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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4 13:55 수정 : 2019.02.14 13:59

‘카카오다다‘의 윤형원(사진 왼쪽)·고유림 부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커버스토리/ 밸런타인데이
최근 ‘빈 투 바’ 초콜릿 가게 인기
카카오다다, 로스팅 마스터즈 등
국산 쌀도 사용, 생산지 농부와 협업도
새로운 초콜릿 소비문화 만들어

‘카카오다다‘의 윤형원(사진 왼쪽)·고유림 부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와인이나 커피처럼 카카오의 원산지나 품종, 가공방식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초콜릿이 있다. 이른바 ‘빈 투 바’(Bean to Bar) 초콜릿. ‘빈 투 바’는 카카오 빈의 선정부터 완성품 초콜릿에 이르는 전 과정에 초콜릿 메이커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모양은 슈퍼에서 파는 판형 초콜릿과 별 차이 없어 보여도 가격은 서너 배가 비싸다. 하지만 최근 찾는 이가 많은 트렌드 식품이다. 왜 비싼 것일까. 수제라서? 무엇이 다를까?

우리 쌀과 만난 초콜릿

지난 1일, 초콜릿 메이커 고유림(32)·윤형원(37) 부부가 운영하는 ‘카카오다다’를 찾아갔다. 초콜릿 공장답게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일반 초콜릿 가게에서도 이런 향은 맡을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는 새콤한 과일류의 향이 섞여 있다는 것. 카카오 빈(콩)을 가공하는 냄새다. 2011년부터 카카오 빈을 가공해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온 두 사람은 2016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빈 투 바’로만 만드는 초콜릿을 파는 전문점을 열었다.

쇼콜라티에와 초콜릿 메이커는 초콜릿을 만드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쇼콜라티에가 ‘커버추어 초콜릿’(카카오 버터 함량이 30~35% 이상인 초콜릿)을 이용해 다양한 초콜릿 디저트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면, 초콜릿 메이커는 카카오 빈을 로스팅하고 카카오닙스를 부수고 으깨는 과정을 거쳐 초콜릿을 만든다. 쉽게 말해, 쇼콜라티에는 초콜릿을 재료로 쓰고, 초콜릿 메이커는 카카오 빈을 재료로 삼는다.“

‘카카오다다‘의 전경.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윤형원씨가 선택한 것은 카카오 빈이다. “초콜릿 맛은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디저트로 발전해왔다. 그런 형태의 정점에 있는 것이 프랄린이다. ‘빈 투 바’는 옛날 방식으로, 카카오의 맛이 전면에 나오는 초콜릿을 만드는 제조법이다. 카카오라는 농산물로 어떤 맛을 낼 것인가가 우리에겐 화두다.”

카카오다다는 도미니카, 가나, 페루, 마다가스카르, 에콰도르 등에서 생산하는 싱글 오리진 빈을 사용해 초콜릿을 만든다. 카카오 함량은 70% 정도다. 따로 향미를 더하지 않았는데도 입안에 상큼한 과일 풍미가 감도는 초콜릿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초콜릿에서는 구운 프레즐 과자의 산미와 구수함이 느껴진다. 윤형원씨가 만든 시식 노트를 확인하니 ‘토스트 한 빵, 꿀’이라고 적혀 있다. “진짜 그 맛이 나잖아!”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각 초콜릿의 개성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유림씨는 힘이 들어도 카카오 빈부터 가공하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처럼 소규모 배치(생산단위)로 운영하는 업장의 장점은 메이커의 기호와 취향이 반영된다는 거다. 엄청난 매력이라 그만두지 못한다. 손님이 고르는 초콜릿은 결국 초콜릿 메이커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같은 원산지의 카카오 빈도 누가 그것으로 초콜릿을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윤씨는 밥 짓기에 비유했다. “처음엔 ‘빈 투 바’라는 용어도 쓰지 않았다. 밥을 직접 지어 판다고 했는데 인스턴트 밥보다 맛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의 초콜릿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카카오다다‘의 윤형원씨가 초콜릿을 틀에 넣어 굳히는 몰딩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두 사람이 만든 초콜릿이 진짜 쌀을 만나기도 했다. 우보농장의 토종 쌀과 싱글 오리진 초콜릿을 조합한 ‘토종 쌀 크리스피 초콜릿’이다. 세계 각국의 ‘빈 투 바’ 업체들이 자국의 농산물을 활용하듯, 이들도 매년 11월11일에 한국의 토종 작물을 이용한 제품을 내놓는다. 초콜릿 업계의 대목인 ‘빼빼로데이’는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두 시간 넘게 초콜릿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들이 탄 상 자랑을 하지 않기에 직접 물었다. 이들의 초콜릿은 ‘인터내셔널 초콜릿 어워즈’(ICA) 아시아 퍼시픽 지역 ‘다크 초콜릿’, ‘다크 밀크 초콜릿’ 부문에서 ‘브론즈’(2017년)와 ‘골드’(2018년)를 수상했다. “상을 받았다고 영업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고씨가 웃었다. “뭔가 지칠 만하면 일 년에 한 번씩 상을 타니까, 그 상이 용기를 갖고 계속 가게 하는 동력이 됐다.” 초콜릿 메이커 부부의 결론은 간명하다. “맛있는 초콜릿을 파는 가게. 그거면 된다.”

