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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7 20:05 수정 : 2019.04.17 20:15

지난 14일 오리엔티어링 경기 여성 초급부에 참가한 이정연(사진 맨왼쪽) 기자와 가족팀으로 참가한 공원진(사진 가운데) 어린이와 임은주씨가 마지막 콘트롤을 향해 뛰고 있다. 사진 최현주 제공



목표 지점 찾아 달리는 운동
어린이, 가족 단위 참가도 가능
목적지 도착하면 카드 찍어 기록
4, 5월 저녁에 열리는 행사도 있어

지난 14일 오리엔티어링 경기 여성 초급부에 참가한 이정연(사진 맨왼쪽) 기자와 가족팀으로 참가한 공원진(사진 가운데) 어린이와 임은주씨가 마지막 콘트롤을 향해 뛰고 있다. 사진 최현주 제공
지도와 나침반을 들었다. 고등학교 지리 수업 때를 제외하고는 등고선이 있는 지도를 본 기억이 없다. 가장 많이 보는 지도는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속 지도뿐이다. ‘오리엔티어링’이라는 스포츠를 할 때는 진짜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 호기심에 이끌려 오리엔티어링 대회에 직접 참가해 봤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별내 중앙공원.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공원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스포츠 ‘선수’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부터 대여섯 살로 보이는 어린이까지, 모여든 사람의 면면이 다양하다. 공통점은 하나다. 비가 내려 다소 추운 날씨인데도 얼굴은 모두 왠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열릴 서울경기연맹 통합 오리엔티어링 대회 참가자들이다.

오리엔티어링. 다소 낯선 종목이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목표 지점 여러 곳을 통과해야 하는 스포츠다. 야외 달리기와 ‘보물찾기’를 합친 종목이랄까? 숲이나 산에서 하는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도심 시가지나 공원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대중화가 더뎌 생소하게 여기지만, 그 역사는 짧지 않다. 1900년대 초 스웨덴에서 체력 증진을 위해 고안됐고, 국내에서는 1970년대 말 시작됐다.

오리엔티어링 체험을 해보겠다고 갔는데, 바로 대회 참여를 권유받았다. “마침 여성 초급 참가자 가운데 불참자가 있으니, 그분을 대신해 참가하면 되겠다.” 이날 대회를 주최한 대한오리엔티어링 서울특별시연맹 이사이자 오리엔티어링 클럽 ‘차즈마클럽’의 최현주씨가 바로 접수대로 기자를 안내했다. 얼결에 선수 등록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나침반과 에스아이(SI) 카드, 등 번호 등이 들려있었다. 다른 참가자와 달리 지급된 것은 ‘지도’였다. 본래 대회에서는 출발과 동시에 지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수준의 지도 이해 능력을 갖춘 기자를 위해 최씨는 짧은 독도법(지도 읽는 법) 강습을 해줬다.

지도를 읽기 위해서는 지도에 표시된 북쪽과 나침반 자침의 북쪽 방향을 일치시키는데, 이것을 지도 정치라고 한다. 사진 최현주 제공
“자, 먼저 이렇게 ‘지도 정치’를 해야 한다.” 지도 정치는 지형과 지도를 일치시킨다는 뜻이다. “나침반을 배꼽 쪽에 당겨 수평으로 놓는다. 그리고 나침반 자침이 가리키는 북쪽과 지도상의 북쪽 표시가 일치하게 몸을 움직이자. 이렇게 기준을 설정한 뒤 목표 지점을 찾고, 진행 방향을 정해야 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출발 지점에서 지도를 정치시킨 뒤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가니 첫 번째 목표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목표 지점에 가면 진짜 ‘보물’은 없다. 그러나 ‘기록’이라는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장치 ‘컨트롤’이 있다. 목표 지점에서 컨트롤을 찾아 에스아이 카드를 인식시켜야 한다. 오리엔티어링에서 찾아야 하는 보물은 이 ‘기록’이다. 카드를 컨트롤에 갖다 대면 “삑” 소리가 나면서 참가자가 몇 시, 몇 분에 그 컨트롤에 도착했는지, 전체 경기에 몇 분 걸렸는지가 경기 운영 전산 시스템에 기록된다. 지도에는 컨트롤의 위치와 함께 번호가 쓰여 있다. 번호는 찾는 순서를 뜻한다. 1번부터 마지막 번호의 컨트롤까지 찾아 에스아이 카드를 찍어야 하고, ‘피니시’(finish) 지점에 있는 마지막 컨트롤에도 체크를 해야한다. 최현주씨는 “오늘 초급 코스에는 17개의 컨트롤을 설치했다. 일반적으로 초급 코스의 컨트롤은 찾기 쉽다. 상급이나 엘리트(최상급) 코스의 컨트롤은 찾기 어렵게 설치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오전 11시 참가자들이 ‘엘리트-상급-중급-초급 또는 가족’으로 나뉘어 출발을 기다렸다. 이날 경기는 각 급에 참가자 1명씩 출발하고, 그다음 참가자가 1분 뒤 출발하는 ‘간격 출발’ 방식으로 치러졌다. 기자는 마지막 출발 참가자로, 오전 11시23분 출발해야 했다. 어린이 참가자들은 어서 달려나가고 싶어 안달 난 표정이다. 쌍둥이 이준용·이준혁(12) 어린이도 가족팀으로 참가했다. 이준용 어린이는 “정말 기대된다. 입상할 수도 있으니까. 떨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모험하는 기분이어서 좋다”고 말했다.

