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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7 20:27 수정 : 2020.01.06 16:25

독일 아르망 마르세유의 비스크 인형. 김선식 기자

커버스토리/인형

‘스토리 미니어처 뮤지엄’·‘세계인형박물관’ 가보니
인형이 인간에게 주는 아이러니한 선물 받아
인형을 통해 배우는 전 세계 문화와 역사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인형박물관 답사기

독일 아르망 마르세유의 비스크 인형. 김선식 기자

풀풀 날리는 인형 먼지가 싫었다. 지난 1월 초 아이들도 외면한 동물 캐릭터 인형들이 널브러진 거실에서 생각했다. ‘저것들을 어디다 처박아 두지?’라고 생각한 김에 큰 플라스틱 가방에 꾹꾹 눌러 담았다. 가방을 지나칠 때마다 묘한 죄책감이 일었다. 세계 각지의 인형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박물관들이 있다는 얘길 듣고 반신반의했다. ‘인형으로 박물관씩이나?’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마을에 있는 인형박물관 두 곳을 다녀왔다. ‘인형의 집’은 처음이었다.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스위스 루체른에 70~80평 정도 되는 작은 인형박물관이 있어요. 거기 주인 할머니 한 분이 계세요. 그 할머니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자기가 수집한 인형 얘기를 정말 쉴 새 없이 하시는 거예요.”

차수현 박물관장은 쉼 없이 인형 얘길 하며 눈을 빛냈다. 가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사업차 외국에 갈 때마다 인형박물관을 찾고 인형을 구했다. 약 17년간 모은 인형들을 내놓아 2018년 10월 인형박물관을 열었다. ‘스토리 미니어처 뮤지엄’은 1322㎡(400평) 규모에 인형 300점, 미니어처 5000점, 오르골 90점을 전시하고 있다.

■ 한 비스크 인형이 준 선물

박물관 한가운데, 혼자 3.6m 길이의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인형이 있다. 데이지 갈란드라는 이름의 인형은 알프스 마을(대형 세트)에서 빨간 두건을 쓰고 서 있다. 반짝이는 유리 눈은 낮은 곳을 바라보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갈란드는 2014년 스위스의 인형 전문 제작자 브랑카 셰를리 집에서 태어났다. 2017년 1월, 차 관장은 갈란드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예비 박물관장은 사고 싶었고 제작자는 팔 생각이 없었다. 반복된 애원과 거절 끝에 박물관 개관 직전 상자에 담긴 갈란드가 한국에 왔다. 차 관장은 “갈란드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인형이에요. 이 박물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현실에 지친 누군가가 ‘작은 세계’에서 감동받는 것, 그가 인형박물관을 연 이유다.

스위스 인형 ‘데이지 갈란드’. 김선식 기자

이곳은 독일 목각공예 마을 자이펜산 오르골과 피라미드, 호두까기 인형 순으로 관람을 시작한다. 그 뒤로, 헨젤과 그레텔 등 10개 동화 장면 속에 있는 미국 유명 작가 마담 알렉산더의 인형들, 19세기 말~20세기 초 도자기로 만든 비스크 인형의 대중화를 이끈 독일 아르망 마르세유의 인형들, 국내 구체관절 인형(동그란 구를 이용해 관절을 만든 인형)과 미니어처 인형들이 이어진다.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속 마담 알렉산더의 인형. 김선식 기자

인형마다 역사가 있다. 박물관 들머리, 5층 원형 탑 모양인 ‘피라미드’는 가장자리 촛대에 불을 켜거나 작은 팬(선풍기)을 돌리면 공기의 움직임으로 회전한다. 19세기 초 독일 광산지역에서 개발한 피라미드는 광산 노동자들의 안전한 귀가를 염원하며 가족들이 창문이나 문 앞에 촛불을 밝혀 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형만의 세계도 있다. 동화 속 마담 알렉산더의 인형들은 과자집(헨젤과 그레텔), 늑대가 있는 초가집(빨간 모자) 등에 살고 있다. 독일 아르망 마르세유의 비스크 인형들은 3~4인용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거실에서 놀고 있다. 구체관절인형과 미니어처들도 집, 가구, 옷, 장식품들과 함께 놓여 있다. 미니어처 구역 제작에만 헤이리 마을 예술인들과 각계 전문가 등 70~80명이 반년간 매달렸다고 한다. 인형의 세계는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독일 노이슈반스타인 성 모형물에 서 있는 99개 호두까기 인형들은 관람객 1명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가 호두까기인형의 마지막 한 명이 돼 100명을 채우는 거죠.” 차 관장이 말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 마담 알렉산더의 인형들. 김선식 기자

