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8 09:15
수정 : 2019.03.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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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 김칠두씨.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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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우아한 노년
제2의 인생 사는 ‘젊은‘ 시니어들
패션계, 김칠두·최순화 등 60∼70대 은발 모델 인기
“늘그막에 모델로 사는 요즘, 다시 태어난 기분”
‘탈잉’ 등 재능공유 플랫폼에서도 활약
평생직장 노하우, 20·30세대에 전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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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 김칠두씨.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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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가을·겨울(FW) 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 브랜드 ‘막시제이’ 무대에 한 모델이 백발을 휘날리며 등장하자 관객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점퍼 형태의 검은색 코트를 입은 시니어 모델 김칠두(65)씨를 향해 객석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주름진 얼굴과 염색하지 않은 흰색 머리카락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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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들.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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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순대 국밥집을 운영하던 김씨는 젊었을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늘그막에 딸의 권유로 지난해 2월 한 모델학원에 등록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을 한 지 1년 만에 인스타그램 계정(@cildugim)의 팔로워 수가 2만9000명(3월22일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국내 인기 모델이 됐다. 최근에는 유럽 등 해외 패션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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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 최순화씨.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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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의 샛별로 떠오른 은발 모델들은 김씨 뿐만은 아니다. 지난해 ‘헤라서울패션위크 가을·겨울(FW)’에서 패션 브랜드 ‘키미제이’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한 이도 시니어 모델 최순화(76)씨였다. 은발이 트레이드 마크인 최씨는 “젊었을 때 간호사로 일하다 결혼한 뒤에는 살림살이에 치여 나 자신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노인이 돼 있더라”며 “죽기 전에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이 뭔지 고민한 게 모델에 도전하게 된 계기다”라고 말했다. “모델로 사는 요즘은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정말 행복하다.” 환하게 웃으며 최씨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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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들.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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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학원 ‘더쇼프로젝트’의 정영주 대표는 “2017년부터 만 50살 이상인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모델수업(워킹·포즈) 수강생을 1·5·9월마다 모집하고 있다. 한 수업마다 15∼20명 선착순 모집이지만 1년 사이 지원자가 2∼3배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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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들.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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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 박인숙씨.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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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가 되면서 시니어들이 뒤늦게 자신의 꿈을 찾아 패션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매력을 갖춘 시니어들이 늘면서 패션은 더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 대표는 “‘어떻게 멋있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멋을 가장 직접 표현하는 패션계부터 반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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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들.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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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에선 60대 커플룩으로 주목받는 일본의 ‘본폰’ 부부(@bonpon511)를 비롯해, 독특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해진 60대 ‘남포동꽃할배’ 여용기(@yeoyoungki)씨 등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멋’을 선도하는 시니어들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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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사진 ‘에르디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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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처럼 나이를 ‘잘 먹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진 분위기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초만 해도 서점가에선 〈근사하게 나이들기〉(마음산책),〈나이 듦의 기술〉(상상출판) 등 ‘나이 듦’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 ‘숨고’ 등에서도 직장 은퇴 후 ‘튜터’(강사)로 나선 50∼60대 시니어들이 기량을 뽐내고 있다. 탈잉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2016년 2월 선보인 플랫폼 서비스다. 개인의 재능을 오프라인 수업(튜터·수강생) 형태로 연결해준다. 김윤환 탈잉 대표는 “서비스를 출시할 당시 20·30대 세대를 대상으로 홍보했지만, 최근 1년간 50~60대 시니어 튜터 수가 114명으로 크게 늘었다”며 “‘은퇴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게 요즘 시니어들의 지론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전직 임원에게 배우는 ‘회사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실전 마케팅 지식’에서부터 ‘30년 영업맨’의 시간 관리 노하우 등 탈잉에서 시니어들이 진행하는 수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20·30대 세대라고 한다.
지난해 퇴직한 김우주(64)씨도 올해 초부터 탈잉에서 튜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회사에서 20년 넘게 ‘엑셀’을 다뤄왔던 김씨는 “곧바로 은퇴하기엔 내가 가진 기술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아직 멀쩡한데 그냥 노는 것도 사회적인 손실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험만큼 값진 자산은 없다”는 그는 직장에서 갈고 닦은 ‘엑셀’ 노하우를 20·30세대에게 전수 중이다. 2015년 유엔(UN)이 발표한 새로운 ‘생애주기별 연령지표’에 따르면 18~65살까지는 청년, 66~79살까지는 중년, 80~99살까지는 노년, 100살 이상은 장수노인으로 나누고 있다. 이 생애주기별 연령에 따르면 김씨는 청년이다. 결국 청년·중년·노년을 구분 짓는 건 앞자리 숫자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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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 김유림씨. 사진 ‘더쇼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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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늙되 낡지 않게 사는 비결’로 시니어 모델 김유림(72)씨는 “젊은 날에 하고 싶었던 것을 그대로 하면 된다”고 말한다. 김씨처럼 멋지게 자기 삶을 사는 시니어들이 찾은 ‘근사하게 나이 드는 방법‘은 뭘까. 그들을 ESC가 만나봤다.
김포그니 기자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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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 ‘100세 시대’를 맞아 나이와 관계없이 근사하게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들이 늘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패션 분야에 도전한 60~70대 시니어 모델들이 대표적이다. “가슴 뛰는 일을 좇는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김포그니 기자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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