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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0 20:10 수정 : 2019.04.10 20:20

모리에다 간이 만든 ‘우메 고등어 샐러드’. 박미향 기자

라이프 레시피

한국 찾은 요리사 모리에다 간
일본에선 ‘혁신의 아이콘’
제철 아닌 재료로도 신선한 맛 선보여
‘카레라이스의 모험’ 저자가 부친
“식용벌레 식당, ‘공유주방’ 열고파”

모리에다 간이 만든 ‘우메 고등어 샐러드’. 박미향 기자

게으른 요리사의 ‘영혼 없는 맛’에 지친 미식가는 식재료에 집착한다. 그중에서도 제철 식재료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 청나라 때 시인이자 미식가 원매는 고기에 뿌리는 양념조차 계절을 따졌다. 여름엔 겨자를, 겨울엔 후추를 곁들여야 맛좋다고 설파했다. 죽순도 제철이 지나면 쓴맛이 난다며 눈길도 주지 말라고 했다. 우리의 봄은 향긋한 제철 식재료인 냉이나 쑥, 도다리와 멸치 등을 즐기는 데에서 시작한다.

지난 5일 한국을 처음 찾는 일본인 요리사 모리에다 간(33)은 자신의 ‘생선 밥상’을 차리기 위해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아가 식재료를 둘러봤다. “도쿄 쓰키지시장보다 생선이 신선해서 놀랐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도 도다리가 눈에 들어왔을 법한데, 막상 당일 저녁에 차린 그의 ‘시 : 시 푸드’(SEE : SEA FOOD)는 여느 봄 밥상과 달랐다.

‘리치와 북쪽분홍새우, 굴’. 박미향 기자

“굴부터 드세요. 약간 장난기 어린 것을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요.” 모리에다 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언뜻 봐서는 열대과일 리치, 껍질을 벗긴 ‘북쪽분홍새우’(단새우·아마에비·홋코쿠아카에비), 유자즙과 생강즙을 뿌린 굴 한 개가 다였다. 이날 초대받은 자리에서 ‘술 중심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셰어드 바’(Shared Bar·와인이나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을 공유하며 즐기는 바) ‘라꾸쁘’ 손기은 대표는 “속았네! 속았어! 재밌다!”라며 손뼉을 쳤다. 리치 껍질 안에 있는 것은 북쪽분홍새우였고, 북쪽분홍새우 머리와 꼬리가 위아래에 붙은 것은 달콤한 리치였다. 간의 장난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모리에다 간 스타일의 피시 앤 치프스’의 재료는 도루묵. 일반적으로 도루묵은 11월에서 이듬해 1~2월까지가 제철이다. 간은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신선한 도루묵을 발견했는데, 제철이 지났다고 굳이 안 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뼈만 빼내 모양을 살린 채 튀겼다.

‘모리에다 간 스타일의 피시 앤 치프스’. 박미향 기자

그가 맛에 위트만 얹은 것은 아니었다. ‘우메 고등어 샐러드’는 일본의 대표 고등어 요리 ‘시메사바’(고등어를 식초 등에 넣어 삭힌 음식)의 시큼한 향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고급화했다. 식초, 소금 등에 절인 고등어를 100도 오븐에 넣고 익힌 다음 ‘우메보시버터’(잘게 썬 우메보시와 무염 버터를 0.3:1 비율로 섞은 것)를 발랐다. 고등어 살이 마치 카스텔라처럼 입안에서 부드럽게 흐트러져 이를 쓸 틈이 없었다. 부드럽다. 지난해까지 그가 일한 도쿄의 레스토랑 ‘새먼 앤 트라우트’(Salmon & Trout·연어와 송어)에서 인기 메뉴였다.

예부터 일본에선 봄철 교토 지방에서 잡히는 고등어를 최고로 쳤다. 일본의 도예가이자 ‘맛의 달인’으로 명성을 떨친 예술가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감칠맛이 나고, 한번 맛보면 잊기 힘든 풍미가 나는 맛’이라고 극찬했다. 간이 고등어 조리에 탁월한 이유엔 어쩌면 ‘고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산진이 칭찬한 고등어 명산지 교토와 인접한 오사카가 간의 고향이다.

17살부터 주방 칼을 잡은 간은 일본의 명문 요리학교 ‘츠지조그룹교’를 졸업했다. <미쉐린 가이드>와 쌍벽을 이루는 영국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2005년부터 3년 간 순위에 들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명성을 쌓은 일본인 요리사 데쓰야 와쿠다(60)가 그의 스승이다. 일본 음식 평론가들은 생경한 동남아 양념도 일본 식재료에 과감하게 사용하는 그를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평했다.

모리에다 간. 박미향 기자

그가 요리사의 길에 접어들게 된 데는 부친의 영향이 컸다. 부친 모리에다 다카시는 유명한 음식 평론가인데,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가 있다. 영국을 오가며 카레라이스의 역사를 추적한 <카레라이스의 모험>이 부친이 쓴 책이다. 부친은 한식에 관한 책도 일본에서 출간했다.

지금 간은 “아직 젊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결심으로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팝업 행사를 하며 산다. 식용벌레를 식재료로 한 식당과 ‘공유주방’을 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이번 한국 팝업은 5년 전 문 연 일본 가정식 식당 ‘양출쿠킹’의 김승미 대표의 기획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요리 공부를 한 김 대표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본에서 훌륭한 평을 듣는 셰프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 팝업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벚꽃 판나코르타’. 박미향 기자

“일본에는 식용 벚꽃이 있어요. 소금에 절인 것이죠. 아름답나요?” 그가 식사 마지막에 낸 디저트는 이탈리아인이 즐겨 먹는 판나코르타(Panna Cortta)였다. 하지만 평범하지는 않았다. 딸기와 토마토를 갈아 만든 가스파초에 식용 벚꽃을 갈아 넣어 향을 배게 한 판나코르타를 넣었다. 그 위에 짠 식용 벚꽃이 한 떨기 올라갔다. 말린 것이었다. 원매의 한 소절 ‘정상에 오른 이도 내려와야 할 때가 오고, 꽃도 피면 시들게 마련이다’가 떠올랐다. 하지만 꽃잎이 혀에 닿자마자 “봄은 봄이구나”가 절로 튀어나왔다.

간은 향 짙은 냉이와 쑥같은 재료를 써 애써 ‘봄 밥상은 이런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보들보들한 도다리도 그의 봄 밥상엔 오르지 않았다. 맛에 정성을 담으면 제철이 아닌 식재료도 미식가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부지런한 요리사는 제철 재료에도, 요상한 양념에도 자신의 혼을 빼앗기지 않는 법. 그에게 봄은 일상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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