박물관을 나온 뒤에도 한 비스크 인형의 눈빛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거실 테이블 위 선물더미에 둘러싸여 웃던 아이. ‘나 살아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인형 앞에서 문득 생기를 얻었다. 인형이 인간에게 준 아이러니한 선물이었다.

■ 키 20c㎝ 스웨그맨 앞에 서서

스토리 미니어처 뮤지엄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약 1㎞), 또 다른 인형박물관을 찾았다. 2015년 5월 개관한 ‘세계인형박물관’이다. 2층짜리 185㎡(56평) 공간엔 작은 인형들이 빼곡했다. 주인장 두 명이 전 세계 6개 대륙 80개국에서 수집한 인형 800여개를 전시하고 있다. 한창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건너 온 인형 3쌍도 있다. 유만찬 박물관장은 4~5년 전 우연히 시리아 인형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발견하곤 바로 전화를 걸었다. “돈을 부치고도 인형이 진짜 올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세계인형박물관에서 만난 유 관장은 “이슬람권 나라들은 우상숭배를 금지해 인형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만드는 걸 금기시하죠. 그 와중에도 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중동아시아판 바비인형인 ‘풀라’도 구해왔다. 바비인형의 자세와 노출이 ‘이슬람 미덕’을 해친다는 이유로, 풀라가 나왔다고 한다. 바비인형과 비슷한 외모의 풀라는 검정 차도르를 두르고 있다.

시리아 내전 중 한국에 온 시리아 인형들. 김선식 기자

잠시 자리를 비운 유 관장은 ‘할아버지 인형’을 들고 나타났다. 목에 식량 자루를 걸고, 등에 담요를 맨 할아버지는, 손엔 양철통과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넓은 모자 챙에는 코르크 마개 4개가 달렸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스웨그맨’ 인형이었다. 1850년대 ‘골드러시’ 여파로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유럽 이주민들이 몰렸다. 자연스레 일자리는 부족했다. 스웨그맨은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양털 깎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한 이들을 일컫는다. “코르크 마개는, 걸을 때 들러붙는 파리들을 쫓아내는 용도였죠. 스웨그맨을 주제로 한 오스트레일리아 민요는 우리로 치면 아리랑이에요. 인형의 배경을 조사하면 세계사와 인류학이 나와요.” 스웨그맨 인형을 설명하는 유 관장 눈빛은 반짝반짝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웨그맨 인형. 김선식 기자

유 관장이 가져온 또 하나의 인형은 펑퍼짐한 치마를 입은 여성이다. 나라 이름도 생소한 남아메리카 수리남의 전통 의상 ‘코토미시’를 입은 인형이다. “이 옷은 얼핏 보면 예뻐 보이지만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라며 유 관장이 운을 뗐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에서 커피·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여성 노예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코토미시는 그에 대한 대응이었다. 치마 안에 원통형 쿠션으로 몸을 감싸고 속치마를 여러 겹, 겉옷을 여러 겹 껴입었다. 뚱뚱해 보이는 코토미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남아메리카 수리남의 전통의상 코토미시를 입은 인형. 김선식 기자

일상 문화를 담고 있는 인형도 있다.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에서 작은 천과 실로 손가락 만하게 만든 ‘걱정인형’이다. 옛 마야 문명 발상지인 과테말라에선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걱정으로 잠 못 들면 가방이나 나무 상자에 인형 6개를 넣어 선물했다고 한다. 아이가 하루에 하나씩 인형에게 걱정을 말하고 베개 밑에 두고 자면, 부모가 아침에 인형을 치우곤 ‘인형이 걱정을 가져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김진경 박물관 부관장은 “걱정인형은 인형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한 모양이지만, 이 나라에선 엄청 사랑받는 인형이에요”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키 20㎝가량인 스웨그맨 인형을 생각하며, 그의 주제가 ‘왈칭 마틸다’를 틀었다. ‘유쾌한 떠돌이가 호숫가에 물 마시러 온 양 한 마리를 잡았네.…식량 자루에 양을 넣고 노래 부르네…농장주와 경찰관이 쫓아 오자…떠돌이가 호수에 몸을 던졌네… ‘날 산 채론 잡지 못할걸!’ 당신, 그 호숫가를 지나면 떠돌이 유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참고 도서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인형박물관 이용방법

