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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6 20:09 수정 : 2019.03.06 20:14

지난 1일 프로배구 브이리그 여자부 경기가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 이정연 기자

커버스토리/여자배구

지난 1일 프로배구 브이리그 여자부 경기가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 이정연 기자
스포츠 경기의 주인공은 경기장을 뛰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선수가 스포츠의 전부는 아니다. 경기장 바깥의 팬과 스태프들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이 스포츠다. 만석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여자배구 경기장 바깥의 사람들을 찾았다. 그들은 또 다른 여자배구의 주인공이다.

배구는 직관이다

여자배구 덕후에게 체육관은 콘서트장이나 다름없다. 좋아하는 배구 선수들을 볼 수 있으니까?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은 마치 공연장처럼 변하는 체육관에 관한 이야기다. 지에스(GS)칼텍스 서울킥스팀의 홈구장인 장충체육관은 경기 시작 전부터 팬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선수들이 등장할 때 체육관은 암전되고, 레이저 조명이 켜진다. 난데없이 기타리스트가 라이브로 연주하고, 이어 전자음악 디제이의 음악이 터져 나온다. 이쯤 되면 그냥 공연장이 맞다. 공연장, 아니 경기장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장면들이다. 경기장 연출 총괄 피디(PD)인 이승현 지에스스포츠 마케팅팀 대리와 김성근 플레이위드어스 스포테인먼트 대리를 지난달 28일 장충체육관에서 만났다.

“배구는 직관이다. 이게 우리의 모토다.” 이승현 대리가 말했다. 그는 “경기장은 이제 경기만 보는 곳이 아니다. 선수, 구단과 팬들이 소통하는 공간이다. 경기 외적인 재미를 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기 내내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니는 현장 피디 역할을 하는 김성근 대리는 “경기장 연출에도 콘티와 시나리오가 있다. 그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경기장 연출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일 장충체육관 경기의 콘티를 받아보니, 정말 많은 요소가 있다. 응원곡, 조명, 이벤트 진행자 멘트, 전광판 연출까지 망라해 놓았다.

장충체육관 경기 연출 피디를 담당하는 이승현(사진 왼쪽) 지에스스포츠 대리와 김성근 플레이위드어스스포테인먼트 대리. 사진 지에스스포츠 제공
매번 같은 경기장 연출이 경기장을 자주 찾는 열성 팬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승현 대리는 “매 홈 경기마다 다른 콘셉트로 구성한다. 배구 선수 이소영의 날, 강소휘의 날을 정해 연출하기도 하고, 가족 관중의 날로 꾸미기도 한다”고 말했다. “응원곡이 모두 40곡 정도 된다. 최대한 유행을 안 타면서도 신나고 가사도 희망 찬 노래를 선곡한다”고 김성근 대리는 설명했다.

경기장 연출 피디에게 가장 중요한 건 ‘관중’이다. 관중의 변화상도 연구해야 한다. “최근에는 여자 팬이 진짜 많아졌다. 선수들이 워낙 멋지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 같다”는 이승현 대리의 말이다. 김성근 대리는 “여성 종목을 여성이 보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달라졌다. 이제 여성 관중을 어찌 잡느냐가 경기장 연출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다”라고 기대에 차 말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의 주인공

여자배구를 볼 때 어느 팀을 응원하건 조마조마한 순간이 있다. 바로 비디오 판독 결과 발표 시간이다. 각 팀 감독들은 심판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울 때 경기운영위원에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다. 이때 감독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비디오 판독 결과 ‘아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곧이어 궁금해진다. ‘방금 화면에 지나간, 강단 있는 목소리에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여자 배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지난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 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유애자(57) 한국배구연맹 전문위원회 경기운영위원이다.

“여자배구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서인지 나를 알아보는 팬도 많다. 심지어 ‘비디오 판독 결과는…’을 성대모사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유 위원은 여자배구의 제1 전성기였던 1980년대 실업과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김연경 선수가 뛰는 터키 리그의 방송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해 배구 팬에게 친숙하다. 유애자 위원은 “1980년대 여자배구 인기가 재현되는 분위기다”며 반가워한다. 더 반가운 건 함께 선수로 활동했던 동료들이 감독으로,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경기는 경기위원인 나를 비롯해 주심과 부심, 감독까지 전부 여자인 때도 있다”고 유 위원은 말했다.

