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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1 09:20 수정 : 2019.03.21 20:06

커버스토리/나무

나무 장난감 만드는 김철희씨
아내 병간호하다 목공에 눈 떠
60살 넘어 새 삶 시작해
최근 ‘취목인’ ‘나무 덕후’ 등
목공에 빠진 이들 늘어

김철희씨가 두 손녀를 위해 만든 나무 장난감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경기도 양평에는 나무 할아버지가 산다. 김철희(64)씨는 2011년부터 손녀를 위해 나무 장난감을 만들었다. 목마는 기본이다. 세탁기, 가스레인지, 냉장고 등 아기자기한 소꿉놀이 장난감이 즐비하다. 각종 탈 것들의 모형과 객차를 줄줄이 연결한 기차는 예사 솜씨가 아니다. 김씨의 블로그 ‘나무 할아버지와 천연비누’를 보고 감탄하다가 장난감 실물이 보고 싶어 지난 5일 김철희씨를 만났다.

“손녀 장난감으로 처음 만든 게 기차다. 기차 앞면엔 손녀 이름 이니셜도 새겼다. 하트 모양은 튼튼한 심장을 가지라는 뜻이다. 기차에는 객차도 있어야 하고, 짐칸도 있어야겠더라.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동물 친구도 있어야 한다. 우리 손녀가 토끼띠라 토끼 인형도 만들었다. 동물을 태우고 멀리 가려면 유조차도 필요할 것 같아서 그것도 달았다. 그래서 다섯 칸이 한 세트가 됐다.”

김씨는 따로 목공을 배운 적이 없다. 자가면역질환을 앓았던 동갑내기 아내 홍윤선씨를 위해 공기 좋은 양평으로 와서 추운 집을 보수하다가 자투리 목재로 이런저런 궁리를 시작한 게 출발이었다. 뇌졸중까지 닥친 홍씨를 병간호하고 병원을 오간 12년 세월. 나무는 말 그대로 김씨에게 버팀목이 됐다. “나무 장난감을 만들면서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철희씨가 자투리 나무로 만든 나무 기차. 손녀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는 비누도 만든다. 아내의 피부가 짓무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병원에서 유명할 정도로 그는 병간호를 열심히 하는 애처가다. 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본래 컴퓨터 관련 사업을 했었는데,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엄청난 빚에 시달렸다. 다 갚는 데만 10년. 겨우 자신의 사업에 몰입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시점에 아내가 덜컥 병에 걸린 것이다.

아내 홍씨는 김씨와 데이트를 하던 젊은 시절 ‘쌍학 흉배’ 자수를 놓으며 “이 수가 완성되면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했단다. 1년 걸린 자수 작품에는 구름 문양의 빈 곳이 있다. ‘살면서 의미를 채우는 공간’이란 뜻으로 남겼다고 한다. 김씨는 원예학을 전공한 홍씨를 위해 유리 상자에 인공정원을 만들어 선물했다.

“다음 생에서는 나를 아는 척하지 말라” “힘들게 길들였으니 다음 생에도 함께하겠다” 등 농담을 주고받은 부부. 이들의 관계를 지금까지 굳건하게 지탱한 것은 젊은 시절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상대방에게 선물하며 마음을 주고받았던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용 막대도 나무 공예의 재료가 된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씨가 만든 나무 장난감은 기계로 재단하고 마감한 매끈함은 없다. 하지만 만져보면 안다. 어린 손끝이 다칠세라 어느 한 곳도 모나지 않게 갈아서 둥글린 모서리가 할아버지의 마음이다. 그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첫 손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무 할아버지의 나무 공작은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에 태어난 두 번째 손녀가 이제 곧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이다. 김씨는 황금 개띠 해에 태어난 그 손녀의 첫 선물로 강아지 모양 걸음마 보조기구를 만들었다.

뜻밖에 목공을 시작한 김씨에게 새 길도 열렸다. 1월부터 양평읍사무소 2층 청년사무소 ‘콕’(cog)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목공교실을 시작했다. 상상한 대로 만드는 목공교실 ‘상상공작소’다. 공예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고, 잘랐을 때 먼지가 적은 아이스크림용 나무 막대기를 사용한다. 쌓아 올리면 근사한 초롱이 되고, 조각을 이어 붙이면 대관람차로 변신한다. 나무 할아버지는 손이 바쁘다. 누군가를 기쁘게 할 궁리가 끊이지 않는 머릿속은 더 바쁘다.

쓰다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나무. 어린 시절엔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만 주워도 종일 쏘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 젠가도 나무 블록이 솩 쏟아질 때의 경쾌한 소리가 나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양평군 양평읍 양평읍사무소에서 나무 공작을 가르치는 김철희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나무로 노는 사람들이 있다. 프로 목수가 아니어도 목재를 가까이하는 이들을 ‘취목인’(취미가 목공인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목공을 한다고 꼭 커다란 가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 ESC는 대패 덕후, 그리고 홈이 팬 자국이 정겹고 따스한 우드 카빙 작가를 만났다. 덧붙여 나무를 만지고 놀 수 있는 나무놀이터 등도 소개한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나무 집을 짓거나 가구, 그릇 따위를 만들 때 재료로 사용하는 재목. 소프트 우드는 노송나무, 소나무 등의 잎이 가늘고 좁은 침엽수종. 하드 우드는 고무나무, 참나무, 호두나무, 단풍나무 등 잎이 평평하고 넓은 활엽수종의 목재다. 목공들이 쓰는 수공구로 대패, 끌, 톱 등이 있다. 현대 목공은 많은 작업이 전동 공구로 이루어지지만, 자신의 필요에 맞게 길들이고 변형하는 수공구를 함께 쓰는 목공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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