▲스토리 미니어처 뮤지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마을 5번, 6번 게이트 근처 아지동 테마파크 1층.(헤이리마을길 93-75) 오전 10시30분~저녁 7시 개관.(매주 월요일 휴관) 성인 1만2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24개월 이하 무료) 미니어처 만들기 체험료 1만~5만원. (031-947-0677/www.azidong.com)

▲세계인형박물관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마을 9번 게이트 근처.(헤이리마을길 76-100) 오전 10시~저녁 6시 개관.(매주 월요일 휴관)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36개월 이하 무료) 인형(손 인형, 헝겊 인형, 코코쉬닉 인형, 마트료시카) 만들기 체험료 1만~2만원. (031-947-2575/www.worlddoll.net)

전국의 인형박물관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말고도 전국 곳곳에 인형박물관이 있다. 지역별 인형박물관을 추렸다. 이곳들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와 각 박물관 누리집을 참고했다.

서울▶그레뱅 뮤지엄 세계적인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등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곳. (오전 9시30분~저녁 7시 개관/성인 1만8천원, 만5살~18살 1만5천원/서울시 중구 을지로 23/02-777-4700/www.grevin-seoul.com)

가평▶쁘띠프랑스 유럽인형의 집, 마리오네트 전시관 등 유럽 인형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전 9시~저녁 6시 개관/성인 1만원, 청소년 8천원, 어린이 6천원/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호반로 1063/031-584-8200/www.pfcamp.com)

강릉▶하슬라아트월드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 수백 가지의 다른 형태의 피노키오와 마리오네트 인형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오전 9시~저녁 6시 개관/성인·청소년 1만2천원, 어린이 1만1천원/강원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441/033-644-9411/www.haslla.kr)

춘천▶춘천 인형극 박물관 국내외 200여점 인형과 각종 인형극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는 곳.(오전 10시~저녁 6시 개관. 오후 12~1시 점심시간. 매주 월요일·1월1일·설날·추석 당일·선거일 휴관/2천원/강원도 춘천시 영서로 3017/033-242-8466 www.cccf.or.kr)

부산▶그랜드 부다페스트 돌 호텔 약 40개 나라 인형과 다양한 소품들을 전시하는 곳.(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사전 예약 권장/4천원/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내2로 134/인스타그램 아이디 @gb_grandbudapestdollhotel)

제주▶테디베어뮤지엄 국내 최대 테디베어 박물관.(오전 9시~저녁 7시 개관/성인 1만원, 청소년 9천원, 어린이 8천원/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2889번지 중문관광단지 입구/064-738-7600/www.teddybearmuseum.co.kr)

평창▶비엔나인형박물관

오스트리아 테마마을 '티롤빌리지'에 있는 인형 박물관.(오전 11시~저녁 6시 개관. 1·8월에는 오전 10시~저녁 7시 개관/1만원/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383-4/033-333-3330/viennadollmuseum.com)

인형 사람을 본떠서 만든 물건. 요즘은 동물이나 캐릭터를 본뜬 물건까지 폭넓게 지칭한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라는 점에서 자동차, 공, 퍼즐 같은 장난감과는 위상이 다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형은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목각인형이다. 기원전 2천년 경 발견됐다. 고대엔 주로 종교적·토테미즘적인 용도로 쓰였다. 민속인형은 특산품, 민속의상, 특유의 생김새가 반영돼 세계 각 나라 생활풍습을 엿볼 수 있다. 에스파냐 플라멩코 무용인형, 러시아 마트료시카, 체코 유리인형, 스위스 목각인형 등이 유명하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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