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3.06 20:15 수정 : 2019.03.06 20:19

연습 경기를 하고 있는 남양주어머니배구단. 이정연 기자

커버스토리/여자배구

20년 이상 경력 선수 여럿인 남양주어머니배구단
우승 경력 있는 하모니배구단은 주 3회 훈련 매진
김명해 회장 “배구하느라 갱년기 모르고 지나”

연습 경기를 하고 있는 남양주어머니배구단. 이정연 기자
프로 여자배구만 인기일쏘냐! 어머니배구단이 나가신다! 생활체육 배구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어머니배구’다. 최근에는 프로 여자배구의 인기에 힘입어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합류도 이어지고 있단다.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그들의 스파이크는 강렬하다. 어머니배구단의 훈련을 참관했다.

“올해로 29년째 배구를 하고 있다.” 프로 배구 선수 출신으로 오랜 지도자 경력을 가진 사람의 말이냐고? 아니다. 남양주어머니배 구단 창단 멤버이자 고문인 오영숙씨의 증언이다. 29년이라는 세월에 놀랐는데, 나이를 듣고는 더 매우 놀란다. “올해로 일흔이다.” 오씨는 말했다. 나이에 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어머니배구단을 찾으면서도 ‘40~50대 는 많겠지만, 60~70대 여성들이 정말 배구를 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일흔의 어머니배구 선수도 멋지게 배구를 한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남양주어머니배구단은 2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실내체육관에 모여 훈련했다. 일주일에 2번 2시간 정도 훈련한다. 생활 체육, 취미로 배구를 한다고 ‘대충’ 할 거란 생각 역시 접도록 하자.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 체육관은 쌀쌀해서 난로까지 켜야 할 정도였지만, 단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따로 또 같이’ 하는 연습에 여념이 없다. 스파이크, 서브, 토스 등을 번갈아 연습하는 모습이 프로 여자배구 선수들의 경기 전 연습 모습과 다르지 않다.

긴장감이 놀랍도록 팽팽하다. 대회도 아니고 연습 경기인데도 말이다. 단원들은 9명 씩 팀을 짜 코트 안에 섰다. 생활체육 배구는 대부분 9인제로 이뤄진다. 9인제 배구는 6인제 배구와 달리 포지션 변경 없이 경기를 이어간다. 당연하지만, 어머니배구에도 배구의 모든 게 있다. 예리한 서브, 강력한 스파이크, 몸을 던지며 공을 받아내는 수비…. 그 활기 넘치는 동작도 멋지지만, 탁구나 배드민턴 같은 다른 생활체육과 다르면서 더욱 멋진 건 완벽한 팀을 이뤄 치르는 경기라는 점이다. 헬스장에서 혼자 하는 운동이 지루해진 사람들은 그래서 배구장으로 모여 든다. 배구는 동료의 서브도, 스파이크도 마치 자신이 하는 것처럼 눈여겨봐야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여성들이 팀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땀 흘리고 부딪히고, 거침없이 승리욕을 내비치며 연습 경기에 임하는 ‘어머니배구단’을 보며 그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창단 29돌을 맞은 남양주어머니배구단. 이정연 기자
연습 경기 도중 갑자기 누군가 “죽여!”를 외친다. 강한 스파이크를 때리라는 응원 구호 같은 거다. 그 말을 외친 사람도, 듣는 사람도 웃으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김은진(47)씨는 “욕심이 생긴다. 코트 밖에서는 몰라도 안에서는 이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솟는 걸 느낀다. 덩달아 일상에서도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스 서브! 나이스 서브! 남양주 파이팅!”을 경기 내내 외치느라 목소리가 쉬어가는 차흥복(58)씨는 “파이팅 외치는 건 필수다. 팀워크는 분위기고, 그걸 좋게 만드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며 다시 한번 크게 “파이팅!”을 외친다. 남양주어머니배구단원들의 경력을 다 모으면 200년은 족히 넘는다. 배구 시작한 지 한 달 된 사람도 있지만, 20년 훌쩍 넘는 경력의 단원이 여럿이다. 20년 경력의 김명해(55) 회장은 “30대에 어머니배구단에 가입했을 때는 마흔살까지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중독성이 강하다. 그만둬야지, 둬야지 하는데, 안 된다. 몸이 아프다가도 배구를 하러 나오면 안 아플 정도다”라고 말했다.