농부와 함께 걷는 초콜릿 숍

서울 마포구 당인동의 ‘로스팅 마스터즈’는 농산물로서의 카카오에 더 깊게 파고든 곳이다. 1층의 작업장과 카페 공간이 전부처럼 보였지만,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에 공장이 있었다. ‘건포도 공장인가!’ 싶을 정도로 새콤달콤한 냄새가 가득하다. 신기욱(49) 대표는 커피 업계에서 먼저 알려진 인물이다. ‘빈 투 바’ 초콜릿을 만든 계기도 커피와 관련이 있다. “커피와 카카오는 적도 부근이 산지다. 좋은 품질의 커피는 고지대에서 생산한다. 저지대에서는 커피를 심어도 수익이 나질 않으니 농민의 삶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 이들이 카카오를 재배하면서 소개를 부탁했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4~5년 전부터 초콜릿 공부를 시작했다.”

‘로스팅 마스터즈‘의 신기욱 대표.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카카오 대부분은 원산지 구별이나 품질과 관계없이 고정가격에 거래된다. 유통의 여러 단계를 거친 카카오 빈은 몇 개의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통해 초콜릿으로 가공된다. 전체 초콜릿 생산량의 약 95%를 차지하는 대량생산 체제의 틈을 비집고 고품질 카카오 빈을 직접 거래 하는 소규모 생산자가 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흐름이다. “커피 관련해서는 ‘다이렉트 트레이딩’(직거래)이나 공정 무역 등을 하는데, 실은 그에 대한 반성도 좀 있다. 중간상인을 배제하는 일이 단순히 커피를 싸게 사기 위한 일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현지 농부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농부를 직접 만나 코스타리카의 3종류 카카오 빈을 가져오는데, 코스타리카 초콜릿협회와 뜻을 같이해서 버려진 농장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0년 된 나무를 되살리고 농업 엔지니어를 고용해 그들이 농민들을 교육한다. 거기서 생산한 카카오 빈의 품질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초콜릿 ‘말레쿠’가 ‘인터내셔널 초콜릿 어워드’에서 ‘브론즈’(2016·2018)를 수상했다. 그 나무의 씨앗을 다시 발아시켜 또 다른 빈을 만들었다. 같은 토양에서 자란 같은 품종도 생산 연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는 카카오 빈을 시세보다 1.5~1.7배 비싼 값에 사들인다. 이유가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1톤을 파는 것보다 좋은 품질 100㎏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어야만 계속 좋은 품질의 카카오를 생산한다. 덜 일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와 초콜릿 얘기를 나누면서 적어도 ‘빈 투 바’ 초콜릿이 왜 기성 제품보다 비싼지에 대한 답은 얻었다. 그는 초콜릿 가격에 ‘적정한 노동으로 이룬 인간다운 삶’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로스팅 마스터즈‘에서 만든 숙성한 초콜릿 덩어리.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카카오다다나 춘천의 ‘퍼블릭초콜래토리’같은 숍의 초콜릿 메이커들, 엄청나다. 굉장히 센 경쟁자들이 있는 덕분에 나도 노력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신씨는 카카오다다의 수준을 세계 상위 1%라고 평가했다.

별난 사람들이다. 한 곳은 자신들의 가게를 자랑하는 데 서툴고, 다른 한 곳은 경쟁 업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한다.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다. 아주 좁은 시장에서 동반 성장하기를 바라는, 초콜릿 공장의 이상주의자랄까. 아니, 신념을 지키는 원칙주의자가 더 어울린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yCPXUsgB0NA


‘카카오다다‘의 장식용 초콜릿 모형.

‘빈 투 바’ 초콜릿 즐기는 법

‘빈 투 바’ 초콜릿은 포장에 카카오 빈의 산지나 품종, 카카오 함량 등을 표시한다. 농작물이 어디서 왔고 누가 만드는지 명확하게 밝히는 셈이다. 전문점 ‘카카오다다’는 포장지에 초콜릿과 조합한 토종 작물의 일러스트를 그려 넣고, ‘퍼블릭초콜래토리’는 카카오 산지와 초콜릿의 풍미를 힌트로 한 귀여운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로스팅 마스터즈’는 카카오 빈을 재배한 현지 농부들의 사진을 포장지에 담았다. 가공과 템퍼링이 잘 된 초콜릿은 표면이 매끈하고, 부러뜨리면 ‘딱’하는 경쾌한 소리가 난다. 카카오 버터는 34도에서 녹기 시작한다. 입안에 퍼지는 초콜릿의 복잡한 향미를 즐기려면 초콜릿의 온도가 체온과 비슷해야 한다. ‘빈 투 바’ 초콜릿은 한여름이 아니면 실온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보관 온도 차로 수분이 맺히면, 초콜릿 안의 설탕이 녹았다 굳으면서 생기는 하얀 반점(슈거블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초콜릿은 냄새를 쉽게 흡수하기 때문에 김치나 반찬 옆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 각국의 다양한 ‘빈 투 바’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편집매장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카카움’,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안디아모’ 등이 있다.

유선주 객원기자

밸런타인데이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祝日)인 2월14일을 이르는 말.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전후해 초콜릿 소비가 크게 늘지만, 서양에서는 부활절에 달걀이나 토끼 모양을 본뜬 초콜릿을, 만우절에 물고기 모양 초콜릿을 선물한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유럽의 밸런타인데이 풍습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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