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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리페인팅’ 작가 김태기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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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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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리페인팅’ 작가 김태기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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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강다니엘 인형’ 만드는 황금손
오오, 놀라워라. 그건 정말이지 방탄소년단의 ‘뷔’와 똑같았다. 다른 인형들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딱 봐도 이병헌은 이병헌이고, 디캐프리오는 디캐프리오였다.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금손’의 소유자 김태기(31)씨. 그는 판에 박힌 공장식 인형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인형으로 변신시키는 ‘리페인팅’ 작가다.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이자 갤러리인 ‘357파트먼트’에서 그를 만났다.
- ‘리페인팅’은 아직 생소한 분야다.
“인형의 본래 얼굴을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꾸는 작업이다. 아세톤이나 시너를 이용해 얼굴을 ‘클렌징’한 뒤 덧칠한다. 만화처럼 그리고 싶을 땐 경쾌한 느낌의 아크릴물감을, 실감나게 그리고 싶을 땐 유화물감을 쓴다. 볼 터치는 파스텔로, 입술은 매니큐어로 표현한다.”
- 어떤 유튜버가 인형머리를 절개하고 안구를 바꾸는 식으로 바비인형을 변신시키던데.
“아, 그건 리페인팅이 아니라 개조다. 리페인팅은 말 그대로 다시 칠하는 행위다. 가위나 찰흙은 안 쓴다. 개조도 어릴 때 종종 했다. 부모님께 매번 인형을 사달라고 할 수 없어서. 레슬링 장난감이 인기였는데, 조악해서 실제 모델과 안 닮았었다. 고무찰흙을 덧대서 만들었더니 그걸 모으는 어른들이 사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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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작가가 인형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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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리페인팅을 업으로 삼은 건 2014년부터다. 본래 그는 인물화를 주로 그리는 회화작가였다. 미대 졸업 후 전시 활동만 하다 보니 생계가 여의치 않아 크래프트 맥줏집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캔버스 대신 인형에 그린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작업한 인형의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배우 김민준과 양익준 영화감독 인형은 당사자에게 선물도 했다. 입소문이 나자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4년간 완성한 리페인팅 인형 작품은 300개가 넘는다. 가격은 대략 개당 500만~1000만원. 유명인을 똑 닮은 인형들은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됐다. 김연아 선수, 블랙핑크 제니, 워너원 강다니엘, 배우 차승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강좌도 운영하게 됐다. 그가 진행하는 강좌는 선착순 마감 2명인 전문가반과 그의 제자가 가르치는 취미반으로 나뉜다. 수강생은 의외로 40~50대와 남성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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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작가의 작품 용구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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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인 인형은 너무 닮아 진짜 그 사람 같다. ‘작은 김연아’ 같은 느낌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섞는 게 중요하다. 여러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표정을 분석한다. 사진은 분명 김연아인데 사람들이 김연아 아닌 것 같다고 할 때가 있다. 공공의 이미지와 사진의 간극이 큰 것이다. 그런 간극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마론 인형을 좋아했다. 로봇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형으로 역할놀이 하기를 즐겼다. 그의 부모님은 유교적인 가치관이나 성별 고정관념을 가진 분들이 아니었다. “남자가 어쩌고~”식의 핀잔이나 잔소리를 하기는커녕 그와 같이 놀아주었다.
- 바비인형으로 주로 작업한 이유가 있나?
“바비를 좋아한다. 바비는 1950년대 ‘바바라’라는 딸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만든 인형이다. 당시 바비의 초판에는 검사·의사·판사 같은 직업군이 많았다. 딸이 단지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멋진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기획이었다.”
- 그나마 인종, 체형, 직업 등이 좀 다양화되긴 했다. 곧 방탄소년단 바비도 출시된다던데.
“인형은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이슈다. 바비 회사에서 지난해 내놓은 게 ‘히어로’에 에스(S)를 붙인 ‘시어로’(Shero)시리즈였다. 오프라 윈프리, 권투선수 니콜라 애덤스, 펜싱 스타 입티하지 무함마드 등의 바비가 나왔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출시다.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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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작가가 인형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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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작가가 최근 기획하는 건 한국인 인형이다. 지금껏 수많은 바비로 작업을 해왔지만, 바비의 체형이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라 동양인으로 리페인팅하기엔 한계가 있다. “인형 몸을 조형하는 이지수 작가와 한복 입은 인형을 개발 중”인 그는 “사실적이기보다는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인형,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인형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편안할수록 좋은 게 비단 인형만은 아닐 것이다. “음식도 자극적인 맛보다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는 그가 내온 것은 잎 녹차였다. 찻잔은 금세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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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작가의 작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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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필북스’ 대표이자 인형 수집가인 이스안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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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점 모은 인형 덕후, “박물관도 열어요!”
