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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7 19:59 수정 : 2019.02.27 20:46

게티이미지뱅크

커버스토리/ 인형

반려인형 가진 ‘인형족’ 늘어
인형 유튜브 구독자만 수백명
추억과 감정 나누는 동반자, 인형
완구로 대중화된 때는 19세기 후반
어른들의 새로운 취미

게티이미지뱅크
수필가 피천득에게는 50년 넘게 아끼던 인형이 있었다. 그의 딸이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남긴 인형이었다. 딸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마음을 잡을 수 없었던 그는 딸 대신 돌쟁이 아기 크기의 인형을 보살피며 위안을 얻었다. 2007년, 향년 98세로 작고할 때까지 날마다 세수를 시켜주고, 머리칼을 빗겨주었으며, 클래식 음악도 들려주었다. 인형은 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상한가? 글쎄, 인형의 유래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사전적 의미부터가 그렇지 않나. 인형(人形), 사람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물건. 고대로부터 인형은 인간을 대신해왔다. 죽은 이와 함께 묻혀 저승길 벗이 되기도, 인간 대신 역병과 재난을 떠맡거나 풍요와 다산을 염원하는 우상이 되기도 했다. 애초에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19세기 후반~20세기에 이르러서야 완구로 대중화됐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인형과 논다. 신생아는 모빌에 달린 인형을 바라보며, 영아는 인형을 직접 만지거나 물어뜯으며 세계를 탐색한다. 유아는 인형으로 역할놀이를 하거나 인형을 껴안고 잠들기도 한다. 어른이 된 뒤에는? 이런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인형이야?!”

하지만 인형을 여전히 사랑하는 어른들이 있다. ‘인형족’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의외로 많다. 이들은 인형을 사고 돌보는 행위로 정서적 만족을 얻는다. 이들에게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추억과 감정을 나누는 삶의 동반자다. “오늘도 인놀(인형놀이)하세요~” 인형족들이 주고받는 인사다. 포털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특별한 인형들과 동고동락’, ‘하비포럼’, ‘돌스 스윗하우스’ 등에는 날마다 ‘인놀’ 사진이 올라온다. ‘스톱모션’(인형을 움직여 한 컷씩 촬영)으로 찍은 ‘인놀’을 보면 놀라울 뿐이다. 이토록 생생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김장도 하고,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인형이라니!

인형족은 키덜트족(어린이의 감성·취향을 지닌 어른) 중에서도 비중이 높은데다, 구매력이 있는 30~50대가 많아 유통계의 큰손으로 주목받는다. 유튜브 ‘토이구마’는 인형을 ‘언박싱’(제품 뜯기) 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인데도, 구독자 수가 247만명에 달한다. 바비인형이 커틀릿을 튀기고 토스트를 굽는 ‘크림퍼프스’의 영상은 200만건 이상 조회됐다. 네이버 인형카페는 540개 정도이며, ‘곰돌이 푸’ 콘셉트의 팝업스토어 ‘꿀하우스’에는 3일 만에 3000여명이 몰렸다.

이들이 열광하는 인형은 바비와 미미 같은 마론인형부터, 리나슈슈 같은 구체관절인형(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형), 포켓몬과 도라에몽을 비롯한 봉제인형, 아기와 똑 닮은 리본(reborn)돌까지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에 달한다.

김승민(41)씨는 인형을 수집할 뿐 아니라 만들기까지 하는 이다. 회계 일을 하는 그는 13년 전 인형에 처음 빠졌다. 시작은 봉제인형이었는데 곧 구체관절인형과 ‘비스크 돌’(도자기인형)까지 만들게 됐고, 5개월 전부터는 ‘리페인팅’(인형 재가공)도 배운다. ‘나만의 인형’에 대한 열망이 그를 이끌었다. “공장에서 만든 인형은 수백, 수천개씩 있지만, 이렇게 작업한 인형은 제가 창조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형이잖아요.”

10살 이후 곰 인형과 친구가 된 정소영(37·출판편집인)씨는 요즘도 곰 인형을 데리고 외출한다. 사무실이나 야유회, 회식에 데려갈 때도 있으며, 신혼여행과 유럽여행, 물놀이장에도 데리고 갔다. 사무실에서 보는 작은 곰 인형은 기쁨과 위로 그 자체다. “귀여운 걸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는 순간이 저한테는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휴대전화와 인스타그램도 곰 사진으로 가득하다. “마치 제가 그 인형인 것처럼 인형 사진을 찍어놓으면 추억이 오래가요.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서 ‘그때 정말 기뻤지’라고 생각하죠.” 정씨가 쓴 <곰돌이가 괜찮다고 그랬어>는 반려인형 동행기다. 그는 헌 옷 수납함 옆에 버려져 있던 유기 곰 인형을 집에 들여 ‘연남이’란 이름도 붙였다. 당연히 ‘인형 뽑기 방’에는 안 간다. “저한테는 인형이 가족이니까요.”

어른이 되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타인과 모든 걸 공유할 수도, 타인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도 없다. 어쩌면 어른이야말로 인형이 필요한 존재인지 모른다. 인형은 입이 무겁고, 다그치지 않는다. 인형을 사랑하는 이들은 묻는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한때 소중했던 것과 이별해야 하나요?”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인형 사람을 본떠서 만든 물건. 요즘은 동물이나 캐릭터를 본뜬 물건까지 폭넓게 지칭한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라는 점에서 자동차, 공, 퍼즐 같은 장난감과는 위상이 다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형은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목각인형이다. 기원전 2천년 경 발견됐다. 고대엔 주로 종교적·토테미즘적인 용도로 쓰였다. 민속인형은 특산품, 민속의상, 특유의 생김새가 반영돼 세계 각 나라 생활풍습을 엿볼 수 있다. 에스파냐 플라멩코 무용인형, 러시아 마트료시카, 체코 유리인형, 스위스 목각인형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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