.
약은 약사에게 책도 약사에게?
‘아직 독립 못 한 책방’
고객 맞춤 추천 ‘책 처방’을 내려주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 ‘읽는 약’이라고 적힌 봉투에 책을 포장해주는 곳도 있다. 서점이니까, 진짜 약을 취급하진 않는다. 지하철 5호선 공덕역과 애오개역 중간쯤, 대로변에 자리한 ‘푸른약국’은 예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약사가 약도 짓고 책도 판다. 약사 박훌륭(38)씨는 지난해 8월, 약국 안에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을 열었다. 약국 한쪽 벽면을 차지한 책은 대략 1000여종. ‘책 보려고 차린 책방’치고 규모가 꽤 크다. “책 욕심이 많아서 자꾸 늘어난다. 원래 관심사가 심리나 건강이었다. 그런데 오시는 분들이 문학 독자가 많다 보니 그 분야도 많이 읽게 된다. 은근히 갇혀있는 직업이다 보니, 책 보러 오는 단골을 만나며 활력이 생긴다.” 박씨의 말이다.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들고 작가의 독특한 문장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책 수다 떠는 여느 독자 같다가도, 종종 조제실에 들어가 약국 손님을 맞을 때는 약사로 돌아간다. 박씨의 책방은 서점 이름을 줄인 ‘아독방’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인스타그램 아독방 계정을 통해 약에 관해 묻는 단골에게 “약사님께 물어보고 올게요”라고 우스갯소리로 답한 적도 있단다. 약사와 독자, 책방 주인을 오가느라 분주한 자아를 두고 하는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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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독립 못 한 책방’에서 파는 책과 소화제.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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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안의 책방이라 오프라인 책 모임하기 어렵지만, 박씨는 출판사와 연계해 서평단을 꾸리고 다양한 책 이벤트를 기획한다. 최근 반응이 좋았던 행사는 ‘책 읽다가 절교할 뻔’이다. 행사 이미지는 ‘웃프’(웃기면서 슬프다)다. 박씨가 멱살 잡힌 사진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와 있다. 비밀친구에게 편지나 선물을 보내는 ‘마니토’ 게임과 비슷하다. 이벤트 참여자가 ‘멱살 잡힐 만한’ 어려운(?) 책이나 평소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책 등을 추천하면, 박씨는 참여자들을 매칭해 그 책들을 보낸다. 참여자 대부분은 단골들. 책값은 박씨가 지불한다. 책을 받은 이들은 누가 그 책을 보냈는지 모른다. 서평을 남기는 게 조건이다. 평소 관심 없던 분야 책이라도 기꺼이 읽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박씨의 이야기를 듣고, 이전에 버거워서 포기했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집을 집어 들었다. 소화제와 진통제도 챙겼으니 걱정 없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190 푸른약국 안/인스타그램 @a_dok_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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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불시착’의 서가. 독립출판물이 주를 이룬다.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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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완전 정착의 그 날까지
‘지구불시착’
식당이나 세탁소를 차려도 이름을 ‘지구불시착’으로 지을 셈이었단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책방지기인 김택수(48)씨의 서점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 마을카페 ‘마을과 마디’에 안에 자리했다. 무역업을 하던 김씨는 2016년 10월, 하던 일을 접고 사무실 공간에 책방을 열었다. 법무사 등이 모여 있는 건물 2층에 있었던 책방이 공릉동 마을투어코스에 포함되면서 김씨가 마을 공동체 일을 돕는 일도 늘었다. 협동조합 카페로 책방을 옮긴 것은 지난해 4월. 책방 이사는 쉬는 날 없이 이루어졌다. “친한 손님들이 야간에 이사를 도왔다. 이분들이 모두 지구불시착의 ‘관계자’기도 하다. 제가 자리를 비우면 대신 책방을 지키고 책을 판 분들이다.” 독립서점의 지속에는 책을 구매하고 공간에 애착을 갖는 단골의 기여가 크다. 지구불시착에게 다양한 행사를 제안하는 것도 손님들이다. 김씨는 자신의 역할은 그저 ‘이름을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양이를 그리는 드로잉 이벤트 ‘에라 묘르겠다’, 소설 쓰기 워크숍 ‘하루만 하루끼’처럼 웃음이 터지는 다양한 모임 명이 그의 작품이다.
마을 카페 안에 있으니 임대료 상승 걱정은 없지 않은가 물었다. “(임대료 문제가 없어도) 책방은 원래 가난하다. 책을 팔아 돈을 벌기 쉽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 부업을 하는 분도 많다.” 김씨는 책방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남 일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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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카페에 자리 잡은 서점 ‘지구불시착’의 책방지기 김택수씨.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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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불시착의 서가는 주로 독립출판물로 채워진다. 직접 책을 입고하러 오는 저자와 만나는 일도 잦다. 그래서 김씨에게 책은 사람이기도 하다. 책을 추천해 달라 했더니 “모두 다 저요! 저요! 손을 드는 것 같아서 선뜻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고 말하는 김씨는 책 내용 대신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길게 덧붙였다.
