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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 손님이 ‘유저‘의 레인코트를 입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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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레시피 패션
파리패션위크 동안 팝업 스토어 열려
국내 패션 디자이너 10명 작품 전시
케이팝 힘 입어···강렬한 원색의 한국 패션에도 관심
“한국 패션은 미래의 옷을 연상케 해”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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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 손님이 ‘유저‘의 레인코트를 입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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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밀라노·런던 패션위크와 함께 세계 4대 패션위크로 꼽히는 ‘2019/2020 가을·겨울 파리패션위크’가 지난 2월25일부터 3월5일까지 열렸다. 디자이너, 바이어, 패션 매체 관계자, 모델 등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시기에, 파리 패션의 상징으로 불리는 프랑스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은 1층 쇼윈도 3관과 2층 판매 부스 1곳을 한국 패션브랜드들에게 내주었다. 비단 백화점뿐만 아니다. 명품 숍 거리로 유명한 파리 마레 지구에는 한국 패션 브랜드를 사려는 바이어들로 북적인다. 무엇이 깐깐한 전 세계 패션업계 사람들로 하여금 케이(K)패션에 빠지게 했을까. 그 현장을 다녀왔다.
“울라라, 세 시크”(c’est chic·멋지다). 지난 2월2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 1층 쇼윈도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감탄사도 터져 나왔다. 무지개색으로 그러데이션 된 방수원단으로 만든 레인코트, 형광 계열의 연두색 원피스 등 쇼윈도 안은 그야말로 색의 잔치다. 무채색 옷으로 즐비한 파리 도심 한복판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인 이 옷들의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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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 1층 쇼윈도에 전시된 한국 패션 브랜드.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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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의 1층 쇼윈도에는 주로 명품 브랜드들이 전시됐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뮌’(Munn), ‘유저’(YOUSER), ‘비스퍽’(BESFXXK) 등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서울디자인재단의 ‘텐소울’(Seoul's 10Soul) 프로젝트에 선정된 신진 브랜드들이다.
텐소울 프로젝트는 2010년부터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운영 중인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사업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패션 디자이너들이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 자신들을 홍보할 기회를 지원해왔다. 201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편집숍 ‘엑셀시오르’, 2017년 홍콩의 편집숍 ‘아이티’(I.T), 2018년 독일 베를린의 편집숍 ‘안드레아 무르크디스’ 등과의 협업 행사가 대표적이다.
그간 서울디자인재단이 해외 편집숍을 상대로 우리 패션 브랜드를 먼저 소개했다면 올해는 180도 바뀐 모습이다.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이번 전시 및 팝업스토어 행사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 동행한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은 “6개월 전 갤러리라파에트 측이 먼저 제안했는데, 모든 상품을 미리 주문해 구입한 점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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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 1층 쇼윈도에 전시된 한국 패션 브랜드.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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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이 사들인 우리 옷은 총 190여벌(약 3만 유로·한화 3800여만원).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소재의 옷들이 대부분이다.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의 총책임자 알릭스 모라비토는 “파리 패션위크가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지금, 최근 참신한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케이(K)패션을 통해 패션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원색의 개성 있는 디자인이 현재 세계 패션 트렌드”라며 “한국 패션이 선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우리 브랜드가 전시된 백화점의 얼굴 1층 쇼윈도에는 ‘퓨처’(Future·미래)와 ‘파노라마’(panorama·전경)를 합친 신조어 ‘퓨노라마’(Funorama·미래의 모습)란 글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현재 한국 패션의 위상을 보여주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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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 `텐소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 앞에 서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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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된 국내 디자이너들은 ‘2018 서울패션위크’에서 베스트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뮌’(Munn)의 한현민 디자이너를 비롯해, ‘부리’(BOURIE)의 조은혜, ‘디앤티도트’(D-ANTIDOTE)의 박환성, `한철리`(HAN CHUL LEE)의 이한철, `푸시버튼`(PUSH BUTTON)의 박승건, `와이시에이치(YCH)`의 윤춘호, ‘유저’(YOUSER)의 이무열·김민희, ‘비스퍽’(BESFXXK)의 김보나·임재혁, ‘막시제이’(MAXXIJ)의 이재형, ‘모호’(MOHO)의 이규호 등이다. 지난해 열린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패션 브랜드 중 해외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큰 브랜드들을 국내외 패션 관계자들이 투표해 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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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의 한복 스타일 조끼. 사진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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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에는 이번 행사가 남다르게 의미 깊은 디자이너도 있다. 2017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데뷔했던 모호의 이규호 디자이너가 그런 이다. 그는 당시 스님이 입는 회색 누빔 원단으로 지은 한복 스타일의 재킷이나 바지 등을 선보였는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찾은 파리는 그때와 달라져 있었다. “2년 전과는 달리 한국적인 것에 열광하는 분위기다.” 