오리엔티어링 대회 참가자들이 출발과 함께 지도를 읽으면서 뛰고 있다. 이정연 기자
오전 11시22분 지도 읽기 과외 때 경기 지도를 한 번 봤지만, 머릿속은 백지상태였다. 11시23분, 드디어 출발! 공원을 가로질러 뛰었다. 출발 지점부터 1번 컨트롤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바로 위기가 닥쳤다. 정신 차리고 나침반과 지도를 정치한 뒤 읽는데, 눈동자만 열심히 굴렸다. 지도 위의 등고선과 기호들이 뒤섞여 눈앞에 있을 뿐, 제대로 ‘읽지’ 못했다. 오리엔티어링은 빠르게 달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도상에 갈림길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그 갈림길에서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등고선과 주변 지형과 지물 기호를 제대로 이해해야한다. 좋은 기록을 얻기 위해 ‘지도 읽는 법’(독도법)을 따로 배우기도 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더듬더듬 2번 컨트롤을 찾고, 3번 컨트롤을 찾으러 경사진 길을 올라야 했다. 트레일 러닝(비포장·오솔길 달리기)을 하는 기분이 든다. 정신없이 달리다 싱그러운 풍경에 미소를 절로 지었다. 야트막한 산속 진달래꽃 무더기 사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이 뛰어다니는 풍경에 생동감이 넘쳤다. 7살인 아들 공원진 어린이와 함께 대회에 참가한 임은주(48)씨는 “원진이가 태어날 즈음 오리엔티어링을 시작해서 출산한 뒤 아이를 업고 경기에 나가기도 했다. 딸의 권유로 오리엔티어링을 시작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기 정말 좋다”고 말했다. 진달래 사이를 열심히 뛰어다니던 김채현(14) 참가자는 알고 보니 베테랑이다. “‘엘리트’ 경기에 출전했다. 부모님 따라 시작해 대회도 많이 나갔다. 홍콩에서 열린 국제대회를 나가기도 했는데, 외국인이랑 다 같이 섞여 오리엔티어링하는 게 진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김채현 참가자의 오빠 김민성(16) 선수는 올해 국가대표로 뛴다.

오리엔티어링 엘리트(최상급) 코스에 출전한 김채현 참가자가 진달래꽃이 핀 공원을 뛰어가고 있다. 이정연 기자
16살에 국가대표? 갑자기 귀가 쫑긋해진다. 오리엔티어링 국가대표는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이나 각 시도 연맹이 주최한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쳐 정해진다. 아직 선수가 많지 않아 국가대표로의 진입장벽이 다른 종목보다 낮은 편이다. 지난해 오리엔티어링에 입문한 천다민(27)씨는 “처음 참가해 본 경기가 워낙 재미있었다. 여성 초급부에서 1등을 했더니 그 뒤로 정말 신나서 경기를 또 나갔다.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다.”고 말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열리는 국외 오리엔티어링 대회 사진을 찾아보니,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천씨의 마음이 이해된다.

진달래와 개나리 사이를 뛰다 마지막 컨트롤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삑!” 마지막 컨트롤에 에스아이를 갖다 대며 경기를 마쳤다. 기자의 기록지가 바로 본부에서 인쇄되어 나왔다. 1번 컨트롤에 도착한 건 11시25분54초, 피니시 컨트롤에 도착한 건 11시54분56초로 전체 기록은 29분2초였다. 마지막 참가자였던 터라, 기자의 기록이 나오자 ‘여성 초급’ 순위도 바로 결정됐다. “어? 2위인데요?” 대회 스태프 허정원씨가 알려줬다. 기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지도 읽기 과외를 받느라, 지도를 미리 보았으니 말이다.

공원진 어린이가 목표 지점에서 에스아이(SI) 카드를 콘트롤에 찍고 있다. 이정연 기자
오리엔티어링은 최근 트레일 러닝과 일반 러닝 열풍에 힘입어 조금씩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오리엔티어링 20년 경력에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차윤선(37)씨는 “아직 완전히 대중화하지는 않았지만, 예전보다는 유입되는 인구가 많은 편이다. 2006년 오리엔티어링을 국내에서 할 때는 ‘걸어 올라가기도 힘든 산에서 왜 뛰어?’하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웃음) 오리엔티어링이 뭔지 설명하는 것도 어려웠었는데, 관심이 좀 더 생기다 보니 이제는 설명할 기회도 늘었고, 궁금해서 경기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차씨는 대중화를 위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대회 정보나 이벤트, 강습 등의 정보는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 홈페이지에도 있고, 페이스북에 ‘오리엔티어링 코리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게 퍼다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최현주 제공

[ESC] 나이트 오리엔티어링도 있어요

야간 오리엔티어링 즐겨보세요 서울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은 경우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저녁 ‘나이트 오리엔티어링’이 열린다. 지난 3월에는 서울시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렸다. 4월24일에는 서울 마포구 효창공원에서 나이트 오리엔티어링이 열린다. 5월에는 마지막 주가 아닌 15일에 ‘세계 오리엔티어링의 날’을 맞아 야간 오리엔티어링 이벤트가 열린다. 관련 소식은 페이스북의 ‘오리엔티어링 코리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회는 끝없이 이어진다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 홈페이지에는 각종 대회 정보가 망라되어 있다. 4월28일 인천광역시시연맹회장배 전국오리엔티어링대회가 인천시 연수구 해돋이 공원에서 진행된다. 역사 깊은 대회인 국민건강오리엔티어링대회는 5월26일 열린다. 26회를 맞은 대회로 서울시 금천구 일대에서 열린다. 대회 참여에 앞서 동호회 활동을 하며 훈련해 보고 싶다면 각 시도 오리엔티어링연맹 등에 문의하면 된다.

이정연 기자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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