신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보는 인형도 많았다. ‘토이필북스’ 이스안(27) 대표의 사무실 겸 자택(서울 송파구)에는 베이비돌과 구체관절인형을 비롯한 수십개의 인형이 옹기종기 있었다. 그는 ‘진성 덕후(마니아)’였다. <장난감 수집가의 음울한 삶>과 <한국인형박물관답사기>를 쓴 작가이자 1인 출판사 대표인 이씨를 지난 21일 만났다.
- 지금까지 모은 인형이 무려 1만점이다.
“입을 거 안 입고, 먹을 거 안 먹으며 모은 애들이다. 집에서는 도저히 보관할 수 없어 양평에 창고를 임대해 보관 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모았다.”
- 곧 트럭에 그 많은 인형을 실어 평창으로 보낸다고?
“올 3월 말~4월 초 개관하는 평창인형박물관에 보낼 예정이다. 인형을 만드는 작가들과 나 같은 수집가 5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박물관이다. 한시름 덜었다. 예전에는 내가 죽고 나면 얘네(인형)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없어진 건 아니다. 내 후계자가 있어야 제대로 관리될 텐데. 나는 비출산·비혼 지향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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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안씨가 모은 인형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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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하게도 ‘인형 버리는 팁’을 물었을 때였다. 그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말끝을 흐렸다. “아, 그건 정말 상상이 안 되는데…….”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인형을 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헤어진 일본인 남자친구가 선물로 준 인형을 태운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별을 통보받은 뒤 너무 속상하고 분한 나머지 치른 화형식이었다.
- 인형을 모으면서 부모님과 갈등은 없었나?
“6살 때 분신처럼 아끼던 ‘대형미미’를 아빠가 갑자기 버렸다. 너무 슬퍼서 인형한테 울면서 편지를 쓰는데, 아빠가 옆에서 ‘쟤 인형한테 편지 쓴대요’ 하고 놀리시더라. 지금까지도 슬픈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안타까웠는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다시 사주셨다. 구체관절인형 10남매도 아낀다. 눈동자가 유리인데 사람 눈동자랑 비슷하다. 가족이고, 반려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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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안씨가 출간 책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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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관절인형 10남매의 이름이 돌림자다. 류빈, 소빈, 하빈, 담빈……. 안 헷갈리나?
“내가 지었는데 어떻게 헷갈리나. 가족 이름 안 헷갈리는 거랑 같다. 언제 샀는지, 어떻게 샀는지, 누가 줬는지 다 기억한다. 인형이 나한테는 일상이고, 행복이다. 이런 거 다 기억하느라 공부 못 했나 싶기도 하고. 암기력 기억력도 인형에 쏟아부었나 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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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안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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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인형을 선물해주면 그 인형을 지인의 분신으로 삼는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목소리는 이따금 북받쳤다. “인형을 선물해준 사람과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을 때, 그 인형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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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떠나도 인형은 남는가. 사람은 떠나고 인형만 남는가. 버릴 수 없는 그에게 남겨진 인형은 위로일까, 슬픔일까.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인형에 미쳐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그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그를 글쓰기로 이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인형에 관해 쓴 책이 벌써 4권이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함께 앞으로도 그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모쪼록 어느 길에서건 강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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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사진 윤동길(스튜디어 어댑터 실장)
인형 사람을 본떠서 만든 물건. 요즘은 동물이나 캐릭터를 본뜬 물건까지 폭넓게 지칭한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라는 점에서 자동차, 공, 퍼즐 같은 장난감과는 위상이 다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형은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목각인형이다. 기원전 2천년 경 발견됐다. 고대엔 주로 종교적·토테미즘적인 용도로 쓰였다. 민속인형은 특산품, 민속의상, 특유의 생김새가 반영돼 세계 각 나라 생활풍습을 엿볼 수 있다. 에스파냐 플라멩코 무용인형, 러시아 마트료시카, 체코 유리인형, 스위스 목각인형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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