전국 단위의 생활체육 배구 대회도 쉼 없이 열린다. 여기에 배구가 활성화한 남양주시에서 매달 열리는 ‘읍면동 대항 리그전’까지 참가하느라 남양주어머니배구단은 바쁘다. 참석하는 전국 단위 대회만 한 해 5~6개 다. 그중 역사가 깊은 대회는 올해로 49회째를 맞는 ‘카네이션배 전국어머니배구대회’다. 이 대회는 1970년 대통령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로 시작해, 1977년 오늘날의 이름으로 바뀌어 이어져 온다. 2박3일에 걸쳐 전국의 어머니배구단 60팀 이상이 결전을 치르고, 일본과 대만 등 해외 어머니배 구단도 초청해 친선 경기까지 벌인다. 오영숙 고문은 “국외로 나가기도 한다. 나도 지난해 일본에 가 경기를 치렀고, 이기고 왔다”고 말했다. 김명해 회장은 “카네이션배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몇 번 우승하기도 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모니배구단이 배구 강습을 듣고 있다. 이정연 기자
보다 일상적으로 배구를 훈련할 수 있도록 ‘성인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체육센터들도 있다. 2월27일 찾은 서울 양천구 신월문화체육센터가 그런 곳 중의 한 곳이다. 이곳은 또 다른 어머니배구단인 ‘하모니 배구단’의 구성원들이 훈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센터는 정식으로 ‘성인배구’ 프로그램을 개설해 주 3회 강습을 열고 있다. 성인배구이지만, 하모니배구단원뿐만 아니라 방학을 맞아 찾은 중학생도 연습에 여념이 없다.

훈련하느라 박춘봉 코치가 쉴 새 없이 배구공을 던지는데 지켜보기만 해도 숨이 차고, 무릎 관절도 아파 오는 느낌이다. 취미로 하기엔 너무 격렬한 운동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러나 경험자들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처음에 토스 연습하느라 팔 안쪽에 멍이 들면 겁내곤 하는데, 딱 그 시기만 지나면 재미있어진다.” 올해 60살 된 심윤숙씨의 이야기다. 그는 “배구를 과격한 운동일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차피 각자 가진 에너지만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연습을 계속 하면 체력도 좋아진다. 나도 60살이지만 아직 무릎이 아프다거나 체력이 안 돼 못 뛴 적 은 없다”고 말했다. 남양주에서 만난 어머니배구 선수들도 “걱정 놓으라”고들 한다. 김명해 회장은 나아가 ‘갱년기 퇴치론’을 펼친다. 그는 “배구를 해서 그런지 갱년기를 모르고 지났다. 다른 단원들도 그랬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70살 어머니배구 선수 오영숙 고문은 “별안간 운동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하다 보니 무리하지 않고 연습과 경기를 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구 훈련을 하고 있는 하모니배구단. 이정연 기자
배구공을 때리면 가사를 도맡아 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도 풀린다는 게 어머니배구 애호가의 증언이다.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코트 안에서는 섬세한 서브를 넣던 임규주 (54)씨는 이렇게 말한다. “3년 전 시작했는데, 주부 스트레스는 줄고 저질이었던 체력은 좋아졌다. 재미있게 배구를 하려고 걷기 운동도 한다. 아마 지금이 내 인생에서 체력이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자녀 뒷바라지에 무디어졌던 열정도 배구를 하며 고개를 든다. 김분선(50) 하모니배구단 회장은 “여자배구 인기가 늘면서 관심 갖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배구단이 대한배구협회에서 주는 우수단체상도 받았다. 워낙 재미있어서 일주일에 5일 배구를 할 때도 있는데, 가족들이 좀 삐질 때도 있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해준다. 은근히 주변 사람들에게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사람이라고 자랑도 한다”고 말했다.

여자배구. 프로 여자배구가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 본 어머니배구단의 경기는 연습 경기인데도 긴박감 넘친다. 남양주어머니배구단과 하모니배구단은 당장 4월에 강원도 인제에서 열리는 배구대회에 출전한다. 프로배구 시즌이 끝나가 아쉬운 마음을 멋진 실력의 어머니배구단 경기를 보며 달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프로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도 멋지지만, 어머니배구 선수들의 연륜과 지혜 넘치는 플레이도 기대할 만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여자배구 여성이 하는 배구를 일컫지만, 최근에는 한국배구연맹(KOVO)이 주최하는 프로 배구대회 브이(V)리그의 여자부 경기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1925년 국내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에서 여성에게 배구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발전을 거듭한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구기 종목 메달(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룬다. 최근에는 치열한 순위 경쟁과 김연경을 비롯한 스타 선수의 등장,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1970~80년대 이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