비디오 판독을 하고 있는 유애자(가운데) 한국배구연맹 전문위원회 경기운영위원. 사진 한국배구연맹 제공
여자배구가 올해 시즌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경쟁이 치열해지자 유애자 위원의 고충도 커졌다. 유 위원은 “팬들 수준이 정말 대단하다. 여지가 있는 결과가 나오면 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만큼 배구를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본다. 더욱 공정하게 판독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시즌 전부터 내내 비디오 판독 훈련을 한다. “시즌 전에는 연맹에서 운영하는 심판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시즌 중에는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판독 전체를 다시 돌아보며 공부한다”고 유 위원은 설명했다. 그는 비디오 판독뿐 아니라 경기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도 한다. 이에 관한 유 위원의 단 하나의 집요한 목표는 ‘안전’이다. 선수 출신으로 여자배구의 인기가 누구보다 반갑지만,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경기할 수 있는 게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전은 꼼꼼하게 챙긴다. 모든 안전 수칙을 구단 쪽과 이야기한다. 잔소리꾼 역할인데, 꼭 해야 한다. 선수들이 다치거나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

● 이 좋은 걸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요

여자배구 인기 상승에 덕후(마니아)의 역할이 지대하다. 덕후는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영업’을 한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여자배구에 입덕(마니아가 됨) 좀 하라고 부채질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여배 덕후(여자배구 덕후)라 일컫는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국외에서도 경기를 챙겨본다는 덕후, 직관(직접 관람)을 위해 지방에서 수시로 상경한다는 덕후, ‘이 좋은 여자배구 좀 많은 사람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덕후. 쉴 새 없이 응답이 답지한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지에스(GS)칼텍스와 현대건설이 맞붙는 날,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만연한 여배 덕후 곽연수(19)씨를 만났다. 그는 지에스칼텍스가 연 이벤트에 당첨돼 이날 제일 좋아하는 선수인 표승주 선수를 경기가 끝난 다음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다. “한 번 빠지면 못 빠져나오는 게 여배 덕질(마니아 활동)이다”는 곽씨는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 노력 없이 이런 기회를 얻을쏘냐. 그는 “전북 임실에 사는데, 이번 시즌만 장충체육관을 6번이나 왔다”고 말한다.

여배 덕후들은 ‘얼마나 배구가 재미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다. 김정화(25)씨는 “현대건설 배구팀 팬인데, 여자 배구 선수들 보면 스포츠 선수로서의 쇼맨십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 그들 개개인을 덕질하는 게 재미있어서 푹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팀 스포츠를 취미로 해보고 싶은데, 여의치 않았다. 그런 갈증이 컸을 때 마침 여자배구를 보면서 대리만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여배 덕후 석아무개(29)씨는 “배구는 팀워크가 중요한데 3번 터치 안에 점수를 내야 한다는 제한성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며 “게다가 올해 여자배구는 팀별 역량이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 오늘 이겨도 내일 질 수 있다는 게 재미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그가 덧붙여 푸념하듯 이어 하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여배, 이 재미있고 좋은 걸 좀 많이들 좋아했으면 좋겠다.” 마치 배구연맹 관계자의 말 같다.

● 하이걸, 선수와 팬들을 잇다

“우리 박정아 선수를 보고 싶다고요? 저기 있네요!”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팀에는 ‘하이걸’이 있다. 프리랜서 스포츠 아나운서로, 올해는 하이패스팀의 선수와 팬의 연결고리가 돼 주는 채가혜 아나운서다.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시작한 에스엔에스(SNS) 생중계에 하이걸은 바빠진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와 몸을 푸는 장면부터 경기장 입장, 경기 뒤 선수 인터뷰까지 도맡아 한다. 경기장 내 이벤트도 진행한다. 그는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팀의 한 일원 같다. 그는 뒤에 ‘하이걸’이라고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팀의 하이걸 채가혜(사진 왼쪽) 아나운서. 사진 채가혜 제공
“여자배구팀과 이번 시즌 처음 함께했다. 여러 종목 관련 일을 했지만, 경기장 만석을 경험한 건 여자배구가 처음이다. 한국도로공사 팀은 올해 개막전부터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열띤 설명이 이어졌다. 채가혜 아나운서는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팀의 연고지인 경상북도 김천시와 시민들이 최고라고 추켜세운다. 그는 “김천 시민들은 직접 관람하며 즐길 수 있는 프로 스포츠가 여자배구가 유일해서 그런지 정말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요즘에는 시민들이 하이걸이라고 알아보고 간식도 챙겨주고, 인사도 한다. 그게 정말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초반, 지난해 우승팀이던 한국도로공사는 주춤하는 듯했지만 갈수록 상승세를 보여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었다. 채가혜 아나운서는 “경기에 지고 난 뒤에는 선수들 인터뷰를 하기가 어려웠는데,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연승도 해서 짧은 시간 안에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하이걸은 올해 김천서 열린 15번의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팀 홈 경기에 모두 등장했다. 곧 열릴 플레이오프에서 선수들과 함께 할 하이걸의 활약도 기대해봄 직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여자배구 여성이 하는 배구를 일컫지만, 최근에는 한국배구연맹(KOVO)이 주최하는 프로 배구대회 브이(V)리그의 여자부 경기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1925년 국내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에서 여성에게 배구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발전을 거듭한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구기 종목 메달(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룬다. 최근에는 치열한 순위 경쟁과 김연경을 비롯한 스타 선수의 등장,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1970~80년대 이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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