외국인들의 질문이 그에게 쏟아지자 그의 목소리에서는 들뜬 열기가 묻어 나왔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복을 봤다며 반가워하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옛 것을 힙(hip)하게 재해석한 옷’이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여줘서 적잖이 놀랐다”며 밝은 미소로 응답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 등장한 갓과 도포는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과 이베이 등에서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gat’이나 ‘god’란 영문 표기로 판매되고 있는데, 대략 우리 돈으로 4만~10만원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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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의 레인코트. 사진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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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의 한현민 디자이너는 텐소울 참여가 이번이 일곱 번째다. 그동안 패션의 중심지라는 영국 런던·이탈리아 밀라노·미국 뉴욕·독일 베를린에서 자신의 옷을 선보일 기회가 많았던 그지만 이번 파리 방문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채도가 높은 원색 계열의 파란색 원단으로 점퍼를 만드는 등 그는 색을 과감히 쓰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스엔 유독 ‘패피’(패션+피플)라고 불릴 만한 개성있는 옷차림의 관객들이 많아 자신의 원색 디자인 철학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며 “케이팝의 인기가 한국 패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케이팝 스타들이 파란색 등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옷을 입는게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디자이너의 옷이 본격적으로 공개된 팝업 스토어 오픈 행사는 이날 오후 5시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 2층에서 진행됐다. 미국의 유명 패션저널리스트 다이앤 퍼넷을 비롯해 글로벌 패션 웹진 〈하입비스트〉와 미국 패션지 〈보그〉 에디터등 전 세계 패션 관계자 220여명이 대거 참석해 한국 패션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행사가 됐다. 입구에 소방관이 주로 입는 특수 비닐 소재의 레인 코트(막시제이)를 입은 마네킹이 조명을 받아 번쩍이자 그 앞이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이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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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패션저널리스트 다이앤 퍼넷.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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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포대 원단에 강렬한 원색을 입혀 만든 독특한 점퍼(유저)와 양쪽에 주머니가 3개씩 달린 한복 형태의 조끼(모호)도 패션 전문가들 사이에서 ‘실용적이고 특이한 옷’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핫’한 일본의 패션 인플루언서인 쌍둥이 자매 ‘아야 앤 아미 트윈’은 푸시버튼의 어깨 소매가 크게 부풀어진 형태의 흰색·검은색 체크무늬 재킷을 구매해 시선을 끌었다. 푸시버튼은 등 쪽이 파인 반전 블라우스 등 과감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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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퍽’ 부스에 걸려 있는 코트.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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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퍽의 옷인 베이지색 코트의 경우 1072유로(한화 136만원)임에도 불구하고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빠르게 소진됐다. 이 코트를 산 러시아 패션저널리스트 알리나 데니소바는 “지퍼 하나로 코트를 재킷으로 변형해 입을 수 있는 상품은 처음 본다”고 감탄했다. 언뜻 보면 그냥 코트지만 허리 부분에 있는 지퍼를 열면 재킷과 코트가 분리된다. 비스퍽의 김보나 디자이너는 “‘변형’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옷이다. 코트 위에 재킷을 다시 걸칠 수 있게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 모인 패션 전문가들은 “독특한 소재, 화려한 색감, 미래의 옷을 연상케 하는 개성 있는 디자인이 한국 패션 브랜드의 특징인 것 같다”며 입 모아 칭찬했다. 이 팝업스토어는 3월24일까지 운영한다.
파리(프랑스)/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참신한 디자인에 옷의 완성도가 명품 옷 수준인데도 가격대는 합리적이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할 만한 잠재력이 느껴진다.” 2월2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한국 패션 브랜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쇼룸(도매상 판매 매장) ‘아이디얼피플’. 미국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의 패션 바이어 아리엘 시보니(Arielle Siboni)가 이곳에 진열된 한국 패션 브랜드 ‘앤더슨 벨’의 구매를 결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들어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파리 패션위크 때면 ‘될 만한’ 패션 브랜드를 찾아다니는 전 세계 의류 바이어들로 명품거리인 이 일대가 북적인다. 아이디얼피플처럼 신진 패션 브랜드를 소개하는 쇼룸들도 바빠진다. 아이디얼피플은 그중 찾는 이가 유독 많은 쇼룸이다. 미국 뉴욕의 대표 백화점 바니스와 삭스피프스애비뉴,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 영국 런던에 있는 백화점 하비니콜스와 셀프리지 등의 바이어들이 이곳의 단골이라고 한다.
[%%IMAGE12%%] 지난 2월25일부터 3월5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2019/2020 가을·겨울 파리패션위크’ 기간 동안 미국·영국·이탈리아·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패션 바이어 100여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성사된 계약만도 약 30∼40건에 달한다. 2009년에 이 쇼룸을 연 한국계 미국인 리처드 전 대표는 “확실히 10년 전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케이팝의 인기가 한몫했다”며 “최근 한국 패션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 트렌드인 ‘원색’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복을 포함한 한국 옷만큼 원색을 잘 구현하는 패션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패션 브랜드 이세, 파인드카푸어, 카이 등 북미·유럽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던 브랜드들이 이곳을 통해 미국·영국 등에 있는 유명 백화점에 입점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한국 패션 브랜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쇼룸이 마레 지구에서 더 생겼다. 최근 두 곳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동대문 표’로 불리는 시장 브랜드 옷도 세계로 뻗어갈 날이 조만간 올 것이다.” 리처드 전 대표가 자신 있게 말했다.
파리(프랑스)/김포그니 기자
파리(프랑스)/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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