십년 전에 한창 듣던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이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날 믿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메마른 하늘.’ 공학도와 재즈아티스트의 만든 밴드 ‘캐주얼 비지트’의 ‘외계인의 편지’다. 이곳의 삶은 지루하고 그곳의 너는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하지만, 곁에서 ‘날 믿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때문에 여기 머문다는 내용이다. 외계인이든, 지구인이든 다들 조금씩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불시착한 채로. (서울 노원구 화랑로 464 ‘마을과 마디’ 안/인스타그램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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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한구석에 책상 하나 놓고 서점을 연 ‘옛따 책방’의 전유미씨.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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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책방
‘옛따 책방’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숲길에 고 구본주 조각가를 기리는 ‘카페 본주르’가 있다. 천장에 매달린 작가의 설치작품을 구경하며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면 가로 120㎝, 세로 90㎝의 책상을 만난다. 기자, 편집자, 책 협동조합 일을 거쳐 온 전유미(44)씨는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 한구석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책방, 원 테이블 북 스토어’ 개념으로 지난해 3월 ‘옛따 책방’을 열었다. 책방 이름은 물건을 건넬 때 쓰는 ‘옜다’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겼다. 책에 부여하는 거창한 의미와 무게를 덜어내고 가볍게 건넨다는 뜻이다.
처음엔 50종이었던 책은 1000여 종으로 늘어나 카페 이곳저곳으로 야금야금 영토를 넓혔다. 책상의 맞은편 선반은 옛따의 지난 1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시로 열리는 ‘여성시 읽기-다락방의 미친 언니들’ 모임에서 10여명이 읽은 30여 권의 시집들과 ‘여성작가가 쓴 에스에프(SF) 소설 읽기 모임’에서 다룬 어슐러 르 귄, 마거릿 애트우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등 거장들의 작품이 눈에 띈다. 국내 여성 작가 선집도 있다. “기라성 같은 외국 언니(?)들도 좋지만, <여성 작가 에스에프(SF) 단편 모음집>은 한국 창작자의 작품이라 더 응원해주고 싶다. 다른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을 우리말로 섬세하게 공유하는 즐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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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따책방의 서가.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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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따의 독서모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열린다. 책 읽는 모임치곤 꽤 이른 편이다. “제가 엄마다 보니, 정규직 직장인 스케줄에 맞춘 저녁 모임이 어렵더라.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림, 사진, 시나리오 작가 등의 30대 자유 직종 여성들이 많이 온다. 시 모임은 40대, 50대 여성도 많다.” 참여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채팅창으로 문의하는 것이 가장 빠르단다. 처음 만난 사이의 어색함도 성큼 뛰어넘는 쾌활한 책방지기가 기다린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21길 23, 2층 카페 본주르 안/페이스북 @yetta.books)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SC] 봄에서 초여름까지. 책 나들이 가자!
다양한 독립출판물들을 만날 수 있는 ‘책 보부상’ 마켓이 4월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서울 서촌 베어카페에서 열린다. 책을 쓰고 만들고, 서점을 돌며 직접 입고를 하는 독립출판제작자들을 책 보부상이라 부른 것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디자인 이음과 스토리지앤필름이 주최한다. 어린이를 위한 행사로 5월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열리는 ‘파주출판도시 어린이 책 잔치’가 있다. 올해로 17회를 맞이하는 어린이 책 잔치는 테마 전시와 공연, 체험프로그램. 출판도시 입주 회사 오픈하우스 등이 예정되어 있다. 6월19일부터 23일까지. ‘2019 서울국제도서전’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홀에서 열린다. 철학자 김형석, 작가 한강, 모델 한현민이 홍보대사를 맡았다. 5월1일부터 한 달간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http://sibf.or.kr/visitors)에서 관람객 무료 사전등록을 시작한다.
유선주 객원기자
책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기록하여 꿰어 맨 것. 문자나 그림을 체계 있게 담은 물리적 형체. 고대의 기록물은 파피루스나 양피지 두루마리 형태였다. 이후 양피지 가운데를 접고 여러 겹으로 겹쳐 표지를 씌운 코덱스(codex) 형태가 우리가 아는 책과 가깝다. 인쇄술과 제지술의 보급으로 지식이 대중화하고, 책의 개인 소유가 가능하게 되면서 수요가 생기고 책은 상품으로 거듭났다. 글쓴이가 죽어도 글은 책 안에 담겨 긴 세월을 건넌다. 정보를 기록하고 휴대하고 운반하는 보편적인 저장 물건으로 가장 오래된 형태. 책은 신비한